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맞는 추석 명절
에디터 : 박규동

9월 24일(火)     야영. 공원(키얀쿠타)
                   킴바 → 키얀쿠타

아침식사 닭백숙,밥,짱앙치,야채,우유
07:35 10℃ 구름 서풍중약
07:40킴바에서 출발
09:00휴식 오렌지쥬스 11℃ 구름 서풍중약
09:53휴식 비스켓,치즈 14.5℃ 비 남서풍중
10:55-11:20휴식 데이빗 만남 바나나,치즈 12.5℃ 비 남서풍중
12:20-12:40 점심식사 도로옆 키얀쿠타43km전방 식빵,스테이크,계란후라이,햄 18.5℃ 구름 남서풍중
13:35휴식 치즈 17℃ 구름 남서풍중
14:12휴식 바나나 17.5℃ 구름 남서풍중
15:22휴식 식빵,계란,치즈,커피 17℃ 구름 남서풍약
16:20휴식 식빵,치즈,오렌지쥬스 14.5℃ 구름 남서풍약
17:00휴식 요구르트 귤 14℃ 맑음 남서풍약
17:30뒤에 깜빡이등을 닮
17:30키얀쿠타(Kyancutta)에 도착 숙소가 없음
공원에서 야영 남위:33°08.0‘동경:135°33.2′
저녁식사 스테이크,밥,된장국,야채,짱아치


최고속도33.8
평균속도11.5
운행시간7.53.01
주행거리91.31
누적거리2375.0

새벽부터 맞바람에 겹쳐 비가 오락가락 하였다. 07시에 출발 예정이었으나 천기를 살피다가 결국 07시 40분에 늦게 출발 하였다.

밀밭 부근은 정말 날씨 변동이 팥죽 끓듯 한다. 12시, 1시 방향 맞바람이 계속 불었으며, 도중에 세 차례나 집중호우를 만났다. 어제는 58Km밖에 운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놓친 거리를 회복하려고 열심히 달려왔다. 92km 주행. 키얀쿠타에 18시에 도착.
지도에 표시된 도시는 온데 간데 없고 대형 곡물싸일로와 로드하우스 하나, 집 다섯 채.
그나마 로드하우스는 17시 30분에 폐점하였다. 할 수 없이 근처의 조그만 마을 공원에서 야영을 했다.
아마 14km를 더 가야 있는 운디나(Wundina)에 타운이 형성돼 있나 보다.


11시경, 데이빗이라는 퍼스에 사는 젊은 친구가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다가, 길가에서 쉬고 있는 우리한테로 와서 반갑게 대화를 나누다 갔다.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여행자들은 많았으나 직접 대화를 나누기는 처음이다.
데이빗은 춥다고 했다. 오토바이는 가만히 앉아서 찬바람을 맞기 때문에 퍽 춥다고 하였고, 우리는 덥다고 대답했다. 몸을 계속 움직이며 온 몸으로 페달링 하는 우리는 더운 것이다. 퍼스에 오면 전화해 달라고 번호를 적어주고 갔다.
고마운 길 친구.

9월 25일(水)     푸체라(Poochera) 카라반파크 카라반(하나 밖에 없슴)
                    키얀쿠타 → 운디나 → 미니파 → 푸체라

05:40 -2℃ 맑음 바람없음
아침식사 식빵,햄,커피
07:05키얀쿠타에서 출발 2℃ 맑음 바람없음
08:10-08:35운디나(Wundina)도착 간식 소시지,콜라 12℃ 맑음 북풍약 간식비$5.70
09:25휴식 15.5℃ 맑음 북풍약
10:35휴식 커피 17.5℃ 구름 북풍약
11:25휴식 비스켓,치즈 20℃ 구름 북서풍중약
12:20-13:35미니파(Minnipa)점심식사 로드하우스 햄버거,우유 식사비$13.00 구입품 식빵 $1.67 계란 $2.95 양상치 $1.70 바나나4개 $2.27 버터500g $1.75 비스켓2개 $2.92 커피우유 $1.70 오렌지쥬스 $4.02 컵스프8봉 $2.68 꿀 $2.58 닭1마리 고기1.5kg $21.00
14:35휴식 22.5℃ 구름 북서풍약
15:25휴식 오렌지쥬스 22℃ 구름 북서풍약
16:15휴식 25℃ 구름 북서풍약
17:00푸체라(Poochera)도착
카라반파크 남위:32°43.2′동경:134°50. 3′
카라반 숙박비 $15.00 맥주2캔 $2.70
저녁식사 닭백숙,밥,짱아치,야채


최고속도24.4
평균속도11.8
운행시간7.21.15
주행거리87.25
누적거리2462.3

간밤에는 몹시 추웠다. 가위가 눌리는 꿈도 꾸었다. 들개 떼가 몰려와 텐트를 둘러싸고 덤벼드는 그런 꿈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기온은 영하 2℃. 무슨 짐승이 왔었는지 스테이크용 쇠고기 이틀 분을 한 조각만 남기고 다 먹어 버렸다. 두렵고 어설픈 아침이었다.

