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0~08/21
창으로 위협하는 마사이족 강도
2012-08-14   이호선

바바티(Babati)에서 아루샤(Arusha)시까지 167km, 그리고 다시 케냐 국경인 나망가(Namanga)까지 110km다. 일찌감치 일어나 텅 빈 거리를 가로질러 도로 위에 선다.
하늘은 구름이 잔뜩 끼어 음산하기 짝이 없지만 완벽하게 포장된 도로를 앞에 두고 상쾌한 마음으로 페달을 젓기 시작한다. 약 2시간가량 힘차게 달려 나타나는 한 타운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식당으로 향하다가 도로변에 앉아있는 경찰관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나는 당치도 않은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북쪽으로 달려야 했을 길을 나는 정반대인 남쪽으로 달려버린 것이다. 아침에 잔뜩 흐린 날씨로 해를 어디서도 보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로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범하고 만 것이다.
25km를 달려왔으니 왕복 50km!!
내가 우째 이런 실수를!!!
식당에 앉아 밥을 먹고 있으나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또한 씹고 있는 것이 무슨 맛인지 알 수 가 없을 정도로 혼미하고 울화가 치민다. 내가 마치 마(魔)의 버뮤다 삼각지대를 항해하고 있는 기분이다.
나 자신을 향해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연신 마른 침 삼켜 삭이며 결코 하고 싶지 않은 '과거 되살리기'를 하다가 문득, 허전함과 함께 섬뜩함을 느끼며 급정거를 한다.
앞 가방 옆에 달려있는 그물주머니에 꽂혀 있어야 할 노트가 안 보인다.
아! 눈앞이 캄캄해진다. 조하네스버어그(Johannesburg)부터 탄자니아의 국경도시, 툰두마(Tunduma)까지의 스토리는 툰두마에서 배탈과 설사로 여인숙에 있는 동안 모두 정리해 컴퓨터 속에 넣어 두어 천만다행이지만, 툰두마에서 바바티까지의 1,000km, 13일간의 행적이 말끔하게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나는 이미 달려 온 3km의 길을 또 다시 되돌려 내가 밥을 먹고 앉아 있었던 식당으로 달려가 애타게 주위를 헤매보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하늘이시여, 잃어버린 50km와 소중한 나의 노트를 제발 돌려 둬!
그래, 그래, 잃어버린 50km와 노트는 이미 지나간 바람!
몇 번에 걸쳐 긴 심호흡을 하고 또 다시 방향을 돌려 온 몸에 힘 쭉 빼고 천천히 페달을 밟는다.

먹이를 찾아 초원을 헤매던 가축들이 이제 물을 향해 몰려온다.
"야호! 물이야 물!"
얕고 평평한 명당자리를 '한 등발'하는 소들한테 빼앗겨 버린 염소 떼들이 씩씩거리며 반대편의 물가로 서둘러 달려간다.
허나 반대편의 물가는 가파른 언덕으로, 물먹다가 물속에 꺼꾸로 쳐 박히기 십상이다.
"에이 아니꼬운 놈들! 저 소스키들, 우리들 좀 옆에 끼워주면 어때?! 한 덩치 한답시고 우리를 똥개만큼도 취급을 안 해. 즈그 놈들, 황소나 우리들, 염소나 성만 다를 뿐 똑 같이 뿔 두 개 있는 소 아닌가?!"
"암, 그렇고 말구!"

바바티를 지나면서 주변은 급템포로 건조하고 황폐해진다. 띄엄띄엄 크지 않은 나무들이 서 있을 뿐으로 풀조차 흔하지 않다. 물웅덩이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수 많은 가축 떼들과 목동(牧童), 그리고 목녀(牧女)들만이 내 눈 앞에 어지럽다.
풀을 찾아 초원을 헤매던 가축들이 이제 물을 향해 새카맣게 몰려오고 있다.
"야, 물이 춤춘다!"
"뭐야?! 또 한 발 늦어버렸네. 저 소 스키들이 입구를 꽉 막고 서 있는 한, 우리가 설 땅은 결코 없어!"
얕고 완만한 경사의 명당자리를 등발이 큰 소들한테 선점 당한 염소 떼들이 분한 듯 씩씩거리며 반대편의 물가로 서둘러 이동하고 있지만 반대편의 물가는 가파른 언덕으로 네 발에 힘주고 정신 바짝 차리고 서 있지 않으면 물 먹다가 결코 얕지 않은 물속으로 꺼꾸로 쳐 박히기 십상이다.
"정말 더럽고 치사해서 못 살겠어! 저 소스키들 말이야, 우리들 좀 끼워주면 어때?! 한 덩치 한다고 우리를 똥개만큼도 취급을 안 해. 즈그 놈들, 황소나 우리들, 염소나 성(姓)만 다를 뿐 똑 같이 뿔 두 개 가진 소 아닌가?!"
"그려, 그려! 맞는 소리여!"

