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출발은 설렌다.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오늘의 출발을 위해서 1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어과 학생으로서의 전공수업과 자전거 해외탐방 동아리 회장으로서의 학교생활은 모두 지금의 출발을 위한 시간이었다. 시작이 반이라는 생각으로 지금의 출발을 맞이한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 동아리의 자전거 여행 일정과 비교해보자면, 널널한 일정을 계획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행선지가 소위 '여행자의 무덤'이라 불리는 인도라는 것, 그리고 자전거 여행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했다.
물론 결론을 먼저 얘기하자면 '인도자전거 여행'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어렵지도, 그리고 쉽지도 않았다. 인도라는 나라,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다니곤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은 모두 같지 않은가. 결국 여행하며 살아가는 방법도 '자기하기 나름'이었다.
하지만 떠나기 전, 우리는 이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마치 인도에만 가면 괴물이라도 만날 것만 같은, 평생 겪지 못할 천재지변이라도 경험할 것만 같은 걱정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어떠한 변수든지 소화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전체 일정은 다소 여유 있게 계획했다.

우리의 준비물은 아래와 같다.
자전거 관련 품목 :
자전거, 장갑, 짐받이, 바엔드, 스탠드, 물통거치대, 벨, 자물쇠, 페니어, 자전거 투입가방, 전조등, 후미등, 머리등, 헬멧, 멀티툴2, 펌프, 튜브10, 타이어2set, 펑크패치셋, 브레이크패드20, 속도계, 오일, 케이블타이
숙식 관련 품목 :
침낭, 물통, 수저, 텐트 1동(비상용)
촬영 및 자료관리 품목 :
디카(개인소지), 캠코더(sony hc-1), 6mm 테잎(30), 휴대용 외장 하드, 관련 충전기기
기타 개인 품목 :
유니폼2(상‧하), 외출용 옷, 운동화, 샌달, x-반도, 속옷(2), 양말2, 모자, 고글, 지퍼락, 썬크림, 세면도구(면도기, 칫솔, 치약, 손톱깍이, 수건), 개인상비약(설사, 파상풍, 감기, 두통, 소화, 버물리, 밴드), 필기도구, 일기장, 허리가방, 여권, 비자, 여권사진5, 여권복사본, 여행자 보험, 시계, 나침반, 바느질도구, 관광책, 자전거 손질용 솔, 자전거 덮개, 지도, 기념품

내가 챙긴 물건들을 기준으로 사진 몇 장 찍어 보았다.

자전거 패니어에 들어갈 물건들

인도로 날아가기 위해서 분해된 내 자전거

출발 전 설레는 마음으로 셔터를 눌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이 설렘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나의 친구들...
'인도 자전거 여행'을 위해서 독수리 5형제가 결성되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중국 각 지역과 티벳, 일본, 미국을 자전거로 여행한 자전거 여행 전문가인 임시환(고문), 인도에서 6개월간 교환학생을 한 경험이 있는 이성민(기술담당), 프랑스에서의 4년 6개월 거주경험 및 남자들이 하는 일은 뭐든 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당찬 홍일점 최혜진(기록 및 회계담당), 최초 인도 자전거 여행 기획을 함께 시작했으며 중국 자전거 여행 경험이 있는 설정환(부대장 및 영상촬영담당), 중국 및 일본 자전거 여행 경험과 인도 배낭여행 경험이 있는 최용석(대장), 바로 나다.

이렇게 5인의 독수리 형제들....
일단 뭉치긴 했지만, 사실 만화 속 독수리 5형제처럼 하나가 되어 나라를 지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시작점을 출발한 이 순간, '설렘'이라는 작지만 같은 생각을 시작으로 언젠간 더욱 큰 하나가 되어 멋지게 결승점에 골인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나를 믿고, 그리고 스스로를 믿고 이 여행에 참여해 준 모두에게 고맙다.
이제부터 진짜 여행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내 일기에서 발췌한 그 당시의 생생한 이야기를..

