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디션 회복, 아비규환 델리 도로 첫주행
에디터 : 최용석

이틀을 꼬박 침대에 누워있고서야 드디어 정신이 든다. 영혼이 맑아진 기분이랄까.
"바훗~아차!(아주 좋다)"

오늘은 20km정도의 단거리 연습주행을 나가기로 한다. 인도의 도로 사정, 특히 델리의 도로는 언제나 아비규환이다. 수많은 공사현장으로 평탄치 않은 도로와 이 위를 거침없이 질주하는 차량들, 그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속력을 내는 릭샤와 오토바이들까지.
목소리 큰 사람이 승리자라도 되는 것처럼 있는 힘껏 울부짖는 경적 소리. 이 가운데 소라도 한 마리 도로에 진입하는 날엔, 정말이지 헛웃음 밖에 안 나온다. 과연 이들에게 양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지, 질서라는 말은 알고 있는지 궁금해 진다.
이런 곳에서 굳이 자전거를 타려고 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순간 의문이 생긴다.

델리 첫 주행 기념. 왼쪽부터 성민, 혜진, 용석

'용석, 너는 하필이면 왜! 이렇게 위험한 인도에서 자전거를 타려고 하는 거냐!?'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지만.. 생각해 보면... 나는 자전거 여행을 좋아한단 말이지. 그리고 인도라는 나라도 좋아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인도 자전거 여행은 내가 좋아하는 두 가지를 한번에 즐길 수 있는 최고의 기회란 말이지! 뭐.... 간단한데..!?'
'음.. 그렇다면.. 해야지! 간단하네~ 파이팅!'

본격적인 주행일정에 들어가기에 앞서 연습주행은 필수다. 인도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 델리 도심에서 주행을 한다면, 인도의 어떤 지역에서든 자전거 타는 일은 문제 없을 것이다. 어차피 해야 할 일, 오늘이 바로 날이다.

이틀을 누워있던 차에 맑은 정신으로 자전거 탈 생각을 하니 들뜬다. 다행히 정환이와 혜진이도 회복되어서 현재 우리 팀원들의 평균 컨디션은 70%정도 이다. 훌륭한 수치다.
아침부터 도로로 나섰다. 희뿌연 스모그 속에서 끝없이 밀려오는 차들. 인도와 도로 구분 없이 오고 가는 사람들. 적막함 속에서 귀를 찢을 듯한 경적 소리. 들떠 있던 마음이 자연스럽게 긴장으로 바뀐다. 하지만 어느 정도 주행을 통해서 도로 분위기에 적응하자, 예상 밖으로 이들에게도 최소한의 질서가 있고, 작으나마 양보가 있음이 느껴진다. 물론 거칠고 복잡한 운전자들 사이에서 스스로 살기 위한 최소한의 행동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첫 주행을 통해서 나름대로 이들의 질서를 배우고, 이들의 도로 상황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많은 사람들이 인도에서 자전거 여행은 미친 짓 이라고 말했지만, 그 누구도 자전거를 타본 경험을 토대로 충고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 경험을 해보기 위해서 인도로 자전거를 가지고 왔고, 지금 이 시간을 통해서 '인도에서 자전거 타기는 할 만하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솔직히 출발 전에는 복잡한 델리에서의 주행이, 대원들의 사기저하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할 수 있음에 대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운전습관부터 양보에 대한 이해도가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운전을 소나 원숭이가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우리는 주행을 시작한 뒤 거리의 수많은 차량과 릭샤, 자전거들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합류 할 수 있었고, 흐름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함께 흘러가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우리와 조금 다를 뿐, 어차피 지구별 안에서, 그리고 육지 위에서 사람 사는 방법이 매 한가지 아니겠는가.
'인도, 이제는 너를 아주 조금이나마 알 것 같구나. 내 맘대로 의심해서 미안!'

연습주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한국인 식당으로 가는 길에 우연치 않게 수많은 한국인들과 만나게 되었다. 사실 인도 여행의 베이스 캠프라고도 할 만한 빠하르간즈에서는 쉽게 겪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 만남은 즉석에서 번개 모임으로 발전. 순식간에 모두의 목적지가 한 곳이 되어 버렸다.
같은 과 후배인 혜지와 혜지의 친척언니, 고등학생 석휘와 그의 누나, 자원봉사자 상은씨, 캠퍼스는 다르지만 같은 인도어과 06학번 성광이까지. 약속하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어느새 모두가 한자리에 앉아 있다.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인도까지 오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 중 서울대 3학년 휴학 중인 상은씨는 오리싸 주에 있는 NGO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중에 휴가를 내서 델리로 여행을 왔다고 한다. 차근차근 말하는 모습과 솔직한 웃음이 굉장히 인상 깊은 친구였다. 인도인이 만든 NGO단체를 통해서,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이 굉장히 멋지어 보였다.
많은 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맛있는 한국음식도 먹으니 컨디션이 최고조로 달려가는 기분이다.

