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장으로 이어진 탄자니아 도로
에디터 : 이호선

오늘밤도 예외 없이 정전이 되어 가물가물 흔들리는 촛불아래 식사를 마치고 암흑의 골목을 걸어 여관으로 들어서는데 투숙객으로 보이는 한 청년이 놀라운 영어로 나의 눈앞에 무엇인가 들이댄다. 이 여관은 경이롭게도 자가발전시설을 갖추며 일찌감치 빛의 자주화(自主化)를 이룩한 곳이기에 여관입구에는 밝은 등이 주위를 환하게 밝히고 있다. 그가 나에게 들이 민 것은 놀랍게도 한국인 주민등록증인데 광주광역시에 살고 있는 김미경씨의 주민등록증이다!
가만있자,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도대체 어디지? 부산?대전?목포?인천?제주도?아니면 독도?!!
"정신차려 이 친구야! 너는 지금 한국에서 수 만리 떨어져 있는 아프리카하고도 탄자니아, 탄자니아하고도 국경도시 툰두마(Tunduma)의 한 여관 앞에 서 있는 거야!"
"맞아 맞아! 저 검은 친구가 난데없이 나 자신도 이미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주민등록증을 들고 와 나를 이렇게 넋 빠진 놈으로 만들고 있지 뭐야?!"

툰두마의 여관에서 이 여관 투숙객으로부터 건네 받은 충격적인 물건인 '우리 주민등록증!'

전기기술자인 그는 그냥 그의 친구로부터 이 증을 건네 받았다고 하는데, 김미경씨가 이곳을 여행하던 중 그녀의 소지품을 누군가에게 도난 당했거나, 아니면 어디선가 그것을 흘렸거나 둘 중에 하나다.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철저한 동양무지의 이 지역사람인 그가 이 증이 한국사람의 것임을 어찌 알았을까 하는 것이다.(주민등록증의 그 어디에도 단 한 개의 영어철자조차 찍혀있지 않다.) 더 이상 물어서도 안되고, 더 이상 물을 필요도 없이 나는 그에게 주스를 한 병 사주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이 증을 건네 받는다.
김미경씨는 한국에 돌아가 이미 주민등록증을 갱신해 내가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이것은 더 이상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것이 단순한 신분증이 아니고 결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머나 먼 타국의 국경마을 뒤 골목에서 반가운 한국동포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되어, 머리 속에서 연달아 이어 달리고 있는 많은 단어와 풍경들이 썰렁한 나의 가슴을 오가며 나를 정신 나간 허수아비로 만든다.
'대한민국-서울-인왕산-독립문-공덕동-가족-친구-어머니-………'

3일째가 되자 나의 머리 속에 무겁게 드리워졌던 짙은 안개가 점차 걷히고 휘청대던 나의 전신에 조금씩 긴장이 감지되기 시작하고 대변이 뭉치기 시작한다.
"나는 또 이렇게 살아났어! 설사만 멎으면 되는 거야! 나의 몸과 위는 나의 믿음을 결코 저버리지 않아!"
나는 내친 김에 여인숙에 그대로 눌러 앉아 그 동안 내 팽개쳐 놓았던 아프리카 스토리와 사진을 정리한다. 이 식당은 어느새 나의 밥집이 되어버렸고 이 집의 음식을 먹으며 나는 다시 기력을 되찾고 있다.(음식값이 1불 50전과 2불 사이다)

어쨌거나 정들었던 툰드마(Tunduma)시(市)를 떨치고 달리다 한 번 뒤돌아 본다.
이 곳의 아침은 상당히 일찍 시작되고 일찍 끝난다.
해가 떨어지면 곧 바로 암흑의 땅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의 긴 행렬이 도로를 가득 메운다.

도로변에 있는 싸구려 식당에서 이제껏 결코 보지 못했던 소고기 덩어리와 감자의 수프까지 등장하며 나의 비명을 유혹한다.
탄자니아 땅에 들어서면서 시작된 무지로 얼룩진 환대, 그리고 박대(薄待)의 힘겨운 주행 속에 나를 그나마 즐겁게 해 준 것이 이 곳의 음식이다.