12월 28일, 비행기 타고, 자전거 타러 가기

성민과 시환이형은 별도로 항공권을 예매해서 하루 일찍 인도에 도착했다. 서로 다른 비행기를 타고 갔지만, 지금쯤은 서로 만나서 델리의 매연을 마시며 호텔을 찾고 있을 것이다. 나와 정환, 혜진은 캐세이퍼시픽 항공을 타고 오늘 출발한다.

공항에서는 언제나 여유가 없다. 과연 비행기를 몇 번쯤 타봐야 여유를 찾을 수 있을까. 자전거를 포함한 화물이 무려 10Kg정도 오버되었지만 다행히 추가요금 없이 통과되었다. 규정상 개인 화물은 20kg까지만 허용되지만 유연하게 통과시켜 주었다.
우리 셋은 나란히 앉아서 장시간의 비행을 시작했다. 정환이와 혜진이에게 끊임없이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서인가, 스스로의 긴장을 풀기 위해서인가.
'원래 농담도 잘 안하던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대장이라는 자리의 부담감.
태어나서 처음 맡아보는 대장이어서 내가 어떤 대장이 될 수 있을지 긴장되고 궁금하다. 일단 자전거를 타면 궁금증에 대한 모든 답이 나오리라. 어차피 정답은 하나. 나는 나이기에 나답게!! 멋지게 해내고 말 것이다. 알 수 없는 미래를 걱정하기 보다는, 부딪혀 보고 답을 찾아 나가리라!

공항식당에서 최후의 만찬을 즐긴 뒤 한 컷. 오른쪽부터 혜진, 정환, 나(용석), 마중나온 혜진의 친구

12월 29일, I'm here!

현지 시간으로 새벽 두 시가 조금 넘어서 인도에 도착했다. 모두 담담한 모습이다. 자전거를 포함한 화물을 찾아서 공항 벤치 한곳에 자리를 잡았다. 치안이 불안한 인도에서 첫날부터 어둠 속에서 이동하기보다는, 날이 밝은 뒤 숙소를 찾는 방법을 선택했다.

인디라 간디 공항(델리 국제 공항)에서 자전거로 담을 쌓고 밤샐 준비

벤치에 앉아서 할 일들을 정리해 본다. 루피 환전, 선불 택시 잡기, 빠하르간즈 거리에서 성민과 시환이형이 묵고 있는 호텔 찾기. 간단한 일들이다.
주위를 살피며 선잠을 취한다.
'이건 군대도 아니고, 불침번이라도 서야 하나?'
날이 밝은 뒤 270루피에 선불 택시를 잡고, 뉴델리역 앞에 있는 빠하르간즈(저렴한 여행자거리, 난잡하고 정신없는 거리지만 다양한 여행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로 이동한다. 택시 기사가 아무 문제없다며 자동차 지붕에 올려놓았던 자전거가 이동 중 날아갈 뻔한 일 빼고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위에 올려 놓으면 떨어질 것 같은데....."
"No problem!"
"그래도 이건 좀....."
"No~problem. No problem sir!!!!!!!!!!"

혹시나 해서 묶어놓은 한 줄의 끈 덕분에 자전거는 극적으로 구조되었다.
나는 이 시간부터 이들의 "No problem"에 무조건 반사로 의심하리라. 오히려 걱정 안하던 것도 "No problem"이라는 말이 들리면 더욱 걱정하리라. 여행 시작하기도 전에 큰 일을 치를 뻔 했다. 이들이 우리와 다름에 대해서 하루 빨리 적응해야겠다.
어쨌든 무사히 빠하르간즈의 RAK INTERNATIONAL HOTEL에서 성민이와 시환이형을 만났다. 인도에서 보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간단히 짐을 풀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서 아침식사를 하러 나간다. 인도에서의 첫 식사. 시장을 둘러보다가 음식 준비가 한창인 한 식당을 찾았다. 주방이 따로 없는 비좁은 식당이어서 밖에 테이블을 놓고 식사를 하기로 한다.
탈리와 쪼면, 카레와 같은 일반적인 인도 음식으로 용감하게 주문 단행! 갑작스런 인도음식 공격에 내 장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예상 불가다. 인도에서의 첫 식사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탐색하는 도중에, 때마침 우리 테이블 옆에서 거리 청소가 시작된다. 안 그래도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공기 속 불순물이 한 가득인데, 설상가상으로 길거리에 쌓여있던 먼지까지 합세한다. 개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우리 주위를 쉴새없이 뛰어 다닌다. 먼지로 배 채우고, 해맑게(?) 뛰어노는 개님들 덕분에 인도에서의 첫 식사는 씁쓸~했다.
'여기가 바로 인도인가....'

