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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 집으로 가는 길
2008-10-16   박규동

2008년 8월 26일

 여섯 시에 일어나 찌개를 데워 밥을 먹고 민박집 대문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 가는 날이다.
 부지런한 주인집 내외분은 비닐하우스에서 고추를 말리고 있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바로 홍천으로 달렸다. 아침 바람이 상쾌하였다.

 한 시간 정도 달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새옹지마님이다. 자전거 타고 속초가는 번개모임으로 새벽에 팔당을 출발하여 지금 양평에서 아침을 먹고 있단다. 그럼 중간에서 만나야지! 반가웠다. 락헤드님, 빙그레님, 새옹지마님, 바이김님 네 명이란다.
 홍천 고속도로 나들목 부근 휴게소에서 만났다. 모두 반가운 얼굴들이다. 스키와 자전거를 같이 하는 카페 "스포츠는 즐거워라"의 지기들이다. 50대 후반인데도 젊은이 못지 않은 열정을 지녔다. 
 

"스포츠는 즐거워라"의 지기들, 50대 후반인데도 젊은이 못지 않은 열정을 지녔다.

 스키나 자전거를 타다가 심하게 넘어지면 어디든지 뼈가 부러진다. 부러진 뼈가 아물기도 전에 다시 들이대는 짐승같은 사람들이 있다. 스포츠가 뭐길래! 그런 사람들 끼리 모이다 보면 "골절클럽"이 된다. 모두 골절클럽 회원들이다. 어제 번개를 쳐서 오늘 속초를 가는 길이다.
 아쉬운 작별이다. 서로 서로 무탈 운행을 기원하며 그들은 동쪽으로 우리는 서쪽을 향해 길을 떠났다.

 길을 따라 홍천강이 흐르고 있었다. 홍천강은 강원도에서 경기도로 유유히 흘러든다. 강물은 한강이 되어 서울을 거친다. 어떤 강물은 수도관을 따라 다시 집으로 흘러들기도 하고, 청계천 물살로 살아 나 서을 한복판을 탄다. 부자집 화장실에 들렸다가 하수도로 빠지거나, 가난한 집에 찾아 가 밥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물뿌리개를 타고 화분에 가서 꽃을 피우기도 하고, 종가집 며느리를 만나 술로 빚어지기도 한다.
 홍천강은 물 위로 배를 띄우기도 한다.
 아내와 나는 20년 전에 바람 넣는 고무 배, 카누를 타고 홍천에서 청평까지 뗏목 여행을 했었다. 강에 카누를 띄우고 아내는 앞에, 나는 뒤에 앉아 노를 저으며 3박 4일 동안 강을 흘러 갔었다. 날이 저물면 강가에 텐트를 치고 밥을 해 먹었고, 아침에는 짐을 카누에 싣고 물살에 배를 맡긴 채 흘러갔던 것이다.
 그 홍천강이 지금도 흐르고 있었다.  
 

서어나무새를 만나 아내를 트레일러를 끌어주었다.

 며느리고개도 많이 낮아지고 평탄해졌다.
 그래도 오르막이 꾸준하다. 고개 꼭대기에서 쉬고 있는데 서어나무새로부터 전화기 왔다. 양평이란다. 30~40 분 안에 만날 수 있겠다. 만나서 점심을 같이 하기로 했다.
 용문 못 미쳐서 서어나무새를 만났다. 먼 길을 자전거로 마중해 줘서 정말 고맙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점심을 먹고 나서 아내의 트레일러를 서어나무새가 끌었다. 40대 초반의 힘이 넉넉하게 느껴진다. 속도를 높혔다. 양평을 지나고 한강을 끼고 달리는데 창민이가 전화를 했다. 양수대교를 건너고 있단다. 근무 중에 바쁘게 온 탓이라 자동차로 오고 있다고 한다.

