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의 천적 개(犬)와 바람
에디터 : 이동원

어제 일찍 쉰만큼 오늘은 일찍 출발했다. 하늘에 구름이 조금 끼어 있었지만 당장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았다. 다른 도시로 가기에 앞서 카카누이(Kakanui) 바닷가를 가봤다.
별 기대 없이 갔는데 이런! 환상적인 바다가 기다리고 있었다. 뉴질랜드에서 본 많은 바다 중 최고인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거기에 주저앉고 싶었다. 하지만 앞으로 뭐가 더 펼쳐질지 모르기 때문에 떠나야 한다. 아쉬웠지만 그렇게 다음도시를 향해 떠났다. 다음 목적지는 모에라키(Moeraki)다. 뉴질랜드의 많은 지명은 마오리어다. 일본어 같기도 하지만 한국사람에게는 오히려 발음하기가 더 쉽다.

카카누이 바닷가. 정말 발걸음을 잡는 멋진 경치다. 대도시에서 경쟁에 치여 살다 보면
반드시 이곳이 생각날 것이다. 그때도 지금과 같은 모습이겠지...

카카누이를 빠져나와 또다시 해안도로를 달렸다. 평일이라 그런지 차가 별로 없었다. 종종 해변에서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이나 낚시를 즐기는 사람 말고는 없었다. 중간중간에 나와 같은 자전거 여행객을 만났다. 길에서 만나면 모두 손짓을 하거나 "Hi", "Hello" 등 가볍게 인사한다. 물론 잠시 멈춰 길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길에서 자전거 여행객을 만나는 것은 항상 반가운 일이다. 마치 친구를 만난 것과 같은 느낌이다.
모에라키에 앞서 햄프덴(Hampden)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이곳에 작은 가게가 있어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잠시 쉬었다. 언제 다음 가게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있을 때마다 꾸준히 먹고 마셔둬야 한다.

더운 날씨에 꿀맛 같았던 아이스크림

햄프덴에 도착할 때쯤에 만났던 자전거 여행객. 도로 가장 자리의 조그만 공간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건 항상 쉽지가 않다. 뒤에서 오는 차를 걱정하느라 경치를 놓치기도 한다.

바닷가에 앉아 낚시를 하는 사람. 잘은 모르지만 저 사람의 인생은 참 편해 보인다.

모에라키에 도착했다. 표지판을 보고 마을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멀리서 개들 짖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집 개인지 2마리가 뛰어나와 짖어대며 물으려고 달려들었다.
이런, 도저히 앞으로 갈수가 없었다.
도대체 개들을 왜 안 묶어 놓은 건지.
저놈들한테 물리면 앞으로 여행이고 뭐고 없는 거다.
머릿 속에서는 그냥 보신탕이 생각났다. 하는 수 없이 등을 안 보이며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이게 운명이라면 그냥 안 보고 말지 하는 심정으로 다음 도시로 떠났다.


모에라키 앞에서 찍은 사진과 나를 쫓아낸 개들.
뉴질랜드 시골 여행 시 주의할 점 중 하나가 바로 개다.

"리 로드" 왠지 정이 가는 길이다.

시골길을 다니다 보면 종종 이런 것을 볼 수 있다.
물건을 길가에 놓고 사람 없이 가격을 써놓고 파는 것이다.
계란뿐만 아니라 감자, 쨈 등 종류도 다양하다.
사람들 간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과연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모에라키를 빠져나와 산길로 들어섰다. 끝없는 오르막에 맞바람이 무지하게 불었다. 중국의 "상해-북경" 구간에서는 상상도 못한 "끌바(자전거를 끌고 가는 것)"를 뉴질랜드에서는 종종 해야만 했다. 오르막을 오르다가 앉아서 쉴 바에는 차라리 끄는 게 나은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르고 보니 아주 높지는 않았다. 언제나 그렇지만 오르막에 비해 내리막은 짧게 느껴졌다. 내리막이 끝나니 파머스톤(Palmerston)이 나왔다. 금광으로 유명했고 지금도 금을 캐는 금광이 있다던데 100여년 전에 처음으로 뉴질랜드에 왔던 아시아인(人)인 중국인들이 여기서도 일 했었을 것이다.
중국인들은 100여년 전 뉴질랜드 금광 노동자로 처음 이민을 왔고 상당히 불평등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먼저 이민 온 많은 유러피언들은 그들을 하층민처럼 여겼고 교류하기를 거부하며 살았었다고 하니 말이다. 이렇듯 중국인들의 이민역사는 고작 20년에 불과한 한국의 것에 비하면 길다. 그만큼 교민사회도 크고 파워도 있다. 내일 도착할 두네딘(Dunedin)의 시장이 중국인 이민자의 후세인 것이 하나의 예이다.

끝없는 오르막 산길. 바다를 보면서도 달렸고 언덕도 달렸으니 이제는 산길인가 보다.

파머스톤에서 음료수와 과일을 좀 사고 쉬다가 다음 도시로 향했다. 와이코아이티(Waikouaiti), 오늘 묵을 곳이다. 15km정도 남았다.
길도 좋고 차도 없고 다 좋은데 맞바람이다. 뭐 언제나 완벽하길 바라는 건 억지지만 참 사람이라는 게 그렇다. 날이 더우면 좀 시원했으면 싶고 바람 불면 또 불만이고…
그렇게 맞바람과 싸우며 와이코아이티 캠핑장에 도착했다. 중간에 가게에서 샀던 소시지와 양파를 볶아 먹었다. 그런데, 식당에서 밥을 먹고 와보니 바람에 텐트가 쓰러져 있었다.
텐트를 다시 제대로 쳤는데 밤새 잘 잘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오늘은 정말 하루 종일 "바람"과의 싸움이다.

캠핑장 식당에서 네덜란드에서 온 Jabe라는 사람을 만났다. 직업이 건축설계사인데 최근 유럽에 새 건물에 대한 수요가 없어서 6개월간 휴식을 하러 왔다고 했다. 그래서 오자마자 밴을 사서 거기서 먹고 자면서 이곳 저곳 낚시하러 다닌다고 한다. 차로 여유 있게 여기저기 다니는 걸 보면 나도 차로 여행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까는 두네딘(Dunedin)에서 선생님 한다는 아저씨를 만났는데 가르치는 학생 중에 한국아이들도 있다고 했다. 부모님이 대학교수로 온 케이스인데 그 덕에 김치도 먹어봤단다. 오늘은 캠핑장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낮에는 자전거를 타고 저녁에도 아무 말 안 하면 하루 종일 벙어리다. 그래서 길에서 만나는 사람은 항상 반갑다.

파머스톤에서 와이코아이티 가던 길에 찍은 사진.
자전거로 달리다 보면 항상 저 언덕 끝에 뭐가 있을까 궁금해진다.

주행 시간 : 5시간 50분
주행 거리 : 74km
평균 속도 : 12.6km/h
최고 속도 : 57.4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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