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7~07/29
07/07~07/08
아내가 벤츠에 받히다
2009-09-29   박규동

텐트 안에서 바라본 일출이 널어놓은 빨래 사이로 떠 오른다.

날도 좋았고 기분도 좋았다.
자전거를 타고 지구를 향해 출발하는 첫 페달에서 나는 늘 자유를 느낀다.
"자전거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내가 해 주고 싶은 말이다.
자전거에는 이념이 없다. 균형이라는 절대 감각이 필요한 두 바퀴 탈것이다. 자전거타기에서는 오른쪽 왼쪽이 없는 게 아니라 오른쪽 왼쪽을 번갈아 페달을 밟아 가는 절대 균형이 조건이다. 왼쪽으로 넘어질라치면 바로 오른 발을 밟아 균형을 가운데로 모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전거는 곧바로 쓰러진다. 오른쪽 왼쪽을 넘나드는 자유가 있다.

봉하마을을 가기 위해 출발 준비를 하는 모습

야영을 하고 아침에 보니 옆집에 연꽃이 예뻤다.

창원은 도로변 조형물도 자전거 관련이라 맘이 편했다.

오늘은 봉하마을에 가는 날이다.
봉하마을에 이념이 있다면 그것은 노무현이라는 전직 대통령의 죽음이 거기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와 같은 또래의 노무현은 언제나 당당하였었다. 그것이 용기로 자라나 그는 대통령까지 컷다. 시대적으로 우리의 정치는 그 동안 너무 완고했었다. 그런 정치적 완고함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키웠다. 봉하마을 초가 집에서 청와대 기와 집까지 그가 갈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서럽게 밀어 준 많은 보통 사람들의 이념이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그를 좌파라고 불렀다. 미디어도 덩달아 그를 좌파로 몰았다. 정치를 모르는 더 많은 보통 사람도 그를 좌파 대통령으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노무현은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인간적이라는 것은 인류 커뮤니티의 보편적 가치이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정치에서는 줏대없는 리더로 찍히기에 딱이다. 높은 나무에 올려놓고 아래에서 흔들어 되는 꼴사나운 5년을 그는 대통령으로 보냈다.
임기 첫해에 그는 "대통령 못 해먹겠다!"고 한 게 시작이 되어 흥분 잘하는 용기로 곳곳에 움추리고 있던 개혁을 시도해 보지만 막히는 게 더 많았었던 같다. 그래서, 격이 떨어진 대통령이라고 반대파는 몰아갔다. 분배우선 정책을 쓰면서 가진 사람으로부터 세금을 뽑아 덜가진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는 데에 이르자 중산층까지 그를 외면하며 그의 인기는 자꾸만 떨어졌다.
북한을 다녀오면서 실리없는 대북지원이 늘어났다. 나도 그때부터 그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상식을 벗어 던지는 그의 용기가 청년시절에는 감동이었지만 대통령으로는 무참해 보일 때가 많았다. 용기와 흥분의 수위조절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왼쪽 편에서 보는 세상과 중간에 서서 보는 세상이 다른 것을 몰랐을리는 없었을 터인데 말이다. 왼쪽 페달을 너무 오래 밟고 있었다. 오른쪽 페달을 밟으면 세상을 배신하였다는 좌파 응원군의 시선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버거운 5년을 청와대에서 보내고 그는 봉하마을로 귀향했다. 귀향하면서 너무 큰 집을 지었던 게 세간의 인심을 돌아서게 한 또다른 단초가 되었다. 그런 인심으로 그는 돈에 얼킨 사건으로 검찰조사를 받았다. 인심은 점점 더 나쁜 쪽으로 그를 몰아갔으니 속이 터졌을 것이다. 터진 속을 간추리기 보다 그는 죽음을 택했다. 부엉이바위에서 절벽 아래로 뛰어내려 노무현은 자살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죽었다는 첫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에 대한 분노를 삭일 수 없었다. "나쁜자식, 지가 뭘 잘 했다고 죽어!"
그의 국민장이 치뤄지고 세상이 조용해질 때까지도 나는 분을 삭이지 못했다.

