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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속에서 나를 구해준 티(Te)
2010-03-24   이동원

푹신한 침대에서 따뜻하게 자니까 확실히 컨디션이 평소보다 더 좋았다. 오늘도 흐리고 비가 좀 쏟아질 날씨다. 그래도 잠을 제대로 잔 만큼 몸은 가벼웠다.
파파토와이(Papatowai) 해변을 들러 큐리오 베이(Curio Bay)가 오늘 중간목적지이다. 큐리오 베이는 쥐라기시대의 숲 화석이 있는 곳으로 지질학적으로 전 세계에 2곳뿐인 중요한 곳이란다.
자전거만 타고 풍경만 보는 것보다 가끔은 관광지도 들릴 필요가 있기에 20여km가 추가되지만 들리는 것으로 정했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길에는 차가 거의 없었다. 지금 달리는 길은 관광지와 연결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평일에는 차가 적다. 그에 반해 많은 자전거 여행객을 만날 수 있었다. 현지 뉴질랜드인 뿐만 아니라 캐나다, 독일 등등 그 국적도 다양했다.

파파토와이의 멋진 해변

40여km를 달려 큐리오 베이에 도착했다. 차도 없고 덥지도 않고 자전거 타기에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큐리오 베이에는 평일임에도 많은 관광객들과 캠핑카들이 있었다. 이곳은 화석으로도 유명하지만 파도가 높아 서핑으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큐리오 베이는 그야말로 신기 그 자체였다. 1억7천만년 전 쥐라기시대의 나무 화석들이 아직까지 잘 보존되어 있었다.

큐리오 베이. 지금은 바닷물에 잠긴 이곳이 1억7천만년 전에는 숲이었다고 한다.

화석을 분석한 후 나무의 종류와 위치들을 예상하여 나온 상상도

이게 바로 쥐라기시대 나무가 있었던 자리라고 한다.
얼핏 봐서는 잘 모르겠지만 자세히 보면 나무의 나이테 같기도 하다.

이것은 당시 화산활동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돌이다.

큐리오 베이의 화석들을 보고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앞으로 13km가 비포장이라는 표지판이 나왔다. 돌아가면 30km정도가 추가된다. 고민하다가 그냥 비포장으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비포장의 상태가 생각보다 좋았다. 자갈보다는 고른 흙으로 된 시골길이었다. 오늘 목적지인 포트로스(Fortrose)까지는 32km다.

앞으로 비포장이 13km라는 표지판. 이런 정보는 정말 유용하다.

포장은 안 되어있지만 도로상태가 생각보다 괜찮았다.
차가 많이 다니는 길인지 흙이 평평하게 펴져있었다.
이정도 비포장이면 어지간한 포장도로 못지않다.

좋은 도로상태에 만족하며 달린지 10여km 지났다. 갑자기 앞에 엄청난 먹구름이 보였다.
남쪽에서 오는 구름이라 그런지 바람도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구름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10여분 후 나는 먹구름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엄청난 바람과 비 때문에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자전거를 타는 것은 불가능했고 끄는 것마저도 힘들었다.
바람이 하도 강하게 불어서 빗방울이 아닌 모래를 맞는 듯한 느낌이었다.
앞으로 20km는 더 가야 다음 목적지가 나오는데 어떻게 하나?
구름으로 봐서는 금방 비가 멈출 것 같지 않았다.

갑자기 몰려오는 먹구름.
뉴질랜드의 대부분 지역이 날씨를 예측하기가 힘들지만 남쪽으로 갈수록 심해진다.
지금 날씨가 좋다고 해서 안심하기는 이르다. 몇 시간 후 비바람 한가운데 서있을 수도 있다.

그때 갑자기 앞에 개들 짖는 소리가 들렸다. 먹구름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는데 한두 마리가 아닌 5마리 이상인 것 같았다.
설상가상이다. 어둡고 춥고 비바람이 부는데 개까지?
갑자기 모에라키(Moeraki)에서 끈 없이 짖어대던 개가 생각났다. 여기서 개들한테 물리면 죽음이다. 주변에 사람도 없고 언덕이라 도망갈 곳도 없다.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첫 번째 나오는 집에 들어갔다. 나는 지나가는 자전거 여행객인데 날씨도 춥고 어두워서 그러니 하루만 묵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의외로 흔쾌히 승낙했다.
티(Te)라는 40대 남자였는데 마오리와 백인의 혼혈이었다. 집이 겉에서 보기와는 다르게 현대식으로 매우 깔끔했다. 이 주변일대가 그의 가족들이 운영하는 농장이란다. 자전거 타고 지나오면서 본 수없이 많은 양들이 모두 그의 가족의 것이라니 그 숫자가 상상이 안 갔다.
따뜻한 차를 내주며 샤워하라며 뜨거운 물을 데워주는 그가 너무 고마웠다. 이번 자전거여행을 하며 3명의 현지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는데 티가 그 마지막으로 정말 고마웠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몸을 녹이니 어둠 속에서 비 맞으며 더 안간 것이 너무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그대로 계속 갔으면 길에서 얼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지나가는 이방인인 나를 흔쾌히 재워준 그는 생명의 은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우연일지 몰라도 나를 구해준 티(Te)의 차는 현대 아반테 투어링이었다.

티(Te) 집에서 반가운 것을 발견했다. 하회탈이다.
그의 약혼녀가 선물한 것이라는데 한국 것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주행 시간 : 5시간 2분
주행 거리 : 63km
평균 속도 : 12.6km/h
최고 속도 : 48.9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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