 막내 아들 창민이는 호주대륙을 자전거로 함께 횡단한 원정 파트너였다.
 그러고 보니 12년 전에 5천km 원정을 하고 오래만에 장기간 여행을 한 셈이다. 호주에서도 아웃백(outback)의 더위가 내 경험으로는 기록적이었었다. 이번에도 한국형 복더위가 만만찮은 걸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아웃백(outback)보다 더 더웠던 날들이었다. 더위에 대한 나의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경험을 통해 익숙한 세상을 사는 사람이 있고, 경험의 경계를 넘어 예상할 수 없는 세상을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를 좋아한다. 인류 최초라든지, 한국인 최초라는 수식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자기가 경험한 한계를 넘을 때마다 "내가 처음 해 본 일"에 대한 자긍심과 기쁨을 가질 수 있다. 나는 모든 보통 사람들이 그 "처음 해 본 일"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믿는다.
 아내도 처음 해 본 전국일주를 통해 행복해 하고 있다. 나도 아내와 처음으로 함께 한 전국일주 자전거 여행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다.
 삶의 질이 고양된 것이다. 
 


 창민이를 만났다.
 서른 여섯인데도 아직 결혼을 미루고 있다. 잘 생긴 얼굴에 성격도 좋아 따르는 여자들이 있다고 하지만 부모로서는 여간 답답한 게 아니다. 창민이 대답은 "여행 좀 더 다니고요"인데 그러면서 10년을 넘겼다.
 창민이 차에 트레일러와 짐을 실어 보내고 우리 셋은 팔당에서 한강으로 진입하여 왕숙천까지 자전거도로를 타기로 하였다.

 등산으로 떠나는 원정경험이 있어서 나도 짐을 꾸리거나 장비를 채택하고 선별하는 안목이 조금 있다. 물론 사전에 그 장비를 모두 시험해 본다는 게 나의 원칙이다. 어떤 날씨에도 성능이 가능하며 가볍고 조작이 간단해야 하는 것들을 가려내는 것이다.
 자전거 여행에서는 자전거가 제일 중요한 장비다. 무게도 중요하지만 짐을 운반하기에 적당한가, 수리하기에 용이한가, 자전거와 내가 잘 어울리는가 등을 살피는 것이다. 가급적이면 늘 타던 자전거를 갖고 가는 게 좋다.
 이번 여행에서 짐 운반을 위해 KOOL STOP 트레일러를 선택한 것도 잘 한 일이다. 카메라, 압력밥솥, 텐트, 스토브 3개 등등...... 다 좋았는데 한 가지 실수한 것이 노트북이다.

12년 전 호주횡단에 사용하였던 트레일러를 이번에도 사용하였다.

 노트북은 출발 3일 전에 구입하였고 프로그램을 해 준다고 막내가 갖고 갔다가 전 날에 나에게 갖다 주어서 시험을 해 볼 기회가 없었다. 데스크탑으로 겨우 블로그만 하다가 노트북의 비스타를 만나니 젊은이들은 다 쉽게 할 수 있는 작업조차 서툴렀다. 여행기를 쓰겠다고 포부도 대단했는데 막상 당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우선 텐트에서 노트북을 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바테리 가용시간이 얼마인지도 모르겠고, 글을 써서 저장을 하면 어느 창고로 가서 모여있는지 찾을 수도 없었다. 무게도 악세사리를 포함하면 자전거여행으로는 버거운 3kg이 약간 넘었다. 게다가 비싼 물건이라 함부로 다룰 수도 없고,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고......  그저 수첩에 연필로 메모하는 게 최고다!

 팔당에서부터 한강을 타고 가는 자전거도로는 왕숙천에서 삼거리를 만나 북향을 하며 구리로 이어진다. 자전거를 위해 이만하게라도 길이 전용으로 만들어졌다는 게 고맙다. 국가 시설이 국민의 자부심을 채워주는 것이다. 트레일러까지 떼어냈으니 속도는 더 빨라졌다. 가벼워진 자전거에도 괜히 힘이 들어 가 헛발질을 한다. 속으로 우습다.