남해안으로 자전거여행을 떠날 때까지도 나는 노무현의 자살을 용서할 수 없었다.
윤구가 봉하마을에 꼭 들려가고 싶다는 얘기를 듣고부터 나는 페달을 밟을 때마다 노무현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화두가 된 것이다. 페달 끝에 걸린 화두는 남해의 푸른 바람을 타고 내 가슴에 파고들었다.
그래, 그를 용서하고 나도 스스로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봉하마을에 들르자. 나도 그의 입장이 돼 보기로 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사고가 났다 뒤에서 벤츠가 점선을 넘어 자전거를 추월하며 좌회전 하려다가
아내의 트레일러를 올라탄 사고인데 어째서 경찰은 쌍방과실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2억5천만원짜리 이 벤츠의 범퍼를 교체하는데 600만원이라고 했다.


바퀴가 구겨진 만큼 우리의 마음도 구겨졌다.

진북을 출발하여 2km를 가 진동에서 1002번도로를 타고 해안으로 들어섰다.
마산까지는 고개가 연속으로 나타나는 전형적인 해안도로였다. 마산에서 돼지국밥을 먹었다. 경상도 명물 식단이다. 생각보다 먹을만 하였다. 밥을 먹고 있는 동안에 자전거를 세워둔 바깥에는 지나가던 자전거 매니아 한 분이 정신없이 트레일러를 들여다 본다. 식사를 마치고 조우를 했다. 오토바이 매니아에서 자전거 매니아로 돌아선 지금, 그는 이 트레일러가 꼭 필요하단다. 60대로 보이는 그는 마누라가 잔소리를 하면 트레일러에 보따리 싸갖고 나가서 바닷가에 텐트를 치고 낚시나 하겠다고 한다. 마누라 잔소리 도피에 최적이라고 거품을 문다.
남북으로 길쭉한 마산을 벗어나는데 한 시간이나 걸렸다.

진영까지 뒷바람이 불어 잘 갔다.
진영을 지나 봉하마을로 접어드는 ㅓ자 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던 아내의 자전거 트레일러가 뒤 따르던 고급승용차 벤츠의 앞 바퀴에 깔리면서 바퀴 하나가 완전히 망가지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트레일러 타이어 터지는 소리가 펑하고 순식간에 벤츠가 안내의 트레일러를 올라타고 있었다. 다행이도 정말 다행이도 아내는 다치지 않았다. 자전거도 멀쩡하였다. 뒤 따라가며 사고를 목격한 나는 가슴이 떨려 처음에는 아내가 무사한 것만으로도 벅찼다. 좌회전에서 노란불 주의신호로 바뀌자 벤츠가 좌회전 신호를 따라 가려고 급발진을 한 것이다. 중앙에 표시된 점선을 넘어 죄회전하던 벤츠가 아내 트레일러의 왼쪽 바퀴를 올라 탄 것이다.

밴츠는 사고현장에서 차를 움직이더니 공터에 차를 세웠다. 아내는 자전거를 현장에 눕혀두고 몸을 피했다. 무릎에 약간의 타박상이 있었지만 자전거를 타면 늘 있는 부상이라 큰 걱정은 없었다. 그런데,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벤츠 운전자가 차에서 내리면서 하는 말이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자전거타는 미친 새끼들!"
윤구가 먼저 흥분하였다. "나는 몰라도 어르신에게 그런 쌍소리를 할 수 있느냐?" 타협이 쉽지 않은 분위기였다.

