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1~07/23
왕이 지나신다. 도시 접근 금지!
2013-10-31   최혜진
거칠고 거친 구불구불한 길, 우리는 알 호세이마(Al Hoseima)로 가고 있다.
모로코인들이 그렇게 존경해마지 않는, 게다가 그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 기꺼이 아랍의 봄의 여파도 순조롭게 지나가게 한 왕(king)이 납신단다.



여정 내내 궁금했던 사항은 거칠고 살벌했던 아랍국가의 민주화 운동의 여파가 왜 유독 모로코에서는 잠잠했고(past), 잠잠하며(present), 앞으로도 잠잠할 것(will be)인가였다. 인터넷을 부여잡고 각종 자료들과 씨름해보았자 한국어, 영어, 불어 언어 구분할 것 없이 공식자료가 전부였기에 그들이 숨기고 있는 무언가가 더욱 궁금해졌다.
한 나라의 대통령도 그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혹은 별 생각 없는 집단으로 나뉘어 추앙을 받는데, 다만 한 나라의 왕이라는 이유로 모든 국민의 칭송을 받을까? 게다가 그냥 "나는 왕이 좋습니다" 에서 그치지 않고 "하~ 왕이시어, 나는 그대를 진정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라는 찬미가 그치지 않을까? 이 역시 궁금했다.


내가 만날 수 있는 모든 현지인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물론 그들과 어느 정도 친분을 쌓고 던질 수 있는 민감한 사항이었다. 사실 나는 우리 팀의 영상을 "아랍 민주화 운동이 비껴간 나라, 모로코: 그 진실은 무엇인가?" 정도로 자전거원정 컨셉을 잡고 싶었다. 하지만 주한 모로코 대사관의 스폰을 담뿍 받은 입장으로써, 대사관에 이에 대한 관심을 혹은 이야기를 드릴 때마다 매우 불쾌한 안색을 표하시며 응하시는 모습을 보고 생각을 고쳤다.
현지인들과 인터뷰한 녹음 내용도 모두 있고, 영상자료도 있다. 다만 그들은 이 민감한 주제 아래, 모자이크 처리 혹은 음성변조를 요청하며, 본인의 이름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이 있는 지역 명 및 직업이 밝혀지는 것에 대한 깊은 난색을 표했다.


훗날 나의 필력이 더욱 강한 위치에 자리하게 되면 (그리하여 내 글로 인한 나의 신변보호가 확실해지면) 더 파 볼 생각은 있다. 현재는, 간단하게 요약으로 끝내겠다. 현재 모로코 왕 전의 선왕은 몇 차례 피살을 당할 뻔 한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공식적인 것은 '아랫 것들의 역모' 정도이고, 현지인에게 들은 비공식적 이유는 '지역 개발의 불균형으로 인한 노여움'이 발한 것이란다. 그리하여 지금은 돌아가신 선왕에 대한 평가는 표면적으로 극과 극으로 나뉜다.


한편, 현지 가정에 머물 때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집안 곳곳에 모로코 국기가 달려있다는 것이다. 나이 불문하고 이를테면 십대들의 침대맡에도 빳빳한 모로코의 빨간 그리고 초록색 별이 달려있는 국기가 장식되어 있다.

현 왕의 가족

이와 더해 알라(God)를 다음으로 존경하는 사람은 마치 현 왕 인 것 같았다. 그의 아름다운 자비심으로 국민을 어여삐 여겨 두루 살피시사 그의 하해와 같은 은혜로 전 국민이 그에게 던지는 사랑 역시 엄청난 무언가였다.
그의 숨겨진 국민사랑에 대한 에피소드는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었고, 이로 말미암아 그를 존경하고 사랑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정말 짜기라도 한 것처럼 모두가 입을 맞추어 이렇게 증언하는데, 처음에는 '그렇구나'정도로 듣다가 이를 증언하는 수가 늘어날 수록 무서울 지경이었다. 마치 우리와 가까운 지역의 누군가를 지지하는 듯한 묘한 느낌마저 들었다.
모로코가 아랍의 봄의 격한 풍파에서 조용히 나올 수 있었음은 이 현명한 왕의 선견지명이 큰 몫을 했다는 설도 있다. 난 이 부분이 더더욱 경악스러웠다. 모로코는 얼마 남지 않은 왕국 중 하나이다. 민주화 세력이 부술 수 있는 왕권체제인 것이다. 하지만 모로코의 왕국은 건실했다.
이 민주화 운동 발발 전, 왕은 정치적 권한을 국회와 양분했다. 표면적으로는 권력 독점을 피해 균등한 세력을 갖는 것으로 비춰졌고, 국민은 환호했다. 우리는 이처럼 민주화 국가에 살고 있다고. 그 내막은 더 알아볼 일이다. 더 이상 쓰기가 겁난다. 지혜로운 모로코왕, 만세!


