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바뀌어진 자동차 전용 도로
에디터 : 박규동

2008년 8월 9일

엿새째 날,
지난 밤에 잠을 설쳐서인지 비몽사몽으로 장항을 거쳐 금강하구둑을 통과하였다. 하구둑을 건너면 남도 땅 전라도이다. 길가에 해바라기가 장관이다.

금강하구, 길가에 해바라기가 장관이다.

군산을 비켜서 가며 27번 국도에서 29번 국도를 갈아 타고 김제로 향했다. 모두 4차선 도로이다. 길은 곧게 뻗어 있었다. 단지 가로수가 없어서 쉬기도 겁이 났다. 그늘이 없으면 쉬는 것도 고역이었다. 아내 앞에서 부지런히 페달을 밟는다. 아내도 지치지 않고 열심히 따라 온다.
그 때 어디선가 많이 듣던 경고음이 들리기 시작하였다. 아이들 말처럼 "빼롱~빼롱"하면서 경찰차가 우리에게로 다가온다. 이게 무슨 불상사란 말인가!
경찰이 차 안에서 마이크로 우리에게 명령한다.
"자전거를 멈추시오!" 그래서 자전거를 멈췄다.
"이 길은 자동차전용도로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아니, 이럴 수가 있나요? 그 동안 멀쩡하게 잘 타고 오던 길인데 갑자기 자동차전용도로라니요?"  
"2km 전방부터 자전거전용도로입니다. 표지판을 보지 못했습니까?"
"못 봤습니다. 몰랐습니다. 그리고,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지도에 표시도 안돼 있고요"
"법은 멍청한 국회의원들이 만들었고요, 지도는 지도회사에서 만들었고요, 우리는 단속만 하면 됩니다!" 기가찬 명답이 오고 갔다.
이내 친절한 경관은
"이 도로는 자전거 이용자들의 안전을 위해서 그런 조치를 한 것이니 지금부터 지방도로로 내려가서 자전거를 타고 가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하고는 순찰차로 우리 자전거 뒤를 따라 갓길로 오면서 다음 나들목이 있는 대야까지 에스코트를 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갓길이 없는 좁은 지방도로로 내몰렸다. 그들이 안전하다고 내 몬 길이다.      
만경을 거쳐 부안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내는 경찰하고 다툰 일로 나를 핀잔했다.
"그냥 미안합니다. 잘 몰랐습니다 하고 말 것을 싸울 듯이 덤벼들어서 얼마나 걱정이 되서 힘들었는지 알아요!"
남자는 이럴 때 미치고 환장을 한다. 아니 누구 때문에 체면을 세우려고 덤벼든 것인데 말이다. 도대체 누구 편을 드느냐 말이다!
아내와 몇 시간 동안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삐친 것이다.

중국인 여행자. 다들 중국으로 가는 지금 아닌가?
이 친구는 반대로 한국에 와서 이 복더위에 왜 자전거여행을 할까?

삐친 마음을 달래느라 냅다 달렸다. 아내가 따라 오든 말든 시골 2차선 길을 내빼고 있는데 길가에 자전거여행을 하는 청년 한 사람 만났다. 자전거를 붙잡고 우물쭈물하는 게 꼭 자전거가 고장이 나 낭패한 모습이었다.
"자전거 고장 났어요?"
달리는 속도를 줄이면서 물어 보았지만 힐끗 쳐다보기만 할뿐 대답이 없다. 별문제가 아닌 게로군 하면서 그를 지나쳐 갔다.

