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고향 마을을 지나 서해안으로
에디터 : 박규동

둘째 영민이를 낳았던 성빈센트병원
다음 날, 아침 여섯 시에 잠에서 깨었다.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밥을 장아찌와 먹고 얼른 짐을 싸서 수원시내로 갔다.
지동고개를 오르면 오른쪽에 커다란 건물이 성빈센트병원이다. 둘째 영민이를 낳았던 곳이다.
정문 앞에서 아내를 세우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인계동 길을 내려와 팔달문을 돌아 수원역으로 너머가면서 결혼식을 올렸던 수원문화원을 찾아 보았으나 이미 다른 건물이 들어 서 있었다. 수원역에서 잠시 쉬었다.
더워서 자꾸 음료수만 들어간다.
1.8리터 짜리 물을 아내와 둘이서 한꺼번에 들이키는데 지나가는 행인들이 구경 삼아 우리를 두리번거린다.
세류동지하도를 건너 평동으로 지나갔다.
SK의 본사인 선경직물이 있었던 자리에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 서 있다. 아내가 다닌 첫 직장이었는데......
모든 게 변하였다.

아내의 친구 봉순씨와 옛날 얘기에 수다가 넘친다.
발안을 지나면서 조암에 살고 있는 아내의 친구 봉순씨에게 전화를 넣었다.
기다리고 있단다.
그렇게 고향에서 60년을 기다린 사람들이다.
봉순씨 집에서 해주는 점심을 먹고 낮잠도 잤다. 아내와 봉순씨는 옛날 얘기에 수다가 넘친다.
말수가 통없는 봉순씨 남편도 어렵게 한 마디 한다. "이 더위에 미쳤지! 미친 겨!"
수박도 얻어 먹고 싸주는 옥수수도 챙겨서 오후 4시에 봉순씨 집을 나섰다.
아내의 고향 마을이 있었던 미공군 폭격장 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매향리, 고온리를 멀찌감치 바라보며 바다를 만났다. 서해안으로 접어든 것이다.

서해안 시대를 열고 있는 평택항을 통과하며 후배 첼로에게 전화를 했다.
지나는 길이면 꼭 전화를 달라던 안부기 생각 났던 것이다.
첼로는 평택 미공군기지에 관세청에서 파견된 관세담당관이다. 때 마침 부시 미국 대통령의 한국방문 직전이라 사전 준비하는 팀들이 들이닥쳐 업무에서 빠지기가 어렵단다.

서해대교 아래에서 잠깐 쉬었다가 아산만의 평택호에 닿았다. 아산만 방조제가 평택호수를 만든 것이다. 평택 쪽에서는 평택호라고 하고 충청도 쪽에서는 아산만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경기도 끝 자락 평택호 바로 옆에 있는 공원의 정자 안에 텐트를 쳤다. 휴가 나온 많은 피서객들이 호텔과 팬션에 머물면서 가족들끼리 즐기는 모습이 보였다.
호텔 바로 옆에 헝겁으로 하루살이 집을 짖고 휴대용 스토브로 밥을 준비하는 노인들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는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우리는 웃음 밖에 줄 것이 없었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우리처럼 자전거여행을 하는 50대 부부를 만났다.
인천에서 출발하여 안면도까지 갔다가 다시 인천으로 돌아가는 여정에 이 곳 호텔에 묵게 되었단다.
대뜸 소주 한 잔 하자는 제안을 해 왔다. 자전거 타는 사람끼리 만났으니 체면이고 뭐고 따질 것 없이 좋다고 했다.
횟집에서 소주를 마셨다. 오늘 흘린 땀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으나, 그 탓인지 소주가 입에 달았다.
자전거여행을 하는 50대 부부를 만나 소주를 한잔 했다.
인천에서 세무사를 한다는 설삼환씨는 호탕하게 아내 자랑을 하였다.
아내가 먼저 자전거를 시작하여 자기를 끌어들였는데 이 것 만큼 좋은 게 없다고 주석을 단다. 인천에서 산정호수를 자전거로 다녀온 경험이며, 경인선 전철이 통과하는 교량 아래의 공터를 자전거 전용도로로 만들면 저비용으로 미리 자전거 길을 만들 수 있다는 그의 좋은 생각까지, 우리는 온통 자전거 이야기만 했었다.

이틀 동안 152km를 달렸고. 둘이서 마신 물은 패트 병으로 11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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