자, 서론이 무척 길었다. 이 글의 본론과 결론은 서론에 비해 무겁지 않다. 알 호세이마로 넘어가는 그 길이 무척이나 험난하고 또 험난했다.


우리 팀의 다크호스 명준이의 무릎을 앗아갈 정도로 그 구불거림의 요동침은 심각했다.  이로 인해 또 다른 팀의 의견차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기특한 부대장의 마음 씀을 기꺼이 받아, 명준이는 차로 다른 대원들은 여정을 잇기로 한다.

후미에서 고생하는 명준이

한 참을 달리고 달려, 오늘 주행 목표의 반 정도 왔을까? 그 구불거림과 역풍이 만만치 않아 이내 노을을 맞는다.


우리 팀의 야간 주행이 하루 이틀이랴.. 야간 주행을 감행한다. 속도를 낮춘다. 대열 역시 재배열한다. 순서는 대장 - 여자대원- 남자대원들. 밤에는 트럭들의 난폭한 운전과 시야가 제한되어있기에 뒤를 돌아보는 것이 꽤나 위험하다. 이따금 이름을 불러 따라 오는지 확인한다.

"진희야!"
"네"
(몇 분 후)
"진희야!"
"..."

"오고 있어?"
"..."
"너 누구냐?"
"..."
누군가 바짝 따라오는 소리는 들리는데, 답을 안 한다.
"야!"
"응, 누나."
끼이익.
"아 뭐야~ 진희 어디 갔어?"
"걔? 몰라, 따라 오겠지."

뒤이어 저기 빨간 불빛 두 개가 아른거린다. 이놈시키, 진희 앞에 두고 오라는 데도 자꾸 내 뒤만 바짝 쫓아온다.

"야, 진희를 대장 뒤에 두어야 제일 안전해!!!"
"근데 누나,"
"밤에는 걔 추월!" 말을 끊는다.  
"누나! 밤에는 나도 무서워,,,,"

아, 이런.. 그건 생각 못했구나, 아우야.. 문득 피식 녀석이 귀엽다.
다행히도 승현이가 듬직하게 진희를 챙겨온다. 승현이는 대견하고, 녹초가 되어있는 진희는 안쓰럽다. 하지만 2차선 도로 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주행일 뿐이다. 한시라도 빨리 가서 여정을 풀어야 한다. 어둠 속에서 양 도로 곁에 움푹 파인 커다란 긴 구덩이 길에 장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의 움직임이 희미하게 보인다.
'저건 또 뭐야?' 다행히도 그들은 우리에게 시선주지 않는다. 쳐다보기라도 했으면 오줌 지릴 뻔했다.

저 멀리 시 경계를 지키는 군인경찰들이 즐비해 있다. 모로코는 도시를 넘을 때마다 경찰들이 지키고 서있다. 완전 커다랗고 무시무시한 못을 박아놓은 장애물과 함께 장총을 소지하고 있다.
이번에도 꾸준히 해오던 의식을 그들 앞에서 한다. 자전거 속도를 줄이고, 버프와 안경을 벗어 '나는 여인네요'를 강조하는 방긋 웃음을 얼굴 전체에 깔고 '안녕하세요!'를 아랍어와 불어로 외쳐댄다. 그들에게서 나오는 일반적 반응은 '살벌한 표정 벗고 기쁘게 맞아주기'이다. 물론 동료들과 서로 갸우뚱하며 '여자'다! 를 외치며...
도시 입성을 위해 가야 하는 주행 거리와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묻기 위해 자전거에서 내린다. 생각보다 길어진 주행 구간으로 인해, 팀원들 모두 물이 떨어져 가고 있는 찰나, 바로 앞에 휴게소가 있단다.
오예! 그리고 도시는 얼마 남지 않았지만, 길이 지금처럼 혹은 더욱 험난해 질 것임을 알린다. 하지만 우리로써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휴게소에서 물을 구해서 남은 여정을 꾸역꾸역 갈 수 밖에.
고마움을 표하고 휴게소에서 물을 구입하고 있는데, 아까 보았던 이들이 무리 지어 들어온다. 그리곤 우리 전원의 신분증을 딱딱한 어조로 요구한다.

