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천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하다.
에디터 : 박규동

2008년 8월 8일

대천 항에서도 아침은 전날 먹고 남은 밥과 장아찌 그리고 모처럼 만든 김치찌개로 먹었다. 전날 저녁에 장터에서 김치 한 봉지와 돼지고기 반 근을 사 와서 찌개를 끓였던 것이다.
체력소모가 많아서 뭐든지 맛있고 입에 당기지만 아내의 김치찌개는 정말 맛있다.
집에서 준비해 간 장아찌는 콩잎장아찌, 간장에 절인 김, 짜게 볶은 북어 포였는데 복 중에도 쉬지 말라고 모두 짜게 만들었다. 된장이 약 700cc, 고추장 500cc, 김 작은 봉지 6개, 말려서 압축된 미역 1봉지, 참치 캔 3개, 꽁치 통조림 2개, 햄 통조림 3개, 호박, 양파, 풋고추, 고추가루, 참기름 50cc, 소금, 라면 5개 그리고 쌀 3kg를 싣고 떠났었다.
음식재료는 아내가 준비했다. 여행 중에도 요리는 아내가 하고 나는 스토브를 피우거나 뒷 일을 거들었다. 손발이 척척 맞았다.

대천 항에서 남쪽으로 언덕 하나를 넘으니까 대천해수욕장이 나타났다. 서해안 최고의 여름 휴양지답게 멋진 해변이 펼쳐져 있었다.
찼던 물이 빠지는 중이었고 파라솔이나 자리를 빌려 주는 업자들은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참 좋은 해수욕장이었다.
우리 둘 중에 누가 먼저 말 했는지 모르겠으나 해수욕을 하고 쉬어 가자는데 금방 합의 했다. 대천해수욕장은 우리도 처음 왔지만 날씨가 해수욕 하기에 딱 이었다.
해변 남쪽에 있는 한화콘도 앞 솔밭 그늘 아래에 자전거를 세웠다. 그리고 옷은 자전거 복장 그대로 물에 뛰어 들었다.
아! 상쾌한 이 기분.

바다에서 하는 목욕과 수영은 다르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수영장이나 목욕탕은 물이 죽어 있지만 바다는 물이 살아 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 바다다. 우리 사람도 바다로 만들어졌다. 
다리를 포함하여 모든 근육이 살 맛이 난 것 같이 기뻐한다.
해수욕하기를 잘 한 것이다.

여행 닷새째다.
바다를 매일 만났지만 이번 여행에서 해수욕은 처음이다.
수영을 하다가 모래밭에 나와 앉았다. 아내가 수영하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본다. 물장구가 튀고 거품이 인다. 아내의 몸짓이 그대로 즐거워 보인다. 카메라에 200mm 망원 렌즈를 장착하고 아내를 포커싱 해  본다. 
밝다!
물가에 뛰어 노는 아이들이나, 파도를 따라 다니며 먹이를 찾는 작은 물새들도 아내만큼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60대 할머니가 아니다!

그러고 보니 바닷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아내를 위해서 내가 아내를 동반하여 바다에 나간 적이 얼마나 될까 헤아려 보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산으로는 무턱대고 아내를 몰아 갔지만 아내가 좋아하는 바다로 나간 적은 별로 기억에 없는 것 같다.
앞으로는 자전거로라도 자주 바다를 찾아야겠다. 아내에게 바닷바람을 마시게 하고 싶다.

노트북을 꺼내고 솔밭 그늘에 앉아 이번에 지나온 여행담을 글로 써 봤다. 노트북이 아직 서툰 터라 생각이 글로 잘 찍히지 않는다. 공책에다가 글을 쓸 걸 그랬나 보다.
야영 터를 일찍 잡고 나서 여유 시간이 생기면 그 시간에 글을 쓸려고 준비해 온 노트북인데 정말이지 딱히 글 쓸 시간 만은 만들어 지지 않았다. 무거운 노트북을 챙겨 넣으면서 비장했던 글쓰기 각오는 결국 아내의 조롱감이 되고 말았다.
폼만 잡다가 망신이다. 더구나, 무거운 짐을 생각하면 단 1kg이라도 줄여야 하는데 말이다. 아내는 노트북을 소포로 무림리에 보내라고 성화다.

물이 빠지면서 들어난 갯바위에 다가 가 뭔가를 하던 아내가 갯바위에서 굴을 따 왔다. 바닷가에서 자란 아내의 안목이다. 칼 끝으로 굴을 파내더니 그 걸로 미역국을 끓이겠단다.
즉석에서 해물 미역국을 끓이고, 새로 밥을 지어서 먹었다. 이 또한 꿀맛이다.
소꿉놀이가 따로 없다.
우리의 소꿉놀이 여행은 욕심없이 흘러가는 동심이다.