5월 28일 아침, 또 다시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100km 떨어진 임베야(Mbeya)시를 향해 잠시 잊고 있었던 운명의 페달 젓기를 다시 시작한다.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일터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긴 행렬의 사람들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이 땅의 사람들은 하루를 일찍 시작하고 일찍 끝낸다. 태양의 침몰과 함께 암흑의 세상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동안 사우쓰 아프리카, 짐바브웨, 잠비아에서 경험했던 "How are you?" "Good Morning?" "Where are going?" 등등의 우아하기조차 했던 환영매너는 탄자니아에 들어서자마자 순식간에 분뇨 통에 쳐 박히고 만다. 알 수 없는 자신들의 언어(스와일리)와 한 동안 '잊혀진 단어'였던 "치나(China), 치노(Chino)"가 나를 향해 또 다시 무차별로 난사되고 있다. 그 동안 연연히 이어져왔던 소통의 물줄기가 탄자니아에서 완전히 끊기고 만다. 약 1,200km의 짧지 않은 탄자니아 여정이 또 다시 고행의 길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전신을 엄습한다.

임베야(Mbeya)시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거리에는 하루의 일과를 끝낸 사람들이 바와 식당, 그리고 도로변에 새까맣게 모여 앉아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그들의 한가하고 무료한 저녁시간을 즐겁게 해 줄 그 무엇인가를 애타게 찾고 있었고, 그들의 예상과 바램을 훨씬 능가하는 한 '치노-중국인'의 등장에 그들은 삶의 환희에 온 몸을 떤다. 나를 향해 날아오는 무수한 경멸의 총탄을 태연하고 단호하게 무시하며 거리를 뒤져 여인숙(Guest House: 5,000실링=3불상당)를 찾아낸다.
'이 X Saeki들아, 느그들이 나를 무시하지만 나 또한 사람 무시에는 득도의 경지에 있어! 이미 수 십 년간 세상을 떠돌다 보니 나의 눈과 귀에는 어느새 돌덩이같이 단단한 굳은 살이 배겨있지!'

이링가(Iringa)시 까지가 340km. 적도에 상당히 가까이 다가와 있지만(남위7-8도) 이 곳의 숲도 짐바브웨나 잠비아와 다름없이 가을 색이 완연하다. 이미 낙엽이 되어 대지를 덮고 있는 나뭇잎들은 바싹 말라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나를 소스라치게 한다. 우리나라의 가을날씨와 너무도 흡사해서 기겁을 할 정도이다. 낮에는 타는 태양에 나의 온 몸이 녹아 내릴 듯 하다가도 아침 저녁에는 손이 시릴 정도로 기온이 내려간다. 단지 이 곳은 우리보다 더욱 건조하다.

우리에게 낯익은 논, 그리고 벼!

짐바브웨와 잠비아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시골집들이 둥근 원통형 진흙 벽에 초가지붕이었으나
이 곳에서는 직사각형에 지붕도 생철지붕이 많이 나타나며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앗, 저게 뭐야?!"
나에 두 눈에 절대적으로 익숙한 수확한 벼다.
정미소 앞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많은 벼 포대들이 쌓여있고 앞 마당에서는 벼를 햇볕에 건조 중이다.
탄자니아사람들은 벼를 재배하며 아프리카대표음식인 옥수수가루보다 쌀밥을 더욱 선호한다.
이 곳의 쌀은 중국이나 동남아의 쌀보다 몇 배 더 끈기가 있고 맛이 있다.

아프리카대륙은 그저 메마르고 풍요와 전혀 상관없는 곳이라는 속설만을 접하며 살아왔던 나에게 최소한 내가 지나 온 아프리카의 나라들만큼은 사실과 완전히 다르다.
끝을 결코 알 수 없을 만큼 넓은 지역에 걸쳐 펼쳐지고 있는 대단위 소나무 플랜테이션(Plantation)까지 나타난다.
내가 캐나다를 횡단할 때 경험했던 대단히 키가 크고 쭉쭉 뻗은 소나무들을 검은 대륙 적도가까이의 탄자니아에서 입 벌리고 바라보고 있다. 도대체 없는 것이 없는 이 땅에서 기아와 빈곤, 그리고 병문제가 속출하고 있는 까닭은 도대체 무엇인가?!!
결국은 정치(政治)다!

인적도 지나는 차량들도 뜸한, 결코 만만치 않은 경사의 굽이굽이길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결코 크지 않은 마을이 간간이 나타날 뿐인 한적한 도로를 달리고 있지만 도로를 독차지하고 군림하려는 탄자니아운전자들의 집착에 번번이 내 마음의 평화가 박살 난다. 탄자니아에 들어 와 내가 놀란 것은 바로 논이고 벼다. 잠비아까지 주식이 아무 맛도 없는 옥수수가루였는데 탄자니아의 식탁에는 옥수수가루뿐만 아니고 쌀밥이 오른다. 쌀도 중국이나 동남아의 쌀과 완연히 다르게 끈기가 있고 밥맛이 있다. 메마르고 황폐해서 아무것도 없을 줄만 알고 있었던 아프리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와 별로 다를 것이 없을 정도로 풍성하다. 또 한 번 놀란 것은 내가 캐나다의 삼림지대를 지나며 경험했던 곧고 쭉쭉 뻗은 소나무들의 대단위 플랜테이션이 광범위하게 펼쳐지고 있다. 어쨌거나 이 곳은 지금 수확의 계절로 아주 바쁘다. 정미소 앞에는 수확한 벼의 포대가 순서를 기다리며 줄줄이 쌓여있고 옥수수를 가루로 만드는 곳 또한 하루 종일 쉴 새가 없다.

