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마을, "우째, 차가 읎~오?"
에디터 : 박규동

목사님은 비가 오는데 어딜 가느냐며 하루 더 쉬었다가 가라고...

아침밥을 지어 먹고 회천서부교회를 막 나서려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목사님은 비가 오는데 어딜 가느냐며 하루 더 쉬었다가 가라고 우리를 붙잡는다. 이 정도의 비는 우리에게 냉각수를 뿌려주는 것 같은 효과가 있다. 하늘을 보아하니 큰 비는 내리지 않을 것 같아 출발을 서두는데 윤구의 자전거가 펑크가 났다. 얼른 튜브를 갈아 끼우고는 회천을 떠났다. 목사님 내외분의 평안을 기도하면서!

바다를 따라가는 해안도로는 길이 ㅆ처럼 파도를 쳤다.
해안도로의 특징 중에 하나는 평지가 거의 없다는 거다. 오르막이 아니면 내리막이다.
유일한 평지가 방조제같은 길이다. 산악지형이 바다와 맞 닿는 데까지 발달한 우리나라의 해안은 길을 만들기 위해 고개를 수 없이 넘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계곡과 계곡에 자라잡은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이 산을 넘어야 했던 것이다. 크고 작은 고개를 무수히 넘었다. 오르막 길은 트레일러를 달고 가는 자전거여행자들에게 인내와 체력을 요구한다. 인내심이 없으면 아예 여행을 떠나지 말 일이지 왜 나섰는냐 하면서 나를 나무라는 것 같다. 입에서 단내가 난다. 단내가 지나치면 쓴맛이 된다. 소태처럼 쓴 맛이 입 안에 가득 퍼진다. 어떨 땐 그 소태 맛이  인생 전체를 쓰게 물들인다. 그 쓴맛이 인생을 알게 하는 인내의 맛인 걸 배우는 기회다.

크고 작은 고개를 무수히 넘었다. 입에서 단내가 난다.


신선도에서나 볼 그런 경지가 이런 것일 거다. 한참이 태평이었다.

득량만방조제를 건너면서 평지를 5km 가량 달렸다.
평지에서 조금 빨라진 속도에 바람이 일었다. 고마운 바람이다.
드디어 고흥반도에 들어섰다.
우주센타가 있는 외나로도로 가는 길이다. 77번을 타고 오다가 대서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나면 지나는 길에 마을 정자를 찾아 가 낮잠을 자는 게 좋았다. 더위도 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마을 어귀를 돌아 나오는데 그럴듯한 정자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눈치볼 사이도 없이 대뜸 정