소꿉놀이에서 밥이 잘 되는 것은 부엌 장비를 잘 챙긴 덕도 있다.
이번 자전거여행의 부엌 장비 중에서 특별히 선택한 게 있는데 바로 압력밥솥이다. 2~3인 용으로 아주 귀엽게 생겼다. 하지만 무게가 만만치 않아 여러 번 망설이다가 채택한 요물이다.
아무리 캠핑 경험이 많아도 양은으로 된 등산냄비로 밥을 지으면 거의 매번 설익거나 타고 질척거리는 3층 밥이 되기 십상이다. 등산냄비보다 열 배는 더 무거운 느낌이지만 이 압력밥솥은 밥 요리가 아주 간단하게 되면서도 연료를 많이 줄일 수 있어서 좋았다. 밥을 한 번 하면 우리는 두 끼를 먹을 수 있는데, 대체로 저녁에 밥을 해서는 저녁과 다음 날 아침까지 해결 하였다.
다음으로 중요한 부엌 장비는 야외용 스토브이다. 세 개를 준비하였다.
밥 할 때 쓰는 것으로 미국 콜멘 사의 Apex2를 먼저 선택하였는데 백색휘발유와 차량용 휘발유 그리고 노즐을 바꾸면 석유까지 쓸 수 있는 다중 연료용이다. 연료 통에 직접 호스를 연결할 수 있기 때문에 자체 연료탱크가 없어 매우 가볍다. 이번 자전거여행에서는 백색휘발유를 사용하였다.
두 번째는 국과 찌개를 끓일 때 쓰기 위해 가져간 것으로 구입한지 17년이 된 독일 Markill사의 Stormy이다. Stormy는 전문등산가들을 위해 특별히 디자인 된 것으로 버너를 에워싸고 있는 용기를 곧장 냄비로 쓸 수 있어서 편리하고 특히 바람에 강하다. 연료는 통칭 EPI가스를 사용한다.
차를 끓일 때 쓰기 위해 우리나라 코베아에서 만든 가볍고, 조그만 EPI가스용 스토브를 따로 준비하였다. 가볍고 부피도 작아서 예비용으로도 좋은 것 같았다. 스토브는 사전에 시험을 여러 번 하여서 여행 중에는 이상이 한 번도 없었다.


밥 지을 물을 구하러 상가로 나갔다. 물건 값이 착하지 않다.
두리번거리다가 텐트 장에서 '네 명의 청년 팀'을 만났다. 점심 때가 다 되었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도 나를 알아보고는 반가워한다. 우리는 해수욕을 하고 오후 4시에 출발할 거라고 얘기 하니 그들도 너무 더워서 늦게 떠날 생각이란다. 전날 밤에 도착했단다. 다시 만나자고 인사하고 물을 사서 아내에게로 돌아왔다.

낮 4시에 대천해수욕장을 떠나 남쪽으로 길을 나섰다. 해변에서 큰 길로 올라서는 진입로 경사가 장난이 아니었다. 바람에 날려 온 모래도 미끄럼을 타게 했다. 내가 앞에서 자전거를 끌고 아내가 뒤에서 트레일러를 밀었다. 두 번을 왕복하여 자전거를 다 끌어 올린 다음 서천 방향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마음이 가벼우니 몸도 따라 가벼웠다.

오늘은 2008년 8월 8일이다.
저녁 8시에 베이징올림픽이 개막된다. 8자가 네 개가 겹쳐지는 시간에 중국은 세계를 향해 기념을 토할 거라고 연일 개막식 자랑을 방송했다. 귀가 솔깃해졌다.
아내를 졸랐다. 개막식을 보기 위해서라도 모텔이 들어 가자고 말이다. 해수욕으로 기분이 좋아진 아내가 별 반대없이 그리하자고 하여 서천까지 와서 모텔에 들었다.
베이징올림픽의 개막식의 식전행사는 볼만하였다. 개막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성화점화식을 기어코 보겠다는 나를 두고 아내는 미리 잠이 들었다.

빨래를 하고 샤워를 한 후 올림픽 중계를 보면서 에어컨을 켠 방이 식기를 기다렸다. 낮에 문을 닫아 둔 방은 일시적으로 뜨거운 기운이 남아 있지만 약 1시간이 지나면 지낼 만 하게 시원해 지기 때문에 땀을 닦아 가며 기다린 것이다.
그러나, 왠 일인지 오늘은 방이 식지를 않는다. 에어컨에 선풍기를 틀어도 좀처럼 시원할 기세가 없다. 왠 일인고 했더니 우리가 자는 방은 2층인데 위는 평면 슬라브로 된 집이었다. 지붕 슬라브가 밤새도록 식지를 않은 것이다.
올림픽 중계도 끝났는데 나는 더위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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