이링가(Iringa)에 가까워 오면서 새롭게 등장하는 것이 바로 모스크(Mosque:이슬람사원)와 무슬림 들이다. 도로변의 작은 식당과 카페에서는 내가 파키스탄과 이란, 그리고 모로코를 지나며 수없이 먹고 마셨던 무슬림의 주식인 '짜파티: 진흙가마에 구운 얇은 밀전병'와 '차이:홍차'를 팔고 있는데 이것들은 무슬림들의 아침식사로 그들에겐 심각한 음식이다. 이곳의 짜파티는 진흙오븐에서 구워지는 정통 짜파티와 달리 우리의 빈대떡처럼 후라이 판 위에서 기름에 부쳐진다. 짜파티 못지않게 이스트를 혼합한 밀가루반죽을 기름에 도너스처럼 튀긴 것을 많이 먹고 있다.
이링가(Iringa)시 입구의 끔찍한 오르막을 기어올라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도로변의 한 식당 앞에 멈추어 보니 때와 기름에 절어있기는 하나 이 곳에서 결코 흔하지 않은 흰색 위생복에 위생 모까지 뒤집어 쓴 요리사가 수 많은 파리떼들 앞에 어색하고 어처구니없는 언밸런스를 연출하며 생 소고기를 잘라 숯불에 굽고 있다. 쇠꼬챙이에 걸려 있는 생고기에도, 그리고 도마 위에도 무수한 파리들이 새카맣게 달라붙어있다. 희고 밝은 계통의 색이 되어야 할 도마가 새카맣게 달라붙어 있는 파리들과 전혀 구분이 되지 않는 검은 색의 기름때로 반질반질하다. 결국 나의 전천후 비위와 탐욕스런 위장도 깨끗하게 그들 앞에 무릎을 끓고 뒤돌아 선다.

임베야(Mbeya)시를 지나고 이링가(Iringa)시를 향해 달리는 동안 주변은 더욱 건조해가고 유목생활지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오래 전 파키스탄과 이란, 그리고 모로코를 지나며 경험했던 유목민들의 음식인 '차파티: 얇은 밀 전병'와 '차이: 홍차'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이 곳의 유목민 (주로 마사이족)들도 역시 무슬림(Muslim)이 대세로 모스크(이슬람사원)가 속출한다.

이링가(Iringa)시에서 두 갈래로 길이 갈라지는데 동쪽으로 가면 탄자니아의 수도인 다르 에스 살람(Dar es Salaam)이고 북쪽으로 달리면 그대로 케냐로 직행한다. 나의 선택은 당연히 북행열차를 타는 것으로 주저 없이 나의 나침반을 고정시킨다. 이링가 시를 빠져 나와 2,3km를 달렸을까?!  씽씽 잘 나가던 아스팔트길이 순식간에 잘리며 황토 길로 바뀐다. 다시 아스팔트로 바뀔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달려가지만 황토 길이 기약 없이 계속된다.
한 가게에 들러 가게주인에게 물어보니 다음에 등장할 또 다른 시, 도도마(Dodoma)까지 비포장길이 계속될 것이라는 절망적인 얘기를 듣고 만다. 도도마(Dodoma)까지 장장 262km이다.
이 구간은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아프리카 지도상에도 주요국도로 구분되어 굵고 진한 붉은 색으로 명백하게 칠해져 있는 구간이다. 이 길은 케냐, 탄자니아, 그리고 잠비아를 직선으로 연결하는 주요도로이지만 바다에 접한 동쪽 끝의 탄자니아수도인 다르 에스 살람(Dar es Salaam)을 통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렇게 철저히 무시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짐바브웨나 잠비아와 마찬가지로 탄자니아의 도로에서도 한 치의 예외 없이 목격되고 있는 풍경. 이 곳의 도로는 급경사는 없지만 모두 산등성이를 정면대결로 치고 올라가며 굴곡진 산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며 평지 없는 길이 계속되다 보니 대형트럭을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차량이 중고 수입인 아프리카대륙의 '도로의 권력자'들은 이빨 빠진 사자, 발톱 없는 사자가 되어 언덕을 오르다가 엔진과열로 불타버리기 일쑤이고 엔진이 정지되고 쳐 박히고 나자빠져 도로변에 텐트치고 차 안에 굴러다니던 솥 단지 꺼내 불 피워 밥해 먹으며 기약 없는 서비스 카의 출동을 기다리기 일쑤이다.