위(胃)의 애타는 부름에 나는 곧 허름한 식당에 들어서지만 먹을 것이라곤 역시 '차이'와 '차파티'뿐!
'헌데 저 X Saeki는 도대체 왜 아까부터 낄낄대고 있는 거야?!'
내가 의자에 앉자마자 건너편에 앉아 있던 멀쩡하게 생긴 놈이 주위에 서 있는 2,3명의 여자들과 하나가 되어 "치노, 치나"를 연발하며 좋아 죽겠다고 깔깔댄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무지하기 짝이 없는 그의 정면에 서 있다. 나의 두 조준경 안에 무지의 이빨을 한껏 드러내며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이 또렷이 포착되고 조준 점이 찍혔다. 나의 두 발과 두 어깨에도 이미 정격(定格)부하(負荷)가 걸려 있다.

"이 개 자슥을 그냥……… 느그는 '비 오는 날 온 몸에서 먼지가 날 만큼' 두들겨 맞아도 정신 못 차릴 것 같구나!"
전혀 소통이 안 되는 그 앞에서 그저 속절없이 욕만……
정말이지, 느그 놈을 마른 장작 패듯 개 패듯 패 뿌리고 보따리 싸서 나의 정든 고향 땅으로 돌아가고 싶다!
깔깔대던 그가 뭔지 불길한 징조를 느꼈는지 잠시 그의 찬란한 무지의 이빨을 어둠 속에 숨긴다.
나는 나의 의자로 다시 돌아오지만 숨쉬기 운동이 벅차다. 차이와 차파티를 먹고 있는 동안 그들은 또 한 덩어리가 되어 낄낄댄다.
"오, 천지신명이시여!"


한참을 달려가니 마징구(Majingu)라는 조그만 마을이 나타나는데 마을규모에 비해 부산하다. 많은 입간판이 서 있는데 이 곳은 National Park의 입구로 사파리여행지이다.
많은 사파리투어용 흰색Jeep들이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는데 승객들은 모두 백인관광객들이다. 나는 입구에 있는 한 여인숙에 들어가 길고도 힘겨웠던 하루를 마감한다.
여인숙 뜰에는 투숙객이 타고 온 SUV차량이 한 대 서 있는데 놀랍게도 운전자가 백인 남녀다. 이는 분명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사건이다. 그 동안 검은 대륙을 달려오면서 내가 상습적으로 머물렀던 3,4불의 여인숙에서 동서양, 그리고 남•북반구를 불문하고 그 어떤 외국여행자를 본 적이 결코 없었다. 이런 여인숙의 투숙객들은 오로지 현지인들뿐이었다.

40대 초반의 이들 중, 남자-아우구스토(Augusto)-는 아르헨티나 인으로 내가 지나쳐 온 콘도아(Kondoa)지역의 한 중학교(Secondary school)에서 볼룬티어(Volunteer)로 수학과 체육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고 여자-루이사(Louisa)-는 영국인으로 아우구스토와 같은 학교에서 영어와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신앙전파를 대가로 봉사하는 선교사업자들이 아니고 이렇게 순수한 무대가(無代價) 자원봉사자들이야말로 우리시대 진정한 천사들이고 영웅들이다. 긴장과 불운의 하루가 이들과의 만남으로 전혀 다른 의미의 날이 되어 끝을 맺었다.

국립공원입구에 있는 여인숙과 이 여인숙에서 만난 자원봉사 선생님인 루이사(Louisa)와 아우구스토(Augusto).
어떠한 명분이나 대가도 없이 몸으로 봉사하고 실천하는 이들이야말로 우리시대의 진정한 천사이고 영웅이다.