창민이 대장이 수송하는 20ℓ짜리 물통에 작은 구멍이 생겨서 조금씩 물이 흘러 가방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적셔 버렸다. 그래서 어제 밤에 말리려고 널어놓은 옷가지가 모두 얼어 버린 것이다.
특히 장기간 야영 경험이 없는 창민이 대장의 낭패스러운 표정이란! 그래서 영하 20℃가 넘는 고산에서의 야영 얘기를 해 주었다. 물이 얼고, 석유가 얼고, 바람이 얼고, 마음까지 얼어 버리는 고산캠프에 비한다면 지금은 따뜻한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느끼고 체험하면서 창민이 대장도 성장하는 것이겠지.


창민이 대장이 늘 앞에서 달린다. 고갯길을 오를 때에는 힐끗 힐끗 뒤를 돌아본다. 언덕을 힘들게 오르는 나를 걱정하는 몸짓이 선하다. 로드트레인이 지나가고 나면 그 바람몰이에 아버지가 어떻게 되지나 않았나 하고 뒤돌아 보고는 꼭 확인을 한다. 또 내가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머뭇거리기라도 하면 무슨 사고라나 생겼나 하고 불안해진 창민이가 부리나케 뒤돌아 온다. 창민이 대장. 막내 아들.

내일 모래, 27일은 추석이다.
에어반도 북단 횡선을 거의 통과하였다. 내일 저녁 도착 예정지를 약간 바꿔서 남해안 마을 하슬램(Haslam)으로 가기로 하였다. 바닷가에 넒은 터가 있다면 그 곳에 텐트를 치고서 추석 아침에는 차례를 지내야 겠다.

킴바에서 여기까지는 밀밭이 계속 이어지고 있고 내일도 그런 밀밭지역을 지날 것 같다. 지나온 마을마다 대형 곡물 싸일로가 설비되어 있는데 한 통에 몇 백만 톤씩 들어 갈 크기이다. 에어반도 해안도시의 항구마다 곡물 싸일로가 설비되어있는 것을 안내책자의 사진에서도 보았다. 아마 많은 양을 수출하는 모양이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호주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양의 밀을 수출 한다고 한다*

하나쯤 헐어서 북한 동포들에게 보내 줬으면 하는 생각이 났다. 잠수함으로 무장간첩을 보내 와서 온통 난리라는 소식을 전화로 전해 들었다. 배가 고파서 왔는지? 배고픈 것 보다 더 절실한 문제가 어디 있겠는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신들에게 부탁합니다. 제발 우리 북한 동포들 배 굶지 않게 해 주세요!!
 
전생에 내 영혼이 살던 별에서는 먹는 것이 간단해서 한 번 먹으면 거의 평생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온갖 걱정이 없었다. 그래서 다른 별로 긴 여행도 하고, 눈빛 만으로도 대화를 하며 사랑을 나누고, 세상의 미래와 과거를 기억하며, 우주의 평화를 위해 노래할 수 있었다.
지구별 사람들 사는 방법, 어렵지만 또한 재미있는 게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지구사람으로 충실하게 살아야지!!

9월 26일(木) 야영.하슬램 해변(Haslam)
                      푸체라 → 하슬램

05:55 1℃ 맑음 바람없음
아침식사 끓인밥,스테이크,짱아치,야채
07:20푸체라에서 출발
08:28휴식 13.5℃ 맑음 바람없음
09:05휴식 바나나 15℃ 맑음 남풍약
10:10휴식 비스켓,치즈,커피 18℃ 구름 남풍약
11:45-12:05식사 도로옆 푸체라38km후방 식빵,햄,커피
13:00휴식 21℃ 맑음 남풍중약
13:30휴식 21℃ 맑음 남풍약
14:23휴식 오렌지쥬스,비스켓 21℃ 맑음 남풍약
15:20휴식 비스켓,치즈 26℃ 맑음 남풍중약
15:55하슬램(Haslam)도착 바닷가 공원에서 야영
남위:32°30.6′동경:134°12.8′
저녁식사 밥,된장국,스테이크,야채,짱아치


