갑자기 나타난 이상한 아이들
에디터 : 최용석

1월 28일 아잔타(Ajanta)-아우랑가바드(Aurangabad) 106km

오늘의 일일 대장은 이성민군! 사실 학번으로는 선배지만 나이는 동갑내기. 수업시간 이외에는 따로 만난 적이 없어서 서로의 존재만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 여행을 위해서 의기투합했다.
6개월 정도 인도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성민이는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꾸준히 무언가를 해내는 고집 있는 성격이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이번 여행에서도 가장 힘든 후미를 전담해서, 자전거 고장이나 체력저하로 뒤처지는 대원들을 모두 챙기느라 많이 고생했다. 오늘 만큼은 선두에 서서 후미의 설움을 맘껏 떨쳐버리길!

릭샤왈라(삼륜차 운전수)_이성민군!

오늘을 위해서 몇 일 전부터 지도 공부를 해오던 성민이가 출발 전 예고한대로 초반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을 만났다. 한 시간을 꼬박 올라가서 정상을 만날 수 있었다. 다행히 더 이상의 오르막은 없었다. 이후로는 비교적 평이한 NH8. 맘껏 달리기에 더없이 좋은 도로다.

주행 중 성광이의 자전거 펑크. 아직은 서투르지만 성광이가 스스로 펑크를 떼우기로 한다. 성광이가 팀에 합류했을 때부터 성광이의 역할은 구조팀이었다. 물론 구조를 하기 위한 구조팀이다. 아직까지는 구조를 받은 적이 더 많긴 하지만, 구조팀의 임무인 기술적인 부분을 지금까지 배워왔다.
'그래서 펑크 떼우기는 그다지 어려운 기술도 아니다....'라고 생각했지만 세시간이 훌쩍 흘렀다. 떼웠는데 다른 곳에 펑크가 하나 더 있고, 다시 떼우고 바람을 넣다 보니 타이어가 터지고... 실습 한번 제대로 한다.
우리가 가진 본드가 공업용 본드가 아니어서 잘 안 붙는 문제도 있었기에, 전적으로 성광이의 잘못이라고는 못하겠다. 결국 인도인들의 좋은 장비(공업용 빨간 본드와 룰러)를 공수해서 한방에 상황 종료. 진작에 좋은 장비를 구해 놓을 것을 그랬다.

펑크 떼우기

아우랑가바드에 거의 도착했는데, 길거리에 팔 없는 아이가 도로가에 서서 무표정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다. 웃지도 않고, 그렇다고 피하지도 않는다. 여느 아이들과 다르게 아무 반응이 없으니 한번 더 쳐다 보게 된다.
'이 아인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조금 더 가다 보니 도끼를 들고 있는 몇몇 아이들이 보인다. 도끼 날이 작고 날카로운 것이, 정확한 쓰임을 알 수 없다.
'애들 놀이감인가?'
이렇게 생각하니 섬뜻하다.
조금 더 가니, 한 아이가 자전거를 타는 나에게 손을 내미는가 싶더니, 순간 내 자전거 뒤에 달려있는 가방을 잡아 끄는 것이다.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한데다가 역방향의 힘을 받아서 핸들이 많이 흔들렸다. 도로변에서 자칫 잘못 넘어졌다면 큰 사고가 날 뻔 했다.
자전거에 내려서 무서운 얼굴(내 생각에..)을 하고 아이와 대화(?)를 시도한다.
"아오(일로와)! 잘디 아오(빨리 이리로 안 와)!!!"
12~13세는 되어 보이는 아이가, 순진한 표정으로 나를 멍하니 쳐다보기만 한다.
'이건 뭐, 꼬맹이를 때릴 수도 없고.. 제길....'
할 수 없이, 그냥 자전거에 오른다. 

괜히 기분이 안 좋다. 팔 없는 아이와 도끼든 아이들과 내 자전거를 잡아 끄는 놈까지.. 불과 10km안의 거리에서 별 아이들을 다 만났다. 애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쉽게 잊혀지질 않는다. 내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인가. 오늘은 빨리 주행을 끝내고 쉬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물론 그리고 다행히도, 안 좋은 내 기분과 상관없이, 오늘 주행도 별탈없이 끝났다.
변화를 시도한 정환이와는 다르게 성민이는 기본에 충실하게 일정을 끝냈다. 대신 잡다한 일들을 분배하기 보다는 스스로 발로 뛰어서 하려는 모습이 멋있었다. 이것이 솔선수범! 신경 많이 써서 준비한 만큼 일일 대장을 멋지게 해냈다.


