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통해 우리는 길을 만난다
에디터 : 박규동

창민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이면 목포에 도착할 것 같은 데 제주도로 가는 선박을 예약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목포에서 제주로 가는 배는 낮 2시 반에 있고 성수기가 끝나서 좌석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답신이 왔다. 배 시간이 내일 저녁이 아니고 낮이라는 바람에 아내는 빨리 가야하지 않겠느냐고 서둔다.

의상디자이너 윤광석 선생(좌)과 사진 작가 곽일순 선생(우)

낮 1시가 조금 넘어 영광에 도착하였다.
점심 먹을 식당을 찾았다. 23번 국도에서 시내 쪽으로 좌회전 하여 내리막을 잠깐 내려가니 이내 식당이 나타났다. 문은 꼭 닫혀 있었지만 영업 중이었다. 게다가 보신탕 집이었다.
길가 주차장의 자동차 옆에 자전거를 나란히 세우고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에어컨의 시원한 기운이 우리를 감싼다. 온돌방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서니 두 테이블에 손님이 있었다. 탕을 특으로 두 그릇 시켰다.
건너편에서 탕을 먹는 세 명의 남자 중에 머리를 길게 길러 뒤로 멋지게 묶은 40대 사내의 등을 보며 앉게 되었다. 그에게 나도 모르게 관심이 갔다. 머리를 다룬 모양새가 여간이 아니었다.
그에게서 남도선비 냄새가 물씬 풍겼던 것이다.
우리는 아주머니가 내준 물 한 통을 다 마시고 다시 한 통을 더 부탁하였다. 땡볕에 서서 뜨끈한 물만 마시다가 냉장고에서 금방 나온 냉수를 마시는 이 기쁨을 누가 알까?

우리가 탕을 열심히 먹고 있는데 식사를 마치고 난 긴머리 남자가 우리를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넨다.
"괜찮으시다면 식사가 끝난 뒤에 저희가 차를 한 잔 대접하고 싶은데 어떠신지요?"
"우리는 괜찮지만 어인 일 인지요?"
"두 분이 여행하시는 모습이 너무 보기에 좋아서입니다."
그와 함께 있던 일행 중에서 한 사람은 먼저 가고 두 사람은 우리가 식사를 끝낼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그가 타고 온 친구의 자동차를 따라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300m 쯤 달려서 긴머리 남자의 집으로 갔다.
그의 집으로 들어가는 돌담길 골목이 좁기는 하지만 예사롭지 않았다.
남도의 선비가 걸었음 직한 그런 골목이다. 골목 안에는 안채와 바깥채로 나눠 있었는데 바깥채는 전통찻집으로 유료 손님을 받고 있었다.
긴머리 남자는 윤광석이라고 자기 소개를 하였고 함께 있던 남자는 곽일순이라고 인사를 나눴다. 윤선생이 곽선생을 서로 소개하면서 "곽선생은 사진을 하십니다." 그리고 반대로 곽선생은 윤선생을 소개하면서 "윤선생은 의상 아티스트입니다"라고 했다.

찻집 남도땅(061-351-3267)
매실차를 대접 받았다.
"윤선생의 부인 이양옥여사는 찻집 '남도땅(061-351-3267)'의 주인입니다"라고 소개를 받았다. 곽선생에게서 사진을 배우신다는 여자 분이 한 분 더 동석하였다.
반갑고도 따뜻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대담의 격조가 하늘까지 높았다가 어느덧 물 속까지 내려가는 깊이도 있었다. 자전거 바퀴가 조리개를 통해 1/160초로 저장되거나 화선지 위를 달리기도 하였다.
초록 매실차는 영혼을 아우르고 통하게 하더니 돌담 뒤로 심어 놓은 대나무 숲 사이로 빠져 나가 헤매기도 한다. 아티스트의 눈으로 보는 세계와 자전거 바퀴를 굴리는 세계가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하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윤광석 선생은 무명으로 옷을 만드는 장인이었다.
윤광석선생이 자신의 작품을 보여 주었다. 그는 무명으로 옷을 만드는 장인이었다. 유럽과 남미에서도 전시회를 가졌었다는 그의 옷은 의상이라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그 이상의 느낌이 있었다. 의상에 관심이 많은 아내의 표정도 놀라움이 넘친다.
"무명산조"
그의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철학이다. 아낙네가 손으로 짠 무명을 전통방식으로 염색을 하고 그 옷감으로 옷을 꾸미는 것이다.
한 땀, 한 땀 손바느질로 꾸미는 그의 의상 작품을 누군가 우리 음악 산조와 닮았다고 한 모양이다.
그의 소망 중에 하나가 우리나라 영부인에게 자신의 의상작품을 선물하는 것이라고 했다. 영부인에게 선물하는 것은 연줄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의 소망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사진으로 스케치를 하고 그 위에 펜 마우스로 색을 칠한 디지털 작품