최고속도26.9
평균속도11.7
운행시간6.43.05
주행거리79.23
누적거리2541.5




진로를 약간 변경하여 미리 바닷가로 왔다.
그렇게 해서라도 빨리 바다가 보고 싶었다. 하슬램은 세두나 동남쪽에 위치한 조그만 해안마을이다. 바다를 빨리 보고 싶은 생각이 앞 서서 도마뱀이 우글 되는 비포장 도로를 헤치고 온 것이다. 내일은 세두나에 도착하여 눌라보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저녘에는 둥근달이 휘영청 바다 위로 떠 오른다. 내일이 추석이다. 일찍 일어나서 조상께 감사 차례 올리고 출발해야겠다. 집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아내가 송편 빚을 준비가 다 되었다고 한다. 밝은 목소리에 가족들이 떠드는 소리가 수화기에 섞여 들린다. 또 반가운 소식은 이사 올 때 구해 놓은 풍란이 어렵사리 꽃을 피웠다고 한다. 돌아갈 때까지 꽃이 기다려주었으면 좋겠다.
뭉클, 가족들 모두가 보고싶다!





오후에는 비포장 도로 42km를 직선으로 왔다. 차량도 하루 종일 한 대 밖에 보지 못했다. 차를 몰고 지나가던 노인네도 반가운 마음인지 차를 멈추고 길 가운데 서서 한참동안 얘기를 나누다가 갔다.
한가한 길이라 길 한가운데로 창민이 대장과 둘이서 나란히 달렸다. 사람이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 좋은 풍경, 맛있는 음식, 공해 없는 공기가 아무리 좋아도 사람이 사람 만나는 것만 못한 것 같다. 한국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한국어로 말 좀 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런 황토 길을 종일 달려 와서 하슬램 해변에 위치한 공원에 닿았다.



이미 카라반이 세 대나 와 있었고 퇴직 후 여행을 하고 있는 노인네들이 환영을 해 준다. 사람을 만난 것이다. 눌라보에 관한 정보도 얻고 이런 저런 얘기에 벌써 해가 저문다.

낙조, 바다로 잠기는 석양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석양 주변을 깃털처럼 날아다니는 진홍 빛 구름. 갈대 숲에 비치는 노을의 역광은 마음을 평화롭게 마무리 해 준다.

텐트는 가옥이다.
차가 끌고 다니는 카라반도 가옥이다. 그러나 텐트는 더 따뜻하다. 가볍고, 날아갈 듯이 가볍다. 아버지와 아들이 쓰는 2인용이라서 더욱 따뜻하다. 비가 와도 좋고 눈이 와도 좋고 바람이 불어도 좋다. 텐트 안에 있을 때에는 궁전이다.
바닷바람이 세차게 분다. 남동풍이 불면 북서 쪽으로 입구를 세우고 뒤로 바람을 받게 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날마다 헐고 짖는 이동주택, 한 번도 같은 곳에서 하루를 더 지내지 못하고 옮겨 다니지만 캠프를 하고 저녁마다 텐트를 새로 짓노라면 우리는 얼마나 평화로운지!

밤에는 바람이라도 잦아줄까?


치명적인 독을 갖고있다는 느림보 대형도마뱀을 수 없이 보았다. 비포장 도로에서는 사람의 왕래가 없다 보니 동물들이 자기 세상처럼 나다닌다. 느림보인 이 녀석은 꼭 악어 새끼처럼 생겼는데 자전거가 다가와도 도망가기는커녕 입을 크게 벌리고 공격 자세를 취한다. 그렇게 허세 부리다 차에 치여 죽은 녀석이 수 없이 많다.
동물이고 사람이고 아웃백에 오래 머물다 보면 세상 보는 척도가 바뀌는가 보다.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비포장도로 한가운데에서 길을 잠시 잃었었다. 결국 GPS의 도움으로 위치를 확인하고 바른길을 찾아 들었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개인이 위성의 도움을 받는, 소위 디지탈 나침판의 혜택을 받은 것이다.
GPS에 의하면 현위치를 cm의 오차로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는 움직이는 모든 물체의 자료를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동간의 관리 조정이 가능할 것이다. 한 예로 호주대륙이 한반도를 향해 1년에 8cm씩 옮겨 오고 있다는 사실도 GPS에 의해 발견된 진실이다.