1월 29일 엘로라(Ellora) 관광

오늘은 관광의 날. 엘로라 석굴을 관광하는 날이다. 대부분의 외국인에게는 아그라의 타지마할이 인도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엘로라 석굴이야 말로 인도의 웅장함과 그 속에서 다양성을 대변하는 최고의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겠다. 아우랑가바드의 북서쪽에 위치한 거대한 바위산의 서쪽사면 2km에 걸쳐서 형성된 34개의 석굴이 엘로라의 웅장함을 대변해 준다. 또한 종교와 언어 등에 있어서 끝없는 다양성을 자랑하는 인도답게 한 석굴군에 세개 종교의 석굴들이 혼재해 있다. 12개의 불교 석굴, 17개의 힌두교 석굴, 5개의 자이나교 석굴이 그것이다.
각 종교의 석굴들은 시대별로 만들어진 시기가 다르다고 한다. 6세기까지 불교, 10세기까지 힌두교, 10세기 이후에 자이나교의 석굴이 만들어 졌다고 하며, 이 세 종교의 석굴들이 현재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한곳에 남아있음은 종교간에 공존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관광 온 인도인들과 함께

사실 자세히 보면 최초로 만들어졌던 불교석굴들의 변형된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으며, 13세기 무슬림의 우상숭배 배척 정책으로 재차 석굴군이 소멸 위기에 놓였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모진 풍파를 이겨내고, 지금까지 사이좋게 일렬로 나열되어 있는 거대한 석굴군이 엘로라의 거대한 규모에 후광을 드리운다.
종교적인 얘기를 조금더 하자면, 현재는 엘로라에 일렬로 사이좋게 서 있는 세 종교지만 불교와 자이나교는 반 힌두교적인 성격에서 발생한 종교이다. 뿌리를 같이하기에 세 종교는 아직까지 어느 정도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와 동시에 서로 다른 확고한 교리를 내세움으로써 또 하나의 통일성 속의 다양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와중에도 힌두교는 인도 특유의 포용력 내지 오지랖을 발휘하여 불교의 붓다가 힌두교의 삼신 중 하나인 비슈누 신의 아바타라고 주장하며, 불교의 정통성을 흔드는 관용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이러한 사실들은 엘로라 석굴의 가치를 끝 모르게 끌어올려 준다.
 
모든 사원들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싶지만, 사실 2km에 걸쳐서 파고 들어간 34개의 석굴을 관람하는 것은 사실 자전거를 타는 것보다 힘들었다. 차라리 이곳을 자전거로 둘러보라고 한다면 날아다녔을 텐데. 사원에서도 자전거 주행을 허용해 달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
그러나, 석굴 탐사에 심신이 녹초가 된 와중에도 눈에 들어온 한 사원. 카일라사 사원이었다. 이는 힌두교 사원으로써 가장 대중적이라 할 수 있는 삼신(브라흐마, 비슈누, 쉬바)중 파괴의 신인 쉬바를 모시는 신전이다.

쉬바를 상징하는 링가(남성기)

카일라사 사원 앞에서

아잔타는 가파른 절벽을 깎아서 안으로 파고 들어가며 만들어서 다소 습하고 어두침침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 반면에 엘로라는 외부에 돌출되어있는 완만한 사면을 깎아서 빛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 두 석굴군에 대표적인 차이점이라 한다.

우리는 34개의 동굴을 둘러보느라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한국 음식점으로 향했다. 오늘은 성광이가 양념통닭을 만들어 주기로 약속하였다. 주방 섭외는 이미 끝났다. 달콤하고 매콤한 양념통닭을 떠올리니 갑자기 성광이가 존경스러워 보인다.
"성광아, 니가 양념통닭만 만들어 주면 필요한 건 내가 다 구해 줄게. 뭐가 필요한가?"
"치킨, 밀가루, 녹말가루, 튀김가루, 물엿, 치즈~~ 블라블라..."
"여기 주방에 있는 건 빌려서 쓰면 되자나!!!! 주방에 뭐 있는지 빨리 확인해 봐!!!!!"
이 자식, 나에게 닭 모가지를 비틀어 오라고 할 판국이다.
주변 상가를 돌면서 가까스로 대부분의 재료를 구하긴 했는데, 성광이의 말에 따르자면 가장 필수 재료인 녹말가루와 물엿을 구하지 못했다. 이것들은 아쉬운데로 전분과 꿀로 대체하기로 했다.

아우랑가바드 한국 음식점. "먹느라 음식 사진은 생략.."

성광이가 주방에 들어가서 얼굴을 안 보인지 한 시간 남짓. 갑자기 음식들이 쏟아져 나온다. 후라이드 치킨과 특제 양념 소스, 감자튀김, 커틀렛까지.
이것이 레알이다. 
조리병을 아무나 하는 건 아닌가 보다. 양념소스를 찍어먹게 별도로 준비해오는 센스까지!
"형~ 모두 음식을 맛있게 먹으니까 저도 기분이 좋네요."
수줍게 웃는 성광이.
한 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면서 요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우리가 맛있게 먹는 모습만으로 행복함을 느끼고 있다. 나로써는 맛있게 먹어주기만 하면 되니 이것이 윈윈전략이던가.

"오늘부터 성광이를 요리팀 대장으로 임명하노라....."



여행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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