곽일순선생이 자신의 사진전시회 도록을 한 권 가져왔다. 사진으로 스케치를 하고 그 위에 펜 마우스로 색을 칠한 디지털 기법의 작품들이다. 모두 영광군의 풍경을 담았다. 향토작가이다.
더위로 서먹해 졌던 눈과 귀가 금새 밝아진 느낌이다.

곽선생은 우리더러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집으로 달려가서 매실원액을 한 통 들고 왔다. 8년 생이라고 하였다. 아내의 미소가 귀에 걸린다. 매실원액이 우리의 피로를 덜어 주었다는 얘기를 그가 들었던 것이다. 그것이 "남도 땅" 인심인 것을 나는 안다.

길에서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통해 우리는 길을 만난다. 길과 사람이 둘이 아닌 것이다.

영광을 떠나면서 발걸음이 매우 가벼워졌다.
불갑을 지나다 발견한 정자에서 한 숨을 잤다. 떠들썩한 소리에 잠을 깼다. 마을 노인 몇 분이 오셔서 궁금한 것을 묻는다. 포천에서 왔다는 얘기에 할아버지 한 분이 군대이야기를 꺼낸다.
이동에서 포병으로 근무했다면서 먼길을 온 우리에게 나이를 묻는다.
예순 넷이라고 하니 깜짝 놀란다. 자기는 예순 둘이란다. 세상 다 산 나이라면서 꽁무니를 내린다. 그러면서 목포로 가는 길을 자세하게 일러 주었다.

함평에서 자고 갈 생각으로 23번 국도에서 빠져 나와 시내로 들어갔다.
함평은 나비축제로 이름이 많이 알려진 지방이다. 지방축제 중에서도 가장 성공한 모범사례다. 시간이 지나 문이 닫힌 나비박물관을 들러 보고 함평여고 옆으로 난 엄다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내일은 엄다에서 1번 국도를 타고 곧장 목포로 갈 것이다.
놀이기구가 있는 공원을 지나자마자 왼쪽으로 커다란 정자가 눈에 띄었다.
농로를 따라 50m 정도 가서 정자에 닿았다. 마루 면적이 스무 평도 더 될 것 같은 큰 정자다.
가는 비가 약간 내리고 있었기에 정자가 더 반가웠다. 주위에 농가가 몇 채 있다.
가까운 농가에 가서 물을 얻어 온 아내가 하는 말이 "집 뒤켠에 수도가 있는데 이따가 와서 씻어도 좋다고 했어요" 하며 좋아 한다.

정자 마루 위에 텐트를 치고 그 아래에서 밥을 했다. 된장찌개를 끓이고 장아찌로 저녁을 먹었다.
 
논이 넓게 펼쳐진 그 가운데에 있는 정자이다. 조용하기 그지없다.
약하나마 바람이 구름을 밀어내고 조금씩 별이 나타났다.
이 좋은 밤에 아내가 심통을 부린다. 여자 친구의 전화가 화근이 된 것이다. 내게 걸려 온 전화를 엿듣다가 어디론지 논두렁을 따라 사라졌다.
한참만에 돌아왔지만 화기가 풀리지 않은 듯 하였다.
이런 모습에서 나는 아내가 아직도 젊다는 것을 느낀다.
그 젊은 열정이 이번 여행을 작심하게 하였고, 또 여정 7일에서 10일 사이에 곧잘 일어나는 여행에 대한 내면의 갈등을 이겨내는 힘이 된 것 같다.
이 고비를 잘 넘기면 여행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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