9월 27일(金) 세두나(Ceduna) 카라반파크 캐빈 #3
                     하슬램 → 세두나

06:00 3℃ 맑음 동풍약
추석이기 때문에 아침에 차례를 지냄
07:53하슬램에서 출발 9.5℃ 맑음 동풍약
09:00휴식 요구르트 15℃ 구름 동풍중
10:00휴식 바나나,커피 18.5℃ 구름 동풍중
11:05휴식 비스켓,치즈 22℃ 구름 북동풍중
12:00-12:26점심식사 도로옆 세두나36km전방 식빵,스테이크,계란후라이,커피 22℃ 구름 북동풍중
13:17휴식 21℃ 구름 북풍중
13:31비로 인해서 옷을 갈아입음 19℃ 비 북풍약
14:10휴식 바나나 19℃ 구름 북풍약
14:37휴식 15:00세두나(Ceduna)도착
카라반파크 남위:32°07.6′동경: 133°40.7′캐빈
숙박비 2일$60.00 물품구입 칼슘 50알 $9.95 비타민E 30알×2 $30.70 멘소레담로션 $8.30 우유2ℓ $2.67 요구르트4 $1.77 오렌지쥬스2ℓ $4.04 꿀500g $2.60 커피 $4.22 양배추 $1.30 소꼬리2.5kg $13.51 고기 $9.44 바나나4개 $1.26 양상치 $1.89 호박4개 $6.98 귤 $2.03 셀러리 $0.95
저녁식사 쇠꼬리 탕,호박조림,밥,짱아치,야채


최고속도28.6
평균속도12.6
운행시간5.45.09
주행거리73.07
누적거리2614.5


물새 떠드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06시.
텐트 밖을 나와 보니 보름달이 바다 속으로 잠기고 있었다. 저녁해가 바다에 잠기는 모습은 많이 보았지만, 새벽에 보름 달이 바다로 스며드는 장면은 정말 시적이다. 자연서정시 수 만 편을 한꺼번에 써 놓았다 해도 지금의 광경에 비하면 어림도 없을 것 같다. 그런 그림이다. 참 멋지다!
바다는 해도 먹고 달도 먹는구나.

잠시 후, 반대편 동쪽에서는 바람과 함께 해돋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모두 서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해도, 달도, 시간도, 우리도.


추석날 아침이다.
토스트와 스테이크를 구워 놓고 맥주를 씨에라 컵에 부어 올리고 차례를 지냈다.
'조상님들, 이번 여행이 무사하기를 빌고요, 친척, 친지들 잘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캠프장의 여러 분들에게도 오늘은 한국의 추수감사절이라고 설명하고는 씨에라 컵에 맥주를 나누어 마셨다.

하슬램에서 세두나까지는 71km. 지평선과 수평선이 엇갈리며 나란히 해안선을 따라 서쪽으로 서쪽으로 뻗어 있다. 우리도 추석을 쉬지 않고 에어 하이웨이를 따라 서쪽으로 왔다.

15시 세두나 도착. 카라반파크에 잠자리를 마련하고는, 시내 중심가로 가서 식량과 의약품, 자전거 부품들을 샀다. 금요일 오후라서 꽤 붐빈다. 세두나는 관광과 교통의 요지이다.
세두나에서 웨스턴오스트랄리아 주 노즈맨까지는 1210km이며, 중간에 마을이 없기 때문에, 동쪽 출발지인 이 곳에서 자고, 쉬고, 먹고 하는 여행객들이 많이 눈에 뜨인다. 이 구간이 통칭 "눌라보"라 불려지는 클래식 루트이다.

1210km, 세두나에서 노즈맨까지는 눌라보 평원이라고 부른다.

눌라보,
호주원주민 언어로 나무가 없다는 뜻이란다. 바닥의 흙도 대부분 모래다. 퀸슬랜드 주와 뉴사우스오스트랄리아 주 일부는 검은 색 진흙이고, 그제까지는 황토 진흙이었는데, 어제 오후부터는 흙이 회색으로 바뀌더니 오늘부터는 바닥이 모래로 바뀐다.
우리가 그렇게 변화 무쌍한 대륙을 따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의 모래땅은, 모래도 아주 고운 모래인데 소변을 보면 떨어지자마자 물기가 없어져 버린다.