도로주변의 풍경은 급변하며 마치 사막처럼 텅 비어간다. 여전히 마사이 왕국은 계속되고 바싹 마른 초원 위에 분주한 것은 오로지 가축 떼뿐. 아루샤(Arusha)시(市)로부터 내가 이미 지나온 국립공원입구를 향해 달려가는 사파리 투어 Jeep들이 줄을 이으며 나와 마주한다.
짐과 물을 등에 지고 걸어가는 한 무리의 당나귀 떼들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가 갑자기 다가 온 한 사내로 인해 잔뜩 부풀어 있던 내 마음의 풍선이 순식간에 터지며 산산조각이 난다.

이 긴 행렬의 당나귀부대를 찍다가 한 잔 걸친 사내와 싱갱이.
아프리카 땅에서는 카메라 꺼내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잔 걸친 듯한 40전후의 이 사내는 오직 "No photo!"와 "Many Problems!"를 연발하며 나의 카메라를 가로 막는다. 탄자니아에는 우째 이런 진상들 천지냐! 아프리카에서는 사진을 찍을 때 조심해야 한다. 자신들이 잘 살고 있지 못하다는 자격지심이 강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사진을 찍으면 돈을 내놓으라며 달려드는 진상들 또한 속출한다. 사람을 찍을 때는 반드시 보디 랭귀지를 사용해서라도 사진을 찍어도 좋은가를 묻고 확인한 후 셔터를 누르는 것이 예의다.
아루샤(Arusha)를 35km 남긴 지점의 한 여인숙에서 페달을 내린다. 여느 여인숙처럼 바가 있는데 틀어 놓은 음악의 볼륨이 한계를 훌쩍 넘는다. 마침 오늘이 토요일이니 밤늦도록 계속될 전망이다. 상당히 넓은 바에는 맥주를 빨고 있는 젊은 남녀들로 버글버글하다.


결국 어젯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밤 12시가 넘도록 강력한 볼륨의 음악이 건물을 뒤흔들었고 여인숙 뜰에서는 많은 남녀들이 밤새워 떠들어 댔다. 결코 개운치 않은 몸 상태이지만 아루샤를 향한 힘겨운 노 젓기를 시작한다.
아침 10시경에 아루샤 시(市)에 진입했으나 전혀 기력이 없다. 여인숙에 들어가 잘까? 그대로 행진을 계속할까? 마음의 갈피를 못 잡고 그저 길 잃은 나그네가 되어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는 사이 2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오늘이 일요일이라 많은 대형교회들과 이슬람사원들 사이의 대결이 치열하다. 교회에서는 최대볼륨의 고성능 마이크로 설교를 하고 신나는 찬송과 춤으로 그들의 위세를 과시하고 있고, 이슬람사원에서는 정반대로 근엄하고 의젓하게 설교를 계속하고 있으나 이슬람 사원 주위에는 얼굴을 가리고 눈만 내 놓은 젊은 마사이 무슬림 시큐리티(Security)들이 두 눈을 번뜩이며 주위를 경계하고 있다.
아루샤 시(市)의 아침은 신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전으로 뜨겁게 불타고 있다. 결국 나는 뚜렷한 의지 없이 그저 바람에 밀려가듯, 국경을 향해 달려간다.

시종일관 나의 숨통을 조였던 탄자니아 땅을 드디어 넘어 케냐 땅으로.
이 곳은 탄자니아와 케냐의 국경이다.

잘 나가던 도로가 중간 중간 끊기며 비포장이 속출하는데 도로보수와 함께 도로주변의 배수로공사가 한창이다. 여름에 한꺼번에 쏟아질 빗물의 통로를 건기인 지금 정비하고 있는 것에 틀림이 없는데 역시 중국인 건설회사가 담당하고 있다. 구간구간 공사를 지휘하고 있는 중국건설회사의 직원이 어둠 속에 확연히 드러나며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역시 그들도 같은 동양인인 내가 무척이나 반가운 듯 따뜻한 악수를 청한다.
어떤 이는 공사장을 이동하는 트럭에 나와 나의 자전거를 태워주겠다며 대단한 호의를 베푼다. 이 곳 사람들이 사람취급 해주지 않는 그들이 이 곳에서 일을 하며 얼마나 외롭겠는가?! 수 많은 우리의 건설회사와 노동자들이 중동의 도로건설을 위해 날아갔던 것이 엊그제일 같은데 이제 중국이 우리의 뒤를 이어 이 검은 대륙을 책임지고 있다.
그들과 잠시나마 마주하면서 얼마간은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낀다.

