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지진과 폐쇄된 캠핑장
에디터 : 이동원

어제는 너무 추워서 여러 번 깼다. 확실히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온도가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 거기다가 새벽 5시쯤에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는 거다. 무슨 일이 있나 싶었는데 핸드폰을 보니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었다.
칠레 지진 때문에 쓰나미 경보가 났으니 조심하라는 거다. 캠핑장이 바닷가에서 몇km 떨어진 곳이라 별일 있겠냐 싶었지만 사이렌도 울리고 하니 지레 겁이 났다. 그렇게 잠을 설치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아무일 없다는 듯이 맑은 날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캠핑장 부엌에서 파이를 하나 데워먹고 출발했다.

어제 묵었던 밀턴(Milton)의 테일러 파크(Taylor Park) 캠핑장.
전날 더니든(Dunedin)의 캠핑장 가격에 비하면 1/3정도 밖에 안 되는 $8이었지만 분위기는 조용하고 더 좋았다.
뉴질랜드에서 자전거여행을 한다면 캠핑장에서 머무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텐트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비용 면에서 많이 절약이 된다.
보통 캠핑장은 $8 ~ $13정도에 화장실, 샤워실, 주방(전기사용가능)이 있다. 그에 비해 백팩커는 여러 명이 같이 쓰는 도미토리가 $23 ~ $30이다.
여행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그 비용차이가 커진다. 또한 캠핑장은 거의 모든 도시에 있는 반면 백팩커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운 날에는 가끔씩 백팩커에서도 자길 권한다. 잠을 설치면 다음날 여행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밀턴(Milton)을 출발하여 20km정도를 달려 도착한 첫 번째 도시가 발클루사(Balclutha)다. 클루사(Clutha)강이 지나가는 곳에 있는 곳으로 인구 4000정도밖에 안되지만 이 주변 지역 중에서는 비교적 큰 도시에 속한다.
발클루사의 인포메이션 센터에 쓰나미 경보에 관해 물었다. 직원 말에 의하면 경보는 아직 풀리지 않았지만 오늘 묵을 예정지인 파파토와이(Papatowai)에 관한 정보는 다음 도시인 오와카(Owaka)에서나 알 수 있다고 한다.
그곳 인포메이션 센터가 4시에 닫는다고 하니 시간은 3시간 가까이 남아있다. 그곳까지 30km, 충분하다. 간단하게 피쉬 앤 칩스(Fish & Chips)를 먹고 다시 페달링을 시작했다.

피쉬 앤 칩스(Fish & Chips).
뉴질랜드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테이크아웃 음식이다. 감자튀김과 생선튀김이다.
$5정도인데 저 정도 양이면 점심으로는 충분하다.

발클루사(Balclutha)의 표지판. "큰 강의 마을" (BIG RIVER TOWN) 이라는 소개도 있다.
뉴질랜드의 도시표지판에는 도시명과 간단한 소개, 그리고 고유의 마크가 있다.
예를 들어 다음에 나오는 도시인 파파토와이(Papatowai)는 "숲이 바다를 만나는 곳" (WHERE FOREST MEETS SEA) 이런 식이다.
각 도시마다 색다른 표지판이 있어 마치 우표를 수집하듯이 새로운 곳에 도착할 때마다 사진 찍는 재미가 있었다.


발클루사 길거리에서 본 차.
마오리 고유의 문양이 본넷에 칠해져 있고 동물의 머리뼈가 그 위에 장식되어 있다.
무언가 행운을 가져다 주는 의미인가? 어쨌든 새롭다.

오와카(Owaka)에 도착했다. 바로 인포메이션 센터로 가서 파파토와이에 대한 정보를 구했다. 그곳은 쓰나미로부터 안전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제서야 맘놓고 페달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정확한 뉴스를 못 봐서 얼마나 심한 지진인지는 몰랐었는데 지진강도 8.8이라고 했다. 그렇게 센 강도의 지진은 들어 본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 얘기를 듣고 출발하려는데 히치하이킹을 하던 독일인 여행객 한 명을 만났다. 내가 자전거 여행 중인 걸 알고 관심을 가져왔다. 자기도 남섬의 북쪽 넬슨(Nelson)에서 자전거여행을 했었다고 했다. 원래 계획으로는 남섬 전체를 자전거로 돌려고 했는데 발목을 삐는 바람에 히치하이킹 여행으로 변경했다고 한다. 그 동안의 모든 여행을 히치하이킹으로 했다니 대단하다.
오늘은 더니든(Dunedin)으로 간다고 하는데 날씨가 안 좋은 탓에 길에 차가 별로 없어 걱정하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기 전 1년간의 휴식년을 갖고 뉴질랜드에 왔다는 그는 돌아가면 선생님이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유독 독일 여행객을 많이 만난다. 특히 젊은 독일 학생들 중에는 대학에 가기 전 세계여행을 다니며 앞으로 자기가 뭘 하고 싶고 배울 지에 대해 결정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이것은 정말 좋은 것 같다.
솔직히 수많은 대학생 중에 자기가 선택한 전공에 100% 만족하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공부하는 장소만 바뀌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인데 대학교 입학에 앞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자기가 정말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을 찾는다면 전공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지 않을까?

파파토와이에 가는 길에 본 신기한 나무들.
기후가 달라서 그런지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신기한 종류의 나무들이 많았다.

히치하이킹을 하던 독일 여행객과 헤어지고 30km를 달려와 파파토와이에 도착했다. 숲이 바다를 만나는 곳이라는 도시 소개에 맞게 바다 바로 앞에까지 숲이 있었다.
가게에 가서 음식을 사며 캠핑장의 위치를 물어봤는데 몇 해전에 폐쇄되었다고 했다. 여행지도에는 폐쇄된 사실이 반영 안된 것이다. 가끔 이런 일이 있다. 이래서 지도나 책을 100% 믿고 가면 안 된다. 항상 새로운 정보는 인포메이션 센터에 물어봐야 한다.
오와카에서 쓰나미에 대한 것을 물어보느라 캠핑장에 대해 물어본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백팩커에서 하루를 묵어야 했다. 마침 비도 오기 시작해서 추운 날씨에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28이라는 거금을 주고 백팩커에서 하루를 묵었다. 하지만 결코 아깝지 않은 돈이었다. 일요일인 관계로 손님이 아무도 없어 집 전체를 $28에 빌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따뜻한 차로 몸도 녹이고 정말 괜찮은 거래였다. 농장의 한가운데 있어 정원까지 양들이 와서 풀을 뜯고 있었다. 역시 텐트가 아닌 지붕아래서 자는 게 좋기는 좋았다.


$28에 빌린 집. 집이 언덕 위에 있어서 거실에 앉으면 멀리 바다가 보였다.
오랜만에 TV도 보고 오랜만에 문명을 경험했다.

하루 종일 자전거위에서 소비한 에너지를 보충하려면 무조건 고기다.
뉴질랜드는 소고기가 싸다. 소고기가 돼지고기나 닭고기에 비해 싸다.
저 큰 스테이크용 소고기가 한국 돈으로 5000원정도 였다.

주행 시간 : 6시간 10분
주행 거리 : 87km
평균 속도 : 14km/h
최고 속도 : 63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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