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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바이크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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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처음 암을 발견했나요?
임관 당시 모습 |
3사관학교(경북영천)에서 4개월간 교육을 잘 받고 임관을 했는데 그때 처음 맞춰 둔 임관복을 최종 가봉하는데 대부분 고된 훈련으로 줄이거든요, 전 특이하게 허리만 2인치가 늘었더군요. 게다가 교육받을 때 몸도 무겁고 피곤하고 소화도 잘 안되고 했었는데 임관하고 한달쯤 지나 좀 지나친 것 같아 군의관을 찾았는데 그때 배속에 주먹만한 게 있다며 여기선 안되니 큰 대학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대학병원을 찾아 2주에 걸쳐 조직검사를 받았었는데 결과가 너무 참담했었죠.
Desmoplastic small round cell tumor(결체조직작은원형세포암)라는 희귀한 암에 4기라는 진단을 받고 시한부 판정을 받았으니까요.
이미 복수가 차 허리 인치수가 늘었던 거더군요.
이 암은 일반적인 암과 달리 장기조직 내에 생기는 게 아니라 장기 바깥 쪽에서 자라 증상이 없어 늦게 발견된다고 하더라구요.
우리나라에는 아직 보고된 적도 없고 세계적으로도 근 200여명 밖에 걸리지 않는 말그대로 희귀암인거죠. 그게 벌써 2년반 전 일입니다.
그 간의 투병생활 이야기를 여쭤봐도 될까요?
처음에는 수술도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희망이 없었죠.그래서 우선 항암치료부터 했는데 4차에 걸쳐 강하게 하고 나니 암세포가 좀 줄었다는 소견이 있어 처음으로 개복수술을 했습니다.
그 후로도 지속적인 항암치료를 21차례나 받았습니다.
올 2월 초에도 비장,쓸게,오른쪽 횡경막을 떼어내는 큰 수술을 했구요.
암환자들이 대부분 겪는 감정들이 있는데, 분노하고 왜 하필 나인지 원망스럽고 화난 감정들이죠. 처음엔 저도 똑같이 경험했습니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군생활 잘 마치고 임용고시 봐서 체육선생님 되는 것이 꿈이었거든요.
그런 것이 다 물거품이 되버리는 순간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함께 투병생활하던 동료환자들이 하나둘 세상 떠나는걸 보면서 이렇게 원망만하고 있을 순 없다싶더라구요. 좀 더 긍정적으로 희망을 가지면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투병 때 군대 동기들과 함께. |
자전거를 타게 된 계기가 있으세요?
투병생활 중에 여러가지 책을 읽었는데 그때 우연히 랜스 암스트롱의 '1%의 희망'과 '이것은 자전거 이야기가 아닙니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랜스도 투병 생활할 때 나와 공통점들이 있더군요. 예를들어 소변을 볼 때도 마인트 컨트롤 하면서 암세포가 소변에 다 빠져 나가는 상상도 하구요~
일상 생활에서도 그렇게 많이 이미지 트래이닝을 하고 있었는데 참 공감가는 이야기였어요.
그러다가 랜스가 뚜르 드 코리아 때문에 한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때 막 항암치료 끝 무렵이어서 퉁퉁 부은 얼굴에 머리는 다 빠져, 모자 하나 눌러쓰고 갔었습니다. 내 차례가 되어 다가가자 랜스도 암묵적으로 내가 암환자라는 걸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책을 내밀며 'I have cancer'라고 이야기하자 랜스가 'Naver give up!'이라는 메세지로 절대포기하지 말라고 사인을 해 주더군요.
그 때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도 "랜스처럼 자전거를 타자, 꼭 암을 이겨내 나와 같이 희귀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랜스처럼 희망을 주자"라고 결심을 했습니다.
랜스 암스트롱을 만나 사인을 받을 때.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가운데 박스 안이 랜스의 친필 사인 |
항암치료 중에 가장 힘든 게 무엇이었나요?
함암치료가 20여차례 반복되니까 몸은 3주에 한번씩 주기로 어떻게 힘들지 감지를 하는 것 같아요. 눈썹조차 없는 얼굴이나 구토, 이런 건 사실 몸이 힘든 것이지만 그것보다 힘든 건 마음이 아픈 것이었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이 이렇게 아픈 걸 지켜보면서 힘들어 하시는 부모님을 보는 것...
그게 제일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부모님 앞에서는 괜찮다고 많이 웃어드렸어요.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으니까요.
자전거 타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사실 제가 그 당시 항암치료 중이어서 선뜻 남들과 함께 자전거를 탄다는게 쉽진 않았어요.