인적이라곤 전혀 없고 간간이 차량이 지나갈 뿐인 고요한 구간을 달리다가 창을 든, 젊고 키가 큰 마사이가 난데없이 나타나 돈을 달라는 제스처와 함께 나의 앞을 가로 막는다. 그가 겨드랑이에 끼고 있는 창은 조잡한, 고전적인 것이 아니고 알루미늄대로 깔끔하게 개조한 첨단 창이다. 마침 도로는 평지로 나의 자전거는 불어오는 바람을 비스듬히 받으며 마치 요트의 돛처럼 바람을 타고 있어 이미 상당한 가속도가 붙어 있다.
"튀어!"
두 말하고 있을 새가 어디 있어!
그는 나를 쫓아 달려오고 있지만, 원시적인 샌달을 신고 있는 그가 이미 가속도 잔뜩 붙어있는 '엘파마'를 무슨 수로 잡을 수 있겠는가?!
그의 거친 숨소리와 발자국소리는 순식간에 나의 귀에서 잊혀졌다.
"휴-우, 나의 등을 겨냥해 날렵하기 짝이 없는 그의 창을 날리지 않았으니, 그는 분명 인정 많은 마사이임에 틀림이 없어!"
어둠이 도로를 덮는 순간, 나는 론기도(Longido)라는 작고 고요하기 짝이 없는 마을에 발을 찍는다. 찾아 든 여인숙도 바(Bar)가 없는 여인숙다운 여인숙이다. 아루샤 시(市)에서 2시간이나 까먹고 어젯밤 잠을 못 자 최악의 컨디션이었지만 120km를 달렸다. 브라보!

결코 억지 쓰지 않고,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아침과 순순히 악수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느긋한 마음으로 25km를 달려 국경인 나망가(Namanga)에 도착했는데, 케냐측 입국관리소직원이 아리송한 협상을 강요한다.
비자요금이 25불로 최대 90일임에 틀림없는 것 같은데, 나를 구석에 있는 으슥한 창구로 보내 의혹만발의 협상을 시작한다. 25불은 체류기간이 오직 2주뿐으로 그 이상에서 3달까지는 50불이라며 더블 차지(Double Charge)하려고 한다. 어쨌거나 이곳에선 그들이 법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그들과 협상을 벌여 깎는 수 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나는 자전거여행자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요금이 너무 비싼 것을 끈질기게 부각시킨 끝에 10불을 더 주고 3달을 받아냈다. 내가 더 지불한 10불의 행선지는 말 안 해도 뻔하다. 

탄자니아와 케냐는 화폐단위가 똑 같은 실링(Shilling)이지만 화폐가 완전히 다를 뿐 아니라 화폐가치도 거의 20:1 수준으로 차이가 난다. (Tanzania S:18.2, Kenya S:1)탄자니아의 돈이 더욱 폼 나고 제대로 만들어 진 듯한데 돈의 가치는 정반대이다. 양국의 물가수준은 거의 비슷하나 케냐 측이 조금 더 비싼 것 같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Nairobi)시까지 175km! 또 다른 나라에 들어 왔으나 나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나의 귀를 두드리는 그들의 말, 그리고 주위풍경이 조금도 변함이 없이 한결같다. 단지 엄청난 환율차이로 바뀐 화폐로 혼란을 거듭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 열흘간 달려왔던 1,000여km에 달하는 마사이 왕국은 탄자니아의 국경을 넘었으나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케냐 측 국경마을의 한 과일 노점상 아줌마.
비록 피부색과 언어는 달라도 인자한 그녀의 모습에 나는 문득 나의 살던 고향을 떠 올린다.

