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도착, 여행을 준비하다.
에디터 : 박규동

1996년 8월 18일(일)     브리즈번 시티 유스호스텔(Brisbane City Youth Hostel)
                      뉴질랜드 오클랜드 → 호주 브리즈번

드디어 호주에 왔다. 신비의 대륙, 지금도 외계인이 오가며 아직도 탐험되지 않은 미지의 땅을 갖고 있는 곳!
걷거나 자전거로 가야지만 호주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나를 빨아들이는 대 평원.

11시에 중간기착지인 호주 브리즈번에 도착하였다. 영민이와 스키 회원 일행은 곧 바로 서울로 가고 나는 입국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나오니 창민이가 마중을 나와있다.
시내 유스호스텔에 싼 값으로 방을 얻어 둔 창민이 대장의 선택이 마음에 들어 이곳에 묵기로 하였다. 입실하자 마자 낮잠을 잤다. 오후에는 자전거 수리, 진행코스 선정, 한국 마켓에서 장보기, 트레일러 조립, 자전거 컴퓨터 장착 등으로 보냈다.
모처럼 우리 부자가 함께 요리한 저녁 밥은, 이 곳에서 만난 우리 나라에서 배낭여행 온 여러 학생들과 함께 했다. 된장 배추국, 새로 산 김치, 불고기, 흰 쌀밥, 생 배추와 양파를 된장에 찍어 먹었으며, 그들과 함께 짧은 밤에 긴 얘기를 나누었다.


창민이 대장과 나의 호주 자전거 횡단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용의주도한 창민이 대장이 트레일러 한대를 먼저 사서 조립하고 시험해 본 것이 마음에 들어서 나머지 한대를 더 주문하였고, 그것이 화요일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 트레일러는 어린이 탑승용인 것을 내부를 조금 고쳐서 짐 운반용으로 쓰기로 한 것이다. 화물 전용으로 된 것이 있다고 하나 별 차이가 없고 또 9월 이후에야 출시된다고 하여 이것으로 결정한 것이다.
2월부터 이곳에 와서 어학연수를 한 창민이의 영어 공부도 성과가 있는 듯 보였다.

된장을 풀어 배추국을 잘 끓이는 여인이 있다. 그녀의 말에서는 늘상 풋풋한 배추 풀냄새가 났었고, 손마디에서도 구수한 된장맛이 묻어나고 그랬다. 그녀의 고향은 풀냄새가 짙은 경상도 문경이었고, 그녀의 고향집 서른 두칸 초가지붕에 가을에는 빨간 고추가 열렸었다고 했다. 그녀의 어머니도 된장국을 요리처럼 잘 만들었고, 그녀의 어머니의 어머니도 배추국을 여러사람이 너그럽게 먹을 수 있도록 늘 넘치게 요리 했었다고 한다. 그녀는 항상 손가방을 들고 다녔다. 그 손가방에는 그 손가방보다 더 큰 꿈이 소담스럽게 담겨 있었다. 배추처럼 파아랗고 된장처럼 구수한 발효된 꿈이었다. 그녀의 발효된 꿈은 마치 향기처럼 그녀를 감싸며 따라다녔다. 산으로, 강으로, 마을에서 도시로, 땅에서 우주로,구름에서 하늘로 그녀의 가는 곳에는 언제나 향기처럼 된장국 냄새가 났었다. 그런 그녀가 끓인 된장국을 나는 은밀하게 얻어 먹은 기억이 있다. 된장 배추국도 향기가 될 수 있는 그런 경지의 소박함과 만물의 생태를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간절한 꿈을 나는 그녀에게 배울 수 있었다. 그 배추국을 먹은 건 행운이었다.

아들과 함께 된장 배추국을 끓이며 그 여인을 그려본다.
그 여인의 향기처럼 된장국을 마시고 싶다. 그리고 사막 여행 내내 나는 배추국을 끓이고 싶다.