그래서 항상 혼자 타고 다녔죠.
그러다가 우연히 이곳(맥스바이크 매장에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을 지나가다가 '맥스바이크'가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어 동호회분들이 모여 있더라고요.
관심도 있고 해서 들어 왔다가 사장님과 좋은 인연이 되어 여기 동호회분들과 타게 되었습니다.
나의 사정을 알고 내 수준에 맞춰 함께 타 주시고, 정말 고마운 분들입니다.
어느정도 트래이닝이 되었을 때 서울-속초구간을 완주를 하게 되었어요.
사실 주치의에게 이야기했으면 못 갔을 거에요, 소화제, 진통제 등 비상약을 챙겨서 다녀왔죠.
지금에야 이야기하지만 나에겐 큰 모험이었고 그 모험에서 완주를 했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그러면서 랜스가 대회에서 우승한 이야기도 듣고 하다보니 나도 랜스가 돌았던 코스를 완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감도 생기더군요.
개인적으론 랜스가 고환암을 극복하고 출전하여 첫 우승을 했던 99년 코스를 도는 게 의미 있을 것 같아 그에 대한 자료를 모으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갔던 속초, 미시령 정상에서.. |
자전거가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되었나요?
자전거를 타고 부터는 육체적으로 힘든 항암치료를 받고도 회복이 빨라진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번 2월 수술 후에 회복을 위해 금식을 했더니 살도 많이 빠졌습니다.
자전거 타기에 아주 적합한 몸이 된거죠.ㅎㅎ
새로 맞이한 자전거에 적응훈련중. |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요?
사실 3600여킬로미터나 되는 대장정이라 체력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게 많습니다.
시합은 3주에 걸쳐 하지만 전 최장 50여일을 목표로 잡고 있어요.
대학 때 교수님께 프랑스 가는 일정에 맞춰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부탁 드렸고, 요즘은 일주일에 두 번 인터벌트레이닝과 장거리 라이딩을 한번 하고 있습니다.
내게 쓰인 항암제의 부작용 중에 하나가 심장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빨리 뛰어버리는 경우가 있어서 그걸 잡기 위해 심박계를 차고 훈련하고 있지요.
그 외에는 가벼운 웨이트 트래이닝을 하고 동호회분들과 라이딩도 하고 합니다.
코스에 대해서는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프랑스 현지 지인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고요.
동행해 주실 마음 맞는 분들도 섭외가 된 상황입니다.
자전거도 로드로 바꿔야 하는데 마침 인터넷에서 제 사연을 보신 동호인분이 제가 타기엔 과분한 자전거를 제가 타던 MTB와 바꿔 주셨습니다.
올 7월 말에 뚜르 드 프랑스 대회가 끝나면 투어를 시작할 예정입니만 경제적인 게 문제입니다.
주위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고 계신데 환율도 그렇고, 아직은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 많은 분들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뚜르 드 프랑스 코스 완주가 주는 의미는 뭘까요?
투병생활 중에 함께 하던 어린 녀석이 하나 있었습니다.
열여덜살에 골육종으로 투병하다 작년 5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른 동료들이 세상을 떠날때마다 정말 많이 울었었는데 그녀석 보내고선 울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녀석이 제게 뭔가 메세지를 주고 간 듯한 느낌이었거든요.
형은 더 오래 살아서 자기가 해보고 싶었던 것 더 많이 하고 오래 살아 달라고...
지금 전 혼자지만 제 어깨 위에는 앞서 간 많은 분들의 염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들의 염원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또한 나와 같이 희귀병으로 보험혜택도 제대로 못받고 있는 다른 환자들에게는 또다른 희망일 것이고요.
완주 후 목표가 있으세요?
완주는 끝이 아니고 또 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로 디탈리아, 부엘타 에스파냐, 그리고 국내 뚜루 드 코리아 코스도 도전해 보고 싶고요,
철인3종에도 도전 해보고 싶습니다.
궁긍적인 목표는 제가 더욱 건강해져서 많은 암환자들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전달하고 새로 얻은 삶은 봉사하며 살고 싶습니다.
나에게 자전거는OOO이다?
자전거는 나에게 꿈이자, 도전이자, 희망입니다.
희망으로 가는 매개체죠. 암에 걸리고 극복하고자 읽은 책에서 랜스를 알게 되었고 그를 만나고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랜스가 암을 극복하고 첫 우승을 한 코스도 완주에 도전하여 아직 어두운 곳에서 의료 혜택도 제대로 못 받으며 투병생활 하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맥스바이크 윤영관 사장님과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