경찰에 신고를 하였다.
한참만에 나타난 경찰은 조사를 다 했으니 경찰서로 오란다. 경찰서가 어디냐고 하니 장유라는 곳에 있는 김해서부경찰서라고 한다. 부서진 트레일러를 끌고 갈 수도 없고 하여 순찰차로 경찰서까지 태워주면 어떠냐고 했더니 다른 순찰업무가 있어서 안된다고 하면서 부서진 트레일러를 진양에 있는 자전거점포까지 실어다 주었다. 봉하마을은 포기하고 일단 자전거점포에 가서 트레일러의 수리를 의뢰했으나 수리가 불가능하다고 하여 대충 난감한 상태가 되었다. 비도 내리고 날은 저물었다.
경찰서 교통조사계라고 하면서 연이어 전화가 온다. "왜, 빨리 오지않느냐, 벤츠 운전자는 벌써 다녀갔다."
어두워진 길을 따라 경찰서를 가기 위해 23km를 달렸다. 부서진 트레일러는 자전거점포에 맡겨놓고서 말이다. 도중에 허기가 져 막 식당 문을 닫으려 하는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밤길이 험했다. 자전거로 가기에는 먼길이기도 하고 길 찾기도 어려워서 경찰서에 전화를 했다. 담당자에게 부탁을 했다. 놀란 아내가 경찰서에 조사까지 받으러 이런 험한 길을 꼭 지금 가야만 합니까?  꼭 그래야 한다면 자전거 타고 가는 우리를 위해 에스콧트라도 해 주십시오. 부탁은 일언지하에 거절되었다. 순찰차는 그런데 쓸 수 없단다. 밤 12시가 다 되어 경찰서에 닿았다.
조사관이라는 박XX 순경이 차분하게 우리의 이야기를 듣는다.
다 듣고난 박 순경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교차로에서 일어난 사고는 모두 쌍방과실입니다. 다만 6:4라든지 7:3으로 과실의 비중을 다룰 뿐입니다. 따라서 벤츠의 앞 밤퍼에 스친 흔적이 있는데 그 범퍼를 새로 갈려면 약 600만 원, 수리 중에 렌트카를 하면 하루에 80만 원 씩 적어도 보름은 부속을 기다려야 하니 여흘만 잡아도 800만원에 합치면 1400만 원이나 됩니다. 자전거 수리비 5만 원을 합쳐서 그것을 7:3으로 나누면 자전거 쪽에서 4~500만 원은 물어야 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박순경의 말에 의하면 벤츠 운전자는 김해의 졸부라고 했다. 사고 경력도 화려하고, 한 술 더 떠서 자신의 보험회사에 전화를 해서 이 사건을 꼭 처리해서 보험이 없는 자전거 주인으로부터 그 돈을 꼭 받아야겠다고 했단다.

"이쯤하면 막가자는 거지요!"
갑자기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기에 소장 검사들과 나누던 대화가 떠 올랐다.
"우리가 만들어 놓으려고 하는 세상이 이런 것입니까?" 내가 박 순경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부자를 싫어해 본 적이 없었다. 벤츠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다 훌륭해 보였고 사회의 지도층으로 수고가 많을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노무현의 고향 마을에서 노무현이 만든 좋은 세상은 박살나고 있었다.
김해의 오른 땅값으로 졸부가 되어 비싼 수입차를 타고 다니며 하는 생각이 고작 그 정도라면 노무현은 실패한 것이다. 거들먹거리는 것 까지는 우리가 봐줄 수 있지만 그 돈으로 남을 해코지 하는 사람은 용서가 안된다.
억울한 사람이 없는 세상은 누가 만들고 지킬 것인가?
경찰은 진실을 관리하는 파수꾼으로 백성이 믿을만 한가?
선진국에서는 고급승용차가 교통규칙을 위반하면 벌금도 보통차보다 몇 배를 더 물린다고 하는데......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신분이나 미래의 출세에만 신경을 썼지, 자전거 교통사고가 급증하고 있는 지금, 교차로에서 자전거 운행방법이나 자동차의 자전거 보호의무 같은 미래형 법안을 만들려는 생각은 어디에도 없단 말인가?
자전거 타는 사람이 자동차에 받혀 사망하는 사람이 년간 수 백 명이나 된다는 통계는 있는데, 그 사고를 줄이려는 노력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으니 우리나라는 믿을만 한가?
보험회사의 이런 파렴치한 행각이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들고 있는데 금융당국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따지고 묻자면 한이 없다.
정말 국회의원 잘 뽑아야겠다. 만들어 달라는 법은 안 만들고 정치타령만 하는 국회의원들 좀 꺼져버렸으면 좋겠다.

박 순경이 소개한 찜질방에 들려 잠을 청하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김해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다!
벤츠는 있고 자전거는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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