씁쓸한 첫 식사. 시계방향으로 정환, 성민, 시환, 혜진, 같은 호텔에 있는 프랑스인, 뛰어놀던 개님

이번 여행에서의 첫 불만이 제기된다. 주행 시작 전 필요한 몇 가지 일들을 준비하는 동안 나머지 대원들이 할 일을 찾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아직은 연락 수단도 없고, 인도에 적응이 안돼서 개인적인 행동을 제한해 놨기 때문에 대원들은 내 주위를 떠나지 못 했던 것. 어림잡아 네 시간 정도가 흘렀을까. 지루함에 쇼파에서 잠들어 있던 시환이형이 갑자기 정신을 차리더니 나에게 뭐라고 하기 시작한다.

"야, 내가 소중한 시간과 돈을 들여서 인도까지 왔는데 지금 이러고 있어야 되겠어?"
"그러게 제가 호텔에서 나올 때 따라올 사람만 오라고 했잖아요."
"그래도 이건 정도가 너무 심하잖아. 여기 있는 애들이 유치원생도 아니고, 애들도 너한테 불만 많은데 얘기 안하고 있는 걸 껄"
대원들 앞에서 쪽팔리게 대장을 나무란다. 화가 바짝 오른다.
'초반부터 형한테 눌리면 이번 여행이 힘들어질 텐데...'
바닥에 떨어진 나의 권위를 찾고 싶지만, 10년 선배의 질타를 분쟁으로 가져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일단 작전상 후퇴.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할 테니까 양해 좀 해 주세요."
'제길. 쪽팔리다..'
내가 대원(시환이형도 엄연히 말하면 나의 대원이다!)이라면 대장으로서 첫날 할 일이 많고 정신없음을 이해했을 텐데, 노친내 까다롭다.

저녁식사는 현재 주인 한국대사관에서 인턴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인도어과 04학번 금석이형, 현섭이형과 함께 했다. 현지 분위기에 대해 자세한 설명과 도로 상황이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들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얻었다. 맛있는 식사 대접에 유용한 정보들까지, 형들 덕분에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빠하르간즈 한국 음식점 '쉼터'. 왼쪽부터 성민, 금석, 현섭, 정환, 시환, 혜진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회의를 한다. 일정에 대해서 간단한 브리핑을 마치고, 인도에 대한 첫 느낌과 불만 사항 등을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시환이형과 혜진이가 재차 불만을 토로한다. 첫날부터 별일 아니라고 생각한 부분에서 강력한 불만이 제기되니 당황스럽다. 모두가 함께한 자리에서 시환이형과 많은 대화를 나눈다. 근데 이건 말이 대화지 거의 설교를 듣는 수준이다. 내가 한마디 하면 여지없이 형의 장황한 설교가 돌아온다. 솔직히 지나치다 싶은 기분도 들지만 수긍하기로 한다. 당장은 기분이 나쁘고, 대원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 부끄러운 상황이지만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사실 성민이와 혜진이, 부대장으로 나와 가장 오랫동안 여행을 준비한 정환이까지 나를 어려워하는 것이 사실이다. 조그마한 불만이라도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 진다면 우리 여행은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대원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연결 통로를 형이 몸소 만들어 주신 것이리라. 솔직히 앞으로 있을 대원들의 불만토로가 두렵기도 하지만 대화만이 성공적인 여행의 열쇠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시환이 형은 지금 나에게 이러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리라.
"용석대장!!! 다시 한 번 정신 차려라!! 넌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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