자전거 브레이크 잡는 법에도 변화가 왔다.
나도 왼손 뒷 브레이크에서 오른손 뒷 브레이크로 바꾸어 쓰기 시작한 것이 거의 일년이 되어 간다.
자전거의 브레이크는 손아귀의 힘으로 작동된다. 핸들에 달려있는 브레이크 바를 손아귀 힘으로 잡아당기면 브레이크 바에 연결된 케이블이 당겨지며, 앞 뒤 바퀴 양쪽의 프레임에 연결된 브레이크 슈에 힘이 전달된다. 힘을 받은 슈가 바퀴의 림을 양쪽 바깥에서 안쪽으로 밀착시키며 압박을 가하면 정거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왼손을 뒷바퀴, 오른손을 앞바퀴 쪽 브레이크를 잡도록 관습화되어 있었는데 비해 미국에서는 오른쪽 손으로 뒷바퀴를 왼쪽으로는 앞바퀴를 잡도록 반대로 설치되어 있다.
최근에는 오른손으로 뒷바퀴를 잡는 형이 더 합리적이라는 여론이 형성되어 왼손 뒷바퀴에서 오른손 뒷바퀴로 바꾸어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도 금년에 들어서는 오른손 뒷바퀴로 바꿔 쓰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습관이 지워지지 않아서 왼손으로 앞바퀴 브레이크를 잡는 바람에 곤두박질 치기를 여러번 했지만 익숙해지고나니 오른손 뒷바퀴형이 훨씬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MTB를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오른손 뒷바퀴로 시작한다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겠다. 변속기 레버도 오른쪽으로 뒤 디레일러를 조정하기 때문에 오른손은 뒷쪽이다 하고 버릇을 만드는 것이다.

1996년 8월 19일(월)     브리즈번
                      계획, 자전거 조립,떠날 준비

기본계획을 세우고 자전거를 조립하느라 외출도 하지않았다.
호주 MTB횡단 계획, 브리즈번(Brisbane)-퍼스(Perth))기본 루트를 결정하였다.
남쪽으로 거쳐가는 길이다. 60일 일정.

출발은 태평양과 맞닿은 브리즈번에서 브로큰힐을 통해 포트오거스타

포트오거스타에서 세두나를 거쳐 눌라보 평원을 건넌다.

눌라보평원이 끝나는 노즈맨에서 쿨가디를 지나 퍼스까지 가는 것이 목적이다.

태평양에서 인도양까지. 브리즈번-브로큰힐-포트오거스타-세두나-노즈맨-퍼스로 이어지는 아웃백 약 5.000km

하루 주행거리 약 100km. 식사는 주식 세 번 외에 간식 하루 두 번씩. 가능하면 1주일에 한 번씩 샤워장이 있는 숙박시설을 이용.
식수 하루 20리터 외 비상용 준비. 스토브 두 대에 사용 연료는 화이트 개솔린과 부탄 가스 20일 분 준비.
카메라 세 대에 필름 150롤X36, 흑백, 네가티브, 포지티브 각 50롤.
식량은 1주일 치를 미리 준비.
수리공구-에어펌프 두 개, 육각렌치 두 세트, 10mm 스패너, -드라이버와 +드라이버, 프라이어, 노즈프라이어, 햄머, 스포크렌치 두 개, 변형 프라이어, 조절형 스패너 크고 작은 것 두 개, 스위스 육군 칼 두 개, 체인 커터, 펑크 키트 등등. 자전거 예비부품-자전거용 튜브 4개, 트레일러용 튜브4개, 자전거용 타이어 4개, 트레일러용 타이어 4개, 스포크 5개, 브레이크 슈 4 세트, 케이블 4개 등등.
GPS와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지도 백만분의 일.
비상연락용 햄 라디오 1세트.
남반구용 나침반 2세트.
고도계 1세트. 온도계.
자전거용 컴퓨터 2세트(거리,속도,최고속도,당일거리,시간,평균속도 등을 자동으로 계산).
칼,도마,식기,양념통,된장,고추장,짱아찌...
2인용 텐트. 거위털 침낭 두 개. 매트리스.
12볼트 자동차 전구로 내가 만든 조명등과 리튬 건전지 20팩.
지사제,소화제,상처 소독제와 봉합 세트 등 응급의료 키트.


면밀히 계획을 세우는데도 빠트리는 게 있을까 봐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점검에 점검을 더 하였다. 사막 한 가운데에서 우리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테니까.

경비는 커먼웰스은행에 예탁하고 현금카드를 만들었다. 커먼웰스은행을 이용하는 잇점은 이 은행이 전국의 우체국과 제휴되어 있어 언제든지 시골의 우체국에서 현금인출이 가능한 것이다. 창민이 아이디어.