'아, 또 뭐야? 아까는 친절하더고만.'
절대적으로 불리한 그들과의 대립을 피하기 위해서, 괜히 더 실실 거리며 이런저런 잡스러운 이야기로 동정을 구한다. 시간 벌기+딱딱한 그들의 언행 누그러뜨리기 성공.
대원들을 쉬게 하고, 신분증과 함께 그들을 따라간다. 각종 서류를 꾸미더니 더 이상의 도시 접근을 막는다.
'응?'
자초지종을 아무리 설명해도 돌아오는 답은 같다. 더 이상 갈 수 없으며, 이에 대한 거부 역시 할 수 없다는 것. 잠시 주위를 둘러보기 위해 사무실에서 나왔다. 휴게소 전체적으로 꽤나 젊은 남자아이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사람이 없는 것보다 더 더욱 위험할 수 있다' 고 생각했다.
"저기요, 저희는 일단 도시로는 들어가야겠는데요. 지금 일행 말고 부상 당한 친구가 도시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친구의 안전도 염려되고, 이 휴게소 상황의 안전 역시 걱정되어 일단 이동은 해야겠습니다."
"그 친구 불러줄까?"
"호텔에서 잘 쉬고 있는데, 왜 불러요..;; 저희가 움직이면 되요. 거리도 이제 별로 남지 않았다면서요. 그리고 밖의 저 젊은 청년들이 혹시 위협할까 싶으니 신속하게 도시로 들어가겠습니다. 협조 부탁 드립니다."
"이봐, 친구. 우리가 뭐로 보이나?"
'심심해서 외국인이랑 농담 따먹고 있는 그저 그런 공권력자들이요..'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나라 지키시는 군인들 이시죠 " 라고 해맑은 미소를 버무려 답한다.
"우리가 여기에서 24시간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여기는 말 그대로 휴게소라고. 여정 중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휴게소."
"예,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자고 가고 싶어도 저희가 딱히 밖에서 잘 수 있는 도구를 안 가져와서요. 하하, 일단 이동을 해야겠으니, 신분증 주셔요."

아무 말 없이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더니 옆 건물의 커다란 문을 연다.

'와, 시원하다.' 탄성이 절로 나오며 그 넓고 깨끗하고 안락해 보이는 그 장소에서 넋이 나간다.
"여기에서 자고, 날 밝으면 가. 우리가 보내줄 수는 있는데, 지금 당신들이 가려는 도시는 왕께서 행차하셨고,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절대 안 되기 때문에 우리가 막는 거야. 사실 아까 길이 평탄하다고 했는데, 그렇지도 않아. 그리고, 보이진 않지만 군사들이 쫙 깔려있어. 온 국민이 왕을 뵙겠다고 알 호세이마로 몰려들어서 안전사고에 대한 대책을 꾸려야 하는 우리를 이해해 주고, 불편한 것 있으면 이야기 하고, 샤워는 저기에서 하면 되고 매점은 밤 새 열려있으니 배고프면 사먹고."

특급 호텔과 같았던 휴게소

실룩거렸던 내 마음의 표정이 금새 바뀐다. 이렇게 호화로운 휴게소라니! 우리가 그 동안 가던 숙소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안락하고 시원하며 깨끗하다. 게다가 24시간 철통 수비로 우리를 지켜준다니! 우리 팀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까? 이런 호사가 다 있나.
대원들마다 한 자리씩 넓게 차지하고 에어컨 빵빵한 그 공간에서 잠을 청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런 휴게 공간은 유럽에서 온 외국인 여행객을 위해서 주로 이용된다고 한다. 모로코가 대외 이미지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는지 알 수 있는 단적인 예이다.
다시 한번, 지혜로운 모로코 왕에게 박수.


그 의도가 어찌했건 간에, 우리는 편하게 하루 잘 머물다가 이튿날 명준이와 재회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왕의 행렬을 볼 수 없었다는 것, 알 호세이마로 입장하는데 마치 롤러코스터를 방불케 하는 미친 존재감의 길은 그 서막에 불과했다는 것.
아름다운 알 호세이마는 그 아름다움에 걸맞게 도시 내에서도 지대의 오르막 내리막 변화의 끝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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