85km를 달려 결코 작지 않은 마을, 비질(Bissil)의 땅을 여유 있게 터치한다. 한 가게에 들러 정격전압에 적정온도로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 냉장고에서 꺼낸, 오장육부를 확 깨울 만큼 차가운 콜라를 천천히 비우고 나니 비로소 어둠이 큰기침하며 온 마을을 덮친다.
정신 사나운 거리를 단호히 무시하며 길 건너편에 있는 여인숙을 향한다. 형편없는 여인숙인데 350S(4불상당)을 부르짖는 젊은 아줌마와 짧지 않은 신경전을 벌인 끝에 300S(3불50)로 합의를 본다.
저녁을 먹으려고 여인숙의 어둠침침한 복도를 걸어 나오는데 이 여인숙과 이 여인숙이 운영하고 있는 식당의 야간 경비원이라는 건장한 젊은 친구가 무대 위에 등장한다.
그의 일터에 출근한 것인데 그의 허리춤에 예사롭지 않은 것을 차고 있다. 그 물건의 정체가 궁금해 내가 보자고 하니 그는 자랑스럽게 꺼내 펼쳐 보인다. 마사이족이라는 그가 펼쳐 보인 것은 마사이족들이 자랑스럽게 차고 다니는 마사이족만의 물건인, 레이스가 달린 멋진 가죽케이스에 들어있는, 30cm가량의 날을 가진 사프(Safu)라는 이름의 양면 칼-비록 틈나는 대로 부지런히 갈고 갈았으나 칼날이 제대로 서 있지 않은 조잡한 막 칼-과 룽구(Lungu)라고 불리는 50cm 길이의 나무 봉-이 봉의 한 쪽 끝은 10여cm직경의 둥근 구면(球面)체로 쇠 덩이처럼 단단하여 동물이건 사람이건 머리에 한 방 먹으면 두개골 함몰 내지는 두개골 박살을 유발시킬 만큼 가공할 위력을 가진-인데 두 말이 필요 없는 흉기이다.
마사이족들의 이런 평범치 않은 습관은 전통을 빙자한 명백한 흉기불법소지이다. 내가 오래 전 인도를 지날 때 만났던 적지 않은 수의 시크(Sikh)교도들은 그들의 허리춤에 작은 사벨(Sabel)을 차고 있었는데, 흉기와는 상당한 거리에 있는 아름답게 치장된 거의 상징성의 물건이었다.

마사이족들의 자존심이 뭔지 도대체 알 길은 없으나 전혀 필요 없는 흉기를 전통을 빙자해 차고 다니며 많은 다른 이들에게 위화감(違和感)조성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결코 유쾌하지 않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지역은 물론 도시에서도 버젓이 두 물건을 차고 다닌다.
어둠 속에 흰 이를 온통 드러내고 어깨에 잔뜩 힘주며 자랑스럽게 두 물건을 흔들어대는 이 마사이족 청년은 주먹과 킥이 얼마나 빠르고 위력적인지 결코 알고 있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국경에서 나이로비와의 중간 지점, 비질(Bissil)타운에서 350S(4불)을 300S(3불50)로 50S 깎은 여인숙

6월 14일, 오후 4시. 마침내 나는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Nairobi)의 땅을 밟는다. 4월 22일, South Africa의 조하네스버어그(Johannesburg)를 떠난 지, 52일째로 총 4,052km를 달렸다. 호주의 횡단거리와 거의 흡사하다.

이제 내가 간절히 하고 싶은 것은 싼 여인숙을 찾아 내서 당분간 모든 것 접어두고 침대 위에 푹 퍼져 있는 것이다. 나이로비 시(市)의 한 복판에 서서 둘러보지만 이 곳엔 높은 빌딩이 별로 없다. 다행히도 많은 이들이 영어를 말하고 있어 몇 사람에게 묻고 물어 중심가의 바로 뒤 골목에 있는- 서울의 청계천골목과 너무도 흡사한-이들의 살 냄새, 땀냄새가 진동하는 잡동사니 상가 속에 숨어 있는 나의 여인숙을 발견했는데 이 곳에는 시외버스터미널까지 있어 그야말로 리얼한 인간시장이다.
철물점, 전기용품, 전자제품, 식당, 술집, 여인숙, 사창가………여인숙 요금은 거의 균일로 350S(4불:공동 화장실)과 500S(6불:개인화장실)의 두 종류의 방이 있는데 350S의 방에는 전기콘센트가 달려있지 않아 나는 눈물을 머금고 500S방의 키로 바꿔 잡는다.

6월 14일, 오후 4시. 마침내 나는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Nairobi)의 땅을 밟는다.
4월 22일, South Africa의 조하네스버어그(Johannesburg)를 떠난 지, 52일째로 총 4,052km를 달렸다. 호주의 횡단거리와 거의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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