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려수도의 풍경에 남해반도가 꽃길이다.
에디터 : 박규동


기상하여 밥을 해 먹고 출발하기까지는 대충 두 시간이 걸린다.
보통 6시에 기상을 하는 것이니 8시 전후로 길을 떠나는 것이다. 부지런히 챙기면서도 여유가 있는 시간이다. 일어나면서 제일 먼저 침낭을 주머니에 쑤셔넣는다. 텐트 안에 있는 짐을 문 앞으로 나른다. 다시 신발을 벗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텐트를 나오면서 메트리스를 하나 걷어서 나온다. 메트리스는 트레일러 옆에 깔아두고 텐트 안에 있던 짐을 메트리스 위로 나른다. 빈 텐트는 아침 햇살에 마르도록 그냥 두고 취사를 한다. 나의 휘발유 스토브에는 압력밥솥으로 밥을 하고, 산장지기님의 휘발유 스토브는 찌개를 끓인다. 10분 안에 취사는 끝나고 뜸을 들인 다음 밥을 먹는다. 된장찌개에 밥은 그대로 입맛을 돋구어 밥을 축낸다. 든든한 아침이야말로 질 좋은 에너지가 될 것이다. 식사가 끝나면 텐트를 접고 설겆이를 한 다음 트레일러에 짐을 싣는다. 사이 사이로 숭융이나 아침 커피도 마신다.
사는 맛이 절로 난다.

마찌님의 말에는 노상 웃음이 실려있다.
타고난 해학이 재치와 눈치로 이웃을 기분 좋게 해 준다. 요정의 피리를 불며 길에 꽃가루를 뿌린다. 그래서 길이 꽃길이 된다. 고된 오르막도 꽃길이 되고, 흐르는 땀방울도 꽃가루가 된다. 마찌님이 뿌린 꽃가루가 한려 곳곳에 날렸다.
3일 동안 아팠던 상처도 바람처럼 날아가 버렸다. 아내의 기분도 최고조이다. 윤구는 주체할 수 없는 힘으로 무리의 앞 뒤를 오가며 한려수도의 풍경에 이야기를 쓴다. 산장지기님 입가에는 웃음이 떠날 날이 없다.
남해반도가 꽃길이다.




잠시 길을 잃었다.
순간적으로 지도를 잘못 읽은 것이다. 1024번도로를 다시 찾았다. 길의 오묘함이 극치다. 어디서부터인지 길에 "한국의 아름다운 길"이라는 안내표지가 붙었다. 길을 잃었던 것조차도 길이었다. 더구나 평지는 없었다. 올라가면 내려가고, 내료가면 다시 올라 가기를 반복한다. 거대한 롤라코스터를 타는 것 같다. 자전거에 트레일러만 없다면 즐기기에 입 벌어지는 길이다.
멀리 보이는 한려수도의 안개낀 풍광은 사람을 기절시킨다. 차라리 기절하는 게 낫겠다!

남해반도의 남쪽 끝에는 다랭이 논으로 이뤄진 자그만 마을이 하나 있다.
가천 다랭이 마을이다. 주변에서 줏어 온 참외만한 돌들로 하나 하나 뚝을 쌓아 크고 작은 논들을 만들어 놓았다. 멀리서 보면 초록 계단이다. 계단따라 가위,바위,보 하면서 폴싹 폴싹 뛰어 내리고 싶었다. 계단은 바다로 떨어졌다.
그 참에도 기절했던 넋이 배고픈 줄 모르고 다시 나댄다.  넋을 차리고 보니 배가 고팠다. 그런데, 어디에도 식당은 없었다.


가천에서 윤구의 친형을 만났다.

자전거 수통에 있는 물까지 털어서 밥을 짓고, 라면을 끓였다.

가천에서 윤구의 친형을 만났다.
출장을 왔다가 가까운 거리라서 들렸단다. 형제 간의 우애가 남달리 살가워 보였다. 형은 차를 몰고 왔다.
배고픈 터에 우리는 가천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작은 언덕에 올라 밥을 해 먹기로 하였다. 물이 모자라긴 하였지만 자전거 수통에 있는 물까지 털어서 밥을 짓고, 라면을 끓였다. 꿀맛이었다. 윤구의 형도 참을 함께 때웠다.
오늘은 사천까지 가기로 한 날이었으나 어찌 낮잠을 미룰 수 있겠느냐! 하면서 중촌마을 정자에서 석 잠을 잤다.

남면에서 1024번을 타고 북동진하여 삼동에서 창선교를 건넜다.
남해반도와 창선도를 건너는 창선교 아래에는 해협의 물줄기를 따라 말뚝을 박고 그물을 처 고기를 잡는 죽방림이 있었다. ㅅ자 형으로 여러 개의 말뚝을 박고 그 꼭지점 안에 그물을 쳐서 고기를 가두는 전통 고기잡이다.





말뚝을 박고 그물을 처 고기를 잡는 죽방림이 있었다.

창선교를 건너서 얼마를 갔던가 길 가에서 참외를 파는 델 들렸다.
목도 마르고 쉬어가고 싶기도 했다. 한 상자에 1만원이란다. 우리는 반 상자만 있어도 충분할 것 같아 반만 달라고 흥정을 하였다. 반은 팔지 않는단다. 우째 이런 일이! 그렇지만 약간씩 흠이 있는 걸 그냥 먹으라고 내준다. 얻은 참외를 먹고 있는데 과일파는 사람들이 자전거 타고 어디서부터 시작 했느냐는 이야기 끝에 우리가 무림리에서 출발했다고 하니 그들 부부가 깜짝 놀란다. 왜냐고 물어보니 무림리 입구에서 참외를 파시는 분이 언니네라고 한다. 세상에 이런 일이! 반갑다고 인사를 하고 떠나려고 하는데 그들 부부가 사과를 한 보따리 싸 준다. 아내와 마찌님이 사과를 좋아 한댔지! 고맙다고 하니 가서 무림리에서 많이 팔아 주란다. 고마워요!

77번도로로 북진하였다.
어스름해서 창선-삼천포대교까지 오게 되었다. 교량과 연육교를 합쳐 3.1km나 되는 긴 다리이다. 나는 처음 오는 곳이지만 산장지기님이 예전에 다녀간 곳이라고 기억을 했다. 다리 초입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공원이 형성돼 있고 횟집도 여럿이 보였다. 오늘은 여기서 자자.
방파제 바로 옆에 텐트를 쳤다. 공중화장실에서 호스로 샤워를 하고 수산물공판장에서 회를 샀다. 5만 원어치에 배가 불렀다. 소주와 맥주를 말아서 마셨다. 말복 날에 몸보신을 한 것이다.
산장지기님과 마찌님이 몰고온 꽃바람이 밤새 방파제를 춤추게 했다.

오늘은 꽃길 64km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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