김제 평야의 푸른 벌판이 눈이 닿지 않을 만큼 평평하게 펼쳐진 초원의 한 가운데를 달리다가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멈추었다. 그 청년이 다가왔다.
"어디서 왔어요?" 말은 건넨 건 내가 먼저였다.
"많이 덥지요?" 두 번을 물었는데 그가 대답을 한다.
"I am not Korean." 멀쩡한 동양인이 한국인이 아니라고 하니 영어로 대화를 하는 수 밖에 없다.
"Where are you from?"
"중국인 이예요. 베이징에서 왔어요." 그의 대답에 나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
다른 사람들은 올림픽에 열리는 베이징으로 가지 못해 안달인데 이 친구는 반대로 한국에 와서 이 복더위에 왜 자전거여행을 할까?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공부하는 학생인데요, 방학에 한국으로 여행을 왔어요" 이제 알만 하다.
"너무 더워요! 팔 다리가 다 익었어요." 그러고 보니 이 친구 벌겋게 데인 팔과 다리에 어디서 구했는지 밀가루 포대를 잘라서 토시를 하고 있었다.
바느질을 할 수 없어서 문방구용 테이프로 팔 소매와 반바지 끝에 붙여 놓았다. 아까도 우물쭈물했던 것은 접착이 떨어진 테이프를 다시 붙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 이름은 '펑' 이예요!"
아내가 얼른 제안을 한다. 우리가 예비로 갖고 있던 신축성 소재로 된 팔 토시를 선물로 주자는 것이다. 아내는 바로 짐을 풀어 토시를 찾아냈다. 그에게 선물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서 그는 지도를 펼치며 질문이 있다고 했다. 두 가지 지도를 갖고 있었다. 중국어와 한국어로 된 각각의 지도였다.
한국어로 된 지도를 펼치더니 범례에서 국도를 표시한 도로 기호를 가리키며 "이 길로는 자전거가 다니지 못해요?" 한다. ㅋㅋㅋ 그도 우리처럼 경찰한테 당한 모양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펑'을 멀찌감치 바라보며 우리는 남으로 남으로 내려갔다.


부안에서 변산반도를 빼고 곧바로 줄포로 내려갔다.
몇 년 전에 아내와 변산반도를 둘러 본 경험으로 채석강의 인파가 얼른 떠 오른 것이다.
가급적이면 인파를 피해 가는 것도 좋으리라.
항아리를 많이 모아 둔 휴게소가 나타났다. 보안에 있는 휴게소에서 커피를 마시며 골동품에 가까운 옛날 항아리를 구경하였다. 우리의 독특한 행색을 보고는 오고 가는 사람들 마다 한 마디씩 격려와 응원을 해 주었다. 포천에서 자전거 타고 왔다니 "이 더위에 기가 질린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것도 트레일러를 달고서, 그리고 바깥양반은 그렇다 치고 부인께서 정말 대단 하십니다!"
속도 모르는 소리를 건네는 그 사람 때문에 나는 또 한 번 삐쳤다. 아내 덕에 나는 빛이 나지 않는단 말이다. ㅋㅋㅋ

저녁 6시쯤에 줄포에 닿았다.
이 때부터는 텐트 칠 곳을 열심히 찾아야 한다. "동네가 있으면 정자가 있다. 그 정자는 우리 안식처이다!" 하면서 야영준비를 한다.
줄포 성당 앞에서 기웃거렸다. 혹시나 성당 안에 텐트를 칠 수는 있을까 해서다.
외출에서 돌아오던 수녀 두 분을 정문 앞에서 만났다. 우선 물을 구한다고 했더니 "요 안에 들어오면 수도가 있으니 물을 받아 가세요.
그리고 저기 저 길로 해안에 가면 생태공원이 있는데요. 영화촬영도 한 곳이에요. 멋 있어요. 낙조도 일품이에요. 다녀 가세요" 하고는 건물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마치 우리의 속내를 다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저녁 밥을 해 먹을 물을 두 통 받아서 수녀님이 가르쳐 준대로 줄포 해안 생태공원으로 갔다.

어쭈 내 앞 타이어가 펑크난 게 아닌가!

방조제처럼 만든 뚝방길 비포장 도로를 2km 나아가니 곰소만 갯벌이 넓게 넓게 나타났다. 썰물이었다.
갯벌식물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주욱 늘어 섰고 생태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낙조를 향해 사진도 찍어야겠고 잠 잘 곳도 찾아야 하는데 어쭈 내 앞 타이어가 펑크난 게 아닌가!
아! 오늘은 아침부터 사납기 짝이 없다.

나는 타이어 펑크를 수리하면서도 곰소만의 저녁 풍광에 영혼을 빼앗긴다.
곰소만은 빼앗아 간 내 영혼을 저녁 노을에 달구고 바닷물에 헹구더니 다시 내게로 돌려 준다.
삽시간에 옹졸한 내 마음에 평화가 깃 든다. 저녁 노을이 연주하는 빛의 향연이 스펙트럼되어 나에게 평화를 담을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곰소만 풍경에는 아내와 자전거가 곁에 있었다!

공원을 관리하는 마을 청년과 인사를 하고 아무도 없는 공원입구에 텐트를 쳤다. 50m 쯤 떨어져 있는 건물 모퉁이에 수도가 있어서 몸을 씻을 수도 있었다.

엿새동안 우리는 437km를 달렸다.

공원입구에 텐트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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