 진접에서 저녁을 사 먹었다.
 서어나무새와 남편이 저녁을 샀다.
 집까지는 8km가 남았다.

내년에는 아내와 고비를 넘어 아시아 대륙 자전거여행을 할 것이다.

 저녁을 먹고나서 식당 앞에 세워두었던 자전거로 와 보니 아내의 헤드라이트가 없어졌다. 누군가 떼어간 것이다.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전국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던 분실사고가 집을 코 앞에 두고 일어난 것이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아내에게 서운한 마음을 그대로 이야기 했다. 흥분으로 목소리가 컸었던지 힐끔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포기하고 건물 화장실에 소변을 보러 들렸다. 밤에 헤드라이트를 도난 당했으니 처지가 난감한 것이다. 둘째 아들 영민이에게 전화를 해서 차를 가져오라고 했다. 마지막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 생각이었으나 라이트가 없으니 운행이 불가능해 진 것이다.
 조치를 취하고 화장실을 나서는데 아, 이게 어인일인가! 라이트가 화장실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지않은가!
 바닥에서 라이트를 얼른 집어들고 주위를 부리나케 살폈으나 인적을 찾을 수 없었다. 가져갔던 사람이 라이트를 주인에게 몰래 다시 돌려 준 것이다.



 아름다운 우리나라!

 "우리나라"를 훈민정음 워드로 치면 글 아래에 빨간 밑줄이 그어진다.
 틀렸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가 맞다. 그래도 나는 우리나라라고 친다. 대한민국도 우리나라로 이름을 바꾸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냥 좋으니깐!
 내가 가진 물건 중에서 우리나라만큼 멋있고 아름다운 것은 더 없다. 산이 많다는 사실 하나로도 나는 우리나라가 좋다. 바다가 산을 에워싸고 파도를 치고 있으니 더 좋다. 겨울 산에 눈이 쌓이고 스키를 탈 수 있어서 좋다. 봄에 꽃이 피면 나는 외국인 친구를 우리나라에 초대하고 싶어진다. 여름에 가슴을 열고 바다를 보며 가을에는 하늘 끝까지 꿈을 펼친다.

 아름다운 우리나라!
 자전거여행으로 만난 우리나라는 금수강산만 아름다운 게 아니었다. 우리나라 안에 살고 있는 백성, 축생, 벌레, 미물까지 모두가 다 아름다웠다. 내리는 비도 아름다웠으며 여행 내내 등어리를 짓누른 복더위도, 파도를 타는 바다 물안개도, 깃발을 나부끼게 하는 바람도, 번역을 알수 없었던 제주도 방언도 그리고 칡꽃 향기도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아름다웠다.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아름다웠다. 길을 쓸고 닦는 미화원들이 아름다웠다. 불더위에 전선에 올라 가 뭔가 모를 수리에 몰두하는 사람이 아름다웠다. 새벽 항구를 떠나는 어부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이 아름다웠다. 밭 언저리에서 수박 네 개를 늘어 놓고 팔던 제주도 할머니가 아름다웠다. 성산포에서 안방을 내어 준 민박집 아주머니가 아름다웠다. 무명 옷 꿰매는 일에 평생을 바치는 영광의 바느질쟁이도 아름다웠다. 요리하는 게 너무 좋아서 스쿠바 강사를 때려치운 울진의 남자도 아름다웠다.

 내가 바라본 우리나라는 하늘, 땅, 물이 모두 아름다웠다.

 많은 사람들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격려로 얻은 용기가 내 가슴에 꿈 하나를 더 키울 수 있게 해 주었다. 내년에는 아내와 고비를 넘어 아시아 대륙 자전거여행을 할 것이다.
 아주 행복한 모습으로 다니고 싶다.
 
 어머님이 마당까지 나오셔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어머님이 계신 집으로 돌아 온 것이다.
 밤이 꽤 깊었다.
 
 마지막 날에 149km를 달렸다. 이번 여행의 총거리는 1,539km이다. 23일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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