이링가(Iringa)시를 턱밑에 두고 무지막지하게 가파른 시 입구도로를 오르기 전 잠시 숨을 가다듬고 있던 중, 오랜 만에 만난 국제 바이커, 루벤(Rouven)은 독일인으로 올 대학을 졸업하고(전공이 지질학)곧 시작 될 대학원 학기를 앞두고 자전거 여행 중이라고 하는데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시작해 South Africa의 케이프타운까지 달린다고 한다.
상당히 까다로워 보이는 대부분의 독일 친구들과는 달리 천진난만 할 정도로 순수한 미소와 행동이 나를 즐겁게 한다.

내가 이링가 시 입구에서 만난 독일인 바이커, 루벤(Rouven)은 케냐 동쪽 끝의 도시인 몸바사(Mombasa)를 통해 탄자니아의 동부를 달려 이링가 시로 들어 왔는데 그는 그저 "도로는 완벽하게 좋다!"는 말만을 연발했다. 나는 잠시 '차이'를 마시며 생각을 해 본다. 이링가(Iringa)시로 되돌아가 루벤(Rouven)이 달려왔던 완벽한 그 길로 갈까?! 하지만 나는 이미 고정시킨 나침반의 바늘을 돌리지 않기로 한다. 어쨌거나 나는 이미 지나 온 과거를 되새기고 싶지 않아! 이 길이 아무리 험난하다 할지라도 말이지.
도로는 "혹시나?!"하며 매달리는 나의 간절한 바램을 냉혹하게 거부하며 나에게 고행을 강요한다. 결코 질주가 아닌, 굴렁쇠 굴리기에 급급하며 걷기와 타기를 반복할 뿐이지만 그저 앞만 보고 한발 한 발 전진할 뿐이다.

"엘파마여! 이제 내가 믿을 것은 오로지 너뿐이다. 이제부터는 너의 의지가 곧 나의 의지다. 너의 이름 "El Fama"는 다름아닌 "명성(名聲)"이 아니더냐! MTB도 허걱거릴 이 길을 너는 앞뒤로 짐 보따리까지 둘러메고 있으니 분명 대단한 투혼이 절실하게 요구되지만 너의 이름값을 해다오. 자, 부탁한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 검은 주단을 잘라 가버린 거야?!!"
이링가(Iringa)시를 지나 단지 수km를 달리자 덜커덕 나의 앞을 가로막는
누런 돌밭의 비포장도로. 바야흐로 522km의 고행 길이 시작된 것이다.

길이 험한 덕에 시간당 서너 대의 차량이 지날 뿐이고 작은 가게에 소량의 식품과 생필품을 배달하는 오토바이가 고작으로 가끔씩 십여 채에 불과한 마을 아닌 마을이 나타날 뿐인 길이지만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도로의 권력자, 차량들의 경적의 횡포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 이제, 비로소 나는 고요와 평화를 만끽한다.
시간이 갈수록 현저하게 나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마사이족들로 초원에서 가축들을 방목하며 살아가는 이들이다. 이들은 도로변에서 상당히 깊숙한 초원에서 살고 있다. 도로변의 지역은 철저하게 메마르고 황폐한 곳으로 탄자니아 정부의 관심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된 땅이다. 암흑의 땅이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 No 전기, No물, 그리고 No영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곳이다.
사막의 모래보다도 더 잘고 고운 진흙먼지가 집과 사람들을 집어삼킨다. 결코 많지 않은 차량들이지만 한 번 지나갈 때마다 도로변의 사람들은 누런 진흙먼지를 아낌없이 먹고 마시고 뒤집어 써야 한다. 도로변에 있는 어떤 가게에 들어가도 물 한 방울 없다. 가끔씩 나타나는 과일노점상에서 토마토를 사서 먹으려 해도 수십m 떨어진 자신의 집에 돌아가 토마토를 닦기 위해 퍼 오는 물이 고작 작은 컵으로 하나뿐이다. 이곳에서 한 방울의 물은 곧 한 방울의 피와 동격이다.