호주는 작은 대륙이며 큰 섬이다.  인구론에 의하면 섬에는 여자가 많고 드세며, 대륙에는 남자가 많고 약해서 돈 없으면 장가들기도 힘든다고 하였다. 섬도 아니고 대륙도 아닌 호주에는 남녀가 적당히 수를 맞추고 살고 있을까? 여자가 부족하진 않을까?

여행 와서 이곳 호스텔에서 함께 묵게된 인연으로 만난 권영숙 선생님(태광여상 교사)에게서 격려 엽서를 받다.


8월 20일(화)     브리즈번
                 YHA → BIG BIKE 자전거점 → YHA(유스호스텔)

배앓이가 끝난 것 같다. 또 마운트 헛(Mt. Hutt)에서 스키 도중에 삐꺽한 허리도 좋아지고 있고, 영양 결핍에서도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도시 남쪽 25km 쯤에 있는 자전거 점, 빅 바이크(Big Bike) 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트레일러를 한 대 더 인수했다. 돌아 오면서 창민이와 거리를 반씩 나누어서 트레일러를 끌고가는 시험 운전을 해 보았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트레일러가 따라 온다는 생각을 갖고 운전을 하다보니 이내 익숙해 졌다. 아직 짐을 많이 적재한 상태는 아니지만 트레일러는 선택을 잘 한 것 같다.
자전거점 Big Bike에서 예비부품이랑 필요한 오일, 그리스와 파워바를 구입하였다. 점포 엔지니어가 무척 부러운 눈으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자전거 트레일러 및 필요한 용품을 구입한 빅바이크

우리의 여행을 응원하기 위해 빅바이크 직원들이 함께 나왔다.

유의사항
1.오후 여섯시만 되면 어둡기 때문에 캠프는 다섯시 이전에 해야 되겠다.
2. 좌측통행에 익숙하자!

20ℓ짜리 물통을 두개, 가스 스토브용 부탄 가스도 250g짜리 다섯개, 화이트 개솔린을 우선 5ℓ가량 구입했다.
코닥크롬64 슬라이드필름을 36장짜리 50롤 준비.
80-200mm 자동 렌즈와 80m 자동 렌즈 부착 니콘 F90이 주 카메라이며 소형 컴팩트로 펜탁스 90WR과 캐논 오토보디(Auto Body)로 카메라 3대를 준비했다. 호주의 하늘과 땅과 물을 얼마나 가까이서 이해하고 느끼며 원정을 성공적으로 마칠수 있을까? 좋은 기록 사진은 몇 장이나 찍을 수 있을까?

내일(21일) 하루 더 준비하고, 모레(22일)는 태평양 끝에 가서 출정식을 갖기로 하였다. 말이 출정식이지 태평양에서 대륙을 행단하여 인도양까지 가는 것이기에, 태평양 바닷물에 발을 적시며 그 뜻을 마음에 새기고, 도착하는 인도양에서 발을 씻으며 마무리를 하고 싶은 게다.

그렇게 몸짓으로 시가 된다면 그런 시를 쓰고 싶다.
'김지하'는 욕지거리로 시를 써 되더니 어느날 유명인사가 되었고, 누구는 담배를 골초로 피워 되더니 시인이 되었는데, 용정 중학교에서 만난 청년 윤동주는 어디에 갔단 말인가!
쇼펜하우어나 두보는 누굴 위해 시를 썼으며 해골에 술을 부어 마시던 바이런은 죽어서 해골이 되었는가?
자전거와 텐트와 침낭과 코펠이 있다해도 내가 닿아야 할 그 사막에서 진실로 시로 쓰여진 나를 만날 수 있을런지?

어머니!
시를 쓸 수 있게 해 주세요.
당신이 주신 몸으로, 그 몸을 던져 사막 한 가운데에서 시가 되어도
부끄럽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사막의 모래가 되게 하여 주세요.
아웃백에서 부는 바람이 되고, 절벽에서 부서지는 파도가 되고, 밤마다 꽃을 피우는 선인장꽃이 되게 하여 주세요.
억년의 세윌과 지구의 기억을 겁 없이 기다리는 외로운 유칼립터스 나무가 되게하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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