눌라보, 나무가 없는 대평원, 그 눌라보 사막 구간을 우리는 15일내지 20일에 주행해야 한다.
창민이 대장이 열심히 운행 세부계획과 식량계획을 짜고 있다. 식량의 무게도 엄청나지만 도중에 물 공급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

식품점에서 마침 쇠꼬리를 팔기에 사다가 저녁에 꼬리 곰탕을 만들어 먹었다.

날씨가 따뜻해 지면서 파리와 모기가 극성이다. 알래스카에서도, 낮 모기가 수 없이 덤벼드는 경험을 했었는데 이 곳에서도 그렇다. 파리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 간식을 하는 동안에 더욱 기승을 부린다. 토스트를 먹을 때에는 특히 조심을 하지 않으면 파리도 함께 씹어 먹는다.
모기는 자전거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지만 파리는 계속 따라 다닌다. 꼬리차에 타거나 사람의 등에 앉아서 힘 안들이고 이동하며, 가끔 얼굴에 와 앉는다. 눈과 코, 귀 등 구멍이 되는 곳에는 습기가 있어서인지 파리의 관심이 더 많은 모양이다. 애완동물처럼 심심풀이로 함께 가는 것이다.
파리 떼가 극성인 반면 새들의 모습은 점점 사라진다. 새들도 살기가 벅찬 환경인 모양이다.

퍼스-1,965km. 나머지가 자꾸 줄어들고 있다. 2,000km도 안 남았다니 신나는 소식이다.

도중에 잠간 비를 맞았다.
봄비, 봄비를 맞으면 고향 생각이 난다.
어릴 때,
고향에서는 비가 내리면 삿갓을 쓰고 다녔다. 통 통 통. 삿갓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참 좋았었다. 한지에 콩기름을 듬뿍 먹인 후 햇볕에 내다 말리면 그것이 유지가 된다. 우산처럼 펼쳐진 대나무에 덧씌운 유지는 삿갓이 되어 비를 피할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말라서 바싹 긴장된 유지는 비를 맞으면 여러 개의 작은 북처럼 통 통 통 북소리를 내곤 하였다.
비에 젖지 않게 해주는 삿갓의 공간적 지혜. 그 삿갓 아래에 있다는 넉넉한 여유. 그런 게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는 삿갓도 우산도 없다. 비가 오면 부리나케 꼬리차에 덥게를 씌운다. 우선 먹고 입을 것이 젖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는 방수자켓을 껴 입는다. 그것으로 그만이다. 내리는 비를 맞으며 가는 것이다. 헬멧은 구멍이 많이 나 있어도 엄청나게 비를 막아 줄 것 같고, 바지는 젖어도 곧 마를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다. 다만 안경에 비가 내리치면 시야가 흐려지기 때문에 그게 조심스럽다.
빗소리에 차량이 다가오는 소리가 묻혀 버려서 간혹 나타나는 차량들의 움직임을 미리 파악하지 못하여 갑자기 차가 나타나면 깜짝 놀라기도 한다.
삿갓 쓰고 소꿉동무들과 논두렁 길을 걷던 것과는 다르지만, 봄비를 맞으며(이 곳은 봄비다) 자전거를 타노라니 고향 생각이 절로 절로 난다.


내 나이가 얼만데!
나이는 살아온 시간적 거리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움직이는 물체는 움직이지 않는 물체보다 시간이 느리게 간다. 나는 많은 거리를 움직이며 살아왔다. 자동차를 몰며 비행기를 타고, 별과 별 사이를 왕래하고, 자전거 바퀴를 수 없이 굴렸다. 남들보다 많이 돌아다녔다. 역마살이 끼었다고들 놀리기도 한다.
그래서 내 나이는 젊지 않게 사시는 같은 내 나이 또래 분들보다 젊고 덜 먹었다는 뜻이다. 상대성이론의 공식이 까다롭기 때문에 이제 와서 그 계산으로 정확한 내 나이를 산출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내 나이는 나 보다 젊다는 게 내 소신이다. 왜냐하면, 내가 돌아다닌 거리는 보통 사람들이 2750년이나 다녀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그 시간을 빼고 나면 나는 아직도 지구에 태어나지 않은 나이 이기 때문이다.

고향생각을 할 수 있을 만큼, 소꿉동무가 그리운 만큼 나는 내 나이가 젊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내 영혼이 웃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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