지금은 계절이 건기인 가을에 접어들어 온 대지가 바싹바싹 마르고 있지만 이 곳 역시 여름에는 엄청나게 비가 내리기 때문에 땅밑으로 많은 물이 고여있다. 이 곳의 문제는 여름에 엄청나게 쏟아지는 빗물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잡아두고, 또 어떻게 지하수를 개발하고 유효 적절하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도로를 달리는 동안 이곳의 정부당국이 주민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주민들 스스로가 생존을 계속하기 위해 알아서 해결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개인우물이나 펌프가 없으면 정부당국은 공동우물이나 공동펌프장이라도 곳곳에 만들어주어야 한다. 보통 가정집에서는 플라스틱 통으로 수 백m 내지 수 km떨어진, 그 누군가가 조그맣게 파놓은, 물웅덩이에서 물을 담아 머리에 이거나 자전거로 운반해오고 식당이나 여인숙 사람들은 물 배달을 시키고 있는 것 같다. 우리의 가을과 겨울에도 건기로 바싹 마르지 않는가!

어디를 가나 생활의 근간인 물과 전기의 절대부족이 상습화되어 있다. 전기 불이 없는 캄캄한 복도를 밝히고 있는 석유호롱불과 투숙객들의 샤워 물을 데우는 보일러인데 밑에서 나무를 때 물을 데우고 쇠통의 앞에 달려있는 수도꼭지를 열어 바스켓에 더운 물을 받아서 샤워를 한다. 이렇게 손님을 위해 샤워 물을 데워주는 곳도 결코 흔하지 않다.

샤워 물을 데우는 보일러

사우쓰 아프리카, 짐바브웨, 잠비아를 달리는 동안은 주로 야영을 해 왔으나, 먼지구덩이인 이 지역을 달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텐트에서 여인숙(Guest House)으로 숙소를 옮기기로 생각을 바꿨다. 하루 종일 뒤집어 쓴 모래와 진흙먼지가 땀과 뒤범벅이 되어 샤워뿐만 아니라 빨래를 매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엘파마'까지 삐그덕대며 비명을 지를 지경이다. 하지만 나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바꾼 것은 바로 싼 여인숙요금 때문으로 짐바브웨와 잠비아에서 7,8불하던 여인숙 요금이 탄자니아에 들어서자마자 순식간에 3,4불로 상쾌한 추락을 했다. 비록 찬물이지만 룰루랄라 하면서 샤워하고 빨래를 할 수 있어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이제 게스트하우스(Guest House) 투숙은 나의 희망이자 최고의 기쁨이 되었다.

검은 대륙을 달리기 시작하면서 줄 곳 부쉬맨이 되어 숲 속을 전전하던 나는 작전을 확 바꿔 여인숙에서 조금은 인간답게 밤을 보내기로 한다.
최소 7,8불 하던 숙박비가 탄자니아에서는 3,4불이니, 이미 건기에 접어들어 물이 없는 곳에서 럴럴하게 샤워와 빨래를 할 수 있어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물론 샤워기를 포함한 모든 수도꼭지가 말라 비틀어져 있어 물을 퍼다가 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피할 수 없다.)
거의 대부분의 여인숙이 바(Bar)와 함께 있어 뭔가 새롭고 특이한 광경에 광분하는 다양한 부류의 인간군상의 검은 숲을 헤집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상당한 신경전을 불사해야 하지만……


손바닥만한 마을에 장이 섰다.
물건들이라야 조잡한 중국산 싸구려뿐이지만 이 곳 사람들에겐 요긴한 물건들이다. 아직 이른 오전이지만 동네아저씨들은 이미 해장술에 이은 거듭되는 음주로 돌아가고 비틀어지고 후들거린다.

빨간 컵은 옥수수막걸리 잔이고, 칼을 든 아줌마는 자칭, '감자 깎기 달인'이다.

지나는 마을에서 가끔씩 즐거운 삶의 비명을 듣기도 하는데 그것은 바로 매주 한 번씩 서는 장이다. 결코 장다운 장이랄 수 없는 장이지만 수십 리 초원을 걸어 나온 사람들에게 장터는 요긴한 물품구입 뿐만 아니라 소중한 만남의 장인 것이다. 물건들이라야 조잡한 중국산 싸구려 물건들뿐이지만 이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장터의 모퉁이에 있는 식당의 벽에는 상당량의 생고기들이 매달리고 고기 굽는 냄새와 연기가 온 장터에 진동한다. 식당주인아저씨, 손님들, 그리고 물건 파는 아줌마 아저씨들도 아직 이른 오전이지만, 해장술에 이은 본격적인 음주로 혀는 이미 돌아간 지 오래이고 두 다리는 속절없이 꼬이고 접힌다. 장날은 한 마디로 축제일이다.
"에이, 날마다 장날이었으면……"
"정말이지, 그랬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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