길에서 만난 한국인들과 함께, 빠하르간즈 한국 식당 '인도방랑기'에서

아침부터 날씨가 우중충하더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인도는 기후 특성상, 건기와 우기 그리고 혹서기로 나누어 진다. 현재 인도는 건기에 해당하는 시기지만, 이따금 비가 온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만약 주행 중에 비가 왔다면, 행동에 많은 제약이 있었을 것이다.
운이 좋게도 자전거를 타기 전에 비가 와서, 보기 힘든 광경을 즐길 수 있었다. 비가 오면 대기에 축적되어 있는 먼지가 씻겨 내려가기 때문에 델리에서 유일하게 상쾌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는 오토 릭샤를 타고, 싸켓에 위치한 싸켓 시티 워크 몰(Saket city work mall)로 이동한다. 이곳은 델리 최고의 쇼핑몰이다. 싸켓 시티 워크 몰 내부에 들어가니,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다. 이곳은 한국의 타임스퀘어와 같은 몰(mall) 형태의 쇼핑 센터로서, 한국의 대형 백화점과도 비슷한 분위기다. 수많은 유명 브랜드 매장과 더불어, 지금껏 만나보지 못한 부유한 인도인들이 이곳에 모두 모여 있었다. 
우리는 넓은 매장을 둘러보면서 간단하게 아이쇼핑을 즐긴 뒤(물가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이다.), 영화를 봤다. 우리나라의 대규모 멀티플렉스와 같은 규모의 영화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영화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KFC에서 햄버거를 먹은 뒤에, RAAT GAYI, BAAT GAYI라는 볼리우드 영화를 봤다. 힌디 영화여서 내용 이해에 대한 기대는 버리고 들어갔지만, 대사에 영어가 많이 사용돼서 전체적인 흐름은 파악하면서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물론 현지인들과 함께 웃고 즐기진 못했지만, 부분적으로 이해한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였다.

델리 최대규모의 최신식 쇼핑몰, 싸켓 씨티 워크 몰

인도 영화 시장에서는 매년 타국가에 비해 월등한 숫자의 영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물론 양이 질을 대변해 주지는 않지만, 최근에는 '슬럼 독 밀리어네어', '블랙' 등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수많은 국가에서 인도 영화 시장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는 인도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영화에 삽입되는 수많은 노래와 격렬한 춤이다. 중간 중간 삽입되는 배우들의 역동적인 춤과 유쾌한 노래 덕분에 보통 세시간이 넘어가는 인도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 본 영화는 과거 볼리우드의 격정적인 춤과 노래, 그리고 인도 영화의 고유한 특색을 살리기 보다는, 할리우드 영화의 모습을 많이 따라간 듯 해서 아쉬웠다. 전통을 중시해온 이들의 삶이 자본주의의 물결에 휩쓸려서 변화해 가는 모습이 좋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현재 인도의 모습은 카스트 제도에 얽매여서 과거 속에 현재를 살아가는 그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지속적인 고 성장률을 보이고 있으며, 이에 따라서 이들의 삶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변화가 지나치다면, 본래의 정체성 마저 찾기 힘든 상황이 올 수도 있는 법이다. 볼리우드에서는 볼리우드 영화를 만들고, 할리우드에서는 할리우드 영화를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재미있다며 웃고 박수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인도 영화산업의 미래를 걱정하는 내 모습이라니....
사실 인도가 그렇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도 실생활에 전통의상을 입고, 종교적 생활과 카스트 제도 안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 또한 인도의 모습이 아닌가.
인도에서 기대 이상의 대규모 쇼핑몰과 최신식 영화관을 보고서 놀란 마음에, 끝없는 생각의 꼬리를 물어본다.
앞으로도 상상하지 못한 인도의 새로운 모습들을 만날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 진다.

왼쪽이 우리가 본 영화의 광고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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