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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비포장길과 맘 좋은 아주머니
2010-03-17   이동원

더니든(Dunedin)은 캠핑장 체크아웃 시간이 있었다. 오전 10시. 보통 지방도시의 캠핑장은 자기가 가고 싶을 때 가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확실히 큰 도시라 비싸고 짰다. 덕분에 아침 일찍 출발했다.
더니든으로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나갈 때도 산을 넘어야 했다. 오르막 30분쯤 오르자 완만한 경사의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왼쪽엔 바다 오른쪽엔 언덕이 있는 해안도로다. "서던 시닉 루트(Southern Scenic Route)" 앞으로는 이 길만 따라가면 되는 거다. 옆에 보이는 바닷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핑과 카약을 즐기고 있었다. 나도 잠시 멈춰서 구경했다.

저 멀리 보이는 검은 점들이 사람들이다. 서핑과 카약. 뉴질랜드는 정말 레포츠의 천국이다.

앞으로 저 삼각형 마크만 따라가면 인버카길(Invercargill)까지 갈수 있다.
"서던 시닉 루트(Southern Scenic Route)".
경치가 좋은 남부 도로 뭐 이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오늘은 날이 좋아서 그런지 길에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았다. 짐을 가득 싣고 여행을 하는듯한 중년부부도 있었고 혼자 열심히 페달링을 하는 할아버지도 봤다. 토요일 아침이라 길에는 나들이 가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자전거를 생각해서 멀리 돌아서 지나가는데 종종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특히 트럭들. 뉴질랜드에서 자전거로 여행할 시 특히 통행량이 많은 메인 도로로 다닐 때는 반드시 트럭들을 조심해야 한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트럭운전자들은 엄청난 속도로 자전거 바로 옆을 쌩 하고 지나간다. 도로가 좁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결코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한번은 엄청난 크기의 트레일러가 내 바로 1m옆에서 무서운 속도로 지나갔다. 트레일러의 빠른 속도와 큰 덩치 때문에 부는 큰 바람에 넘어질 뻔 하기도 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에는 백미러로 트럭이 오면 귀찮더라도 잠깐 멈췄다가 다시 타곤 했다.
자전거를 타는 것도 좋지만 길에서 죽기는 정말 싫었다. 실제로 자전거 여행자가 차에 치여 죽었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지난 1월 달에도 독일인 자전거 여행자가 트럭에 치여 숨지기도 했다. 안전한 여행. 이게 포인트다!

길가에 있는 벤치는 자전거 여행자에게 정말 소중한 휴식처다.
때마침 앞에 사진기를 놓을만한 돌이 있어 한 장 찍었다.
자전거 가방의 형광 커버와 공사장에서 입는 형광 반사조끼는 안전한 여행의 필수품이다.
멀리서도 운전자의 눈에 쉽게 띄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어색하더라도 좀 지나면 적응된다.

갑자기 비포장도로가 나온다. 뭔가 이상하다. 지도에 없던 비포장이다. 그래도 방향은 맞기에 계속 나갔다. 그런데 아무리 가도 끝이 없다. 비포장도로를 로드바이크로 달리는 건 무리였다. 그러나 이미 꽤 와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지도상으로는 40km정도의 거리였기에 그냥 갔다. 설마 다 비포장이겠거니 하고 갔는데 25km가 비포장이었다. 도로상태도 그랬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을이 안 나오는 거다.
아침 먹고 출발한 뒤 오후 3시가 지나도록 아무것도 못 먹었다. 이제는 물도 떨어져간다. 날씨도 더워서 머리가 띵해졌다.
어떻게 해야 하나? 참다 참다 안돼서 한 민가에 들어갔다. 지나가는 여행객인데 물과 음식이 필요한데 무언가 살 수 없냐고 물어봤다. 정원에서 일하던 아주머니는 날이 더우니 어서 안으로 들어오라면서 음식은 많으니까 마음껏 먹으라는 것이다.
이 집에서 토스트, 바나나, 사과 등등을 먹었다. 아주머니는 알고 보니 내가 그 동안 지나온 주변 땅들을 소유한 농장주였다. 원래 이 구간이 비포장에 주변에 마을이 없어 여행객들이 종종 길을 묻거나 들리곤 한다고 했다. 저번 달에도 자전거 여행객 한 명이 멈춰서 물을 얻어갔다고 하니 중간 휴식처인 셈이다.
아주머니는 너무 친절하게 반겨주셨다. 오랜만에 편한 의자에 앉아 허기를 채우니 지상낙원이 따로 없었다. 너무 고마워 돈을 드리려 했으나 극구 사양하셨다. 그래도 뭔가 드려야 할 것 같아 찾아보니 나오는 건 레모나 밖에 없었다. 아주머니가 이것은 기쁘게 받겠다고 하셨다. 아주머니가 마지막에 한말이 마음을 더 따뜻하게 했다. 아주머니 본인도 자식들이 있는데 모두 해외에 나가 여행을 했었고 그때마다 이래저래 현지에서 도움을 받았으니 자기도 그런 것에 대한 보답으로 지나가는 여행객을 기쁘게 대접한다고 했다.
모든 사람이 이런 마음이면 세상이 훨씬 더 정이 넘칠 것이다. 이런 분을 만나고 황송한 대접을 받으니 그 동안 비포장을 달린 피로가 모두 풀렸다.

끝없는 비포장길. 이래서 마운틴바이크가 필요한 거다.
진정 좋은 경치는 메인 도로가 아닌 비포장길에서 만날 수 있다.

지나가는 여행객을 자식처럼 대해주신 아주머니.
이번엔 받았으니 나중에 내가 베풀 차례가 오면 아주머니가 했던 것처럼
대가 없는 대접을 해야겠다.

그렇게 황송한 대접을 받고 또다시 출발했다. 몇km쯤 달렸을까 멀리 포장도로가 보였다. 정말 기뻤다. 이런 사소한 차이가 사람을 기쁘게 만들다니. 포장도로를 10km 달리자 오늘의 목적지인 밀턴(Milton)에 도착했다.
오늘은 정말 나 자신뿐만 아니라 자전거도 고생했다. 좋은 도로에서만 타라고 만들어 논 자전거로 비포장 시골길을 달렸으니 고장 안 나고 버텨준 걸 보면 신기하다. 앞으로 몇 일만 더 버텨주라.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던 포장도로. 이젠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25km 비포장 시골길을 펑크 없이 버텨준 자전거가 대단하다.
타이어 안에 타이어를 한 겹 더 덧댄 것이 효과가 있었나 보다.

주행 시간 : 5시간 35분
주행 거리 : 72km
평균 속도 : 12.8km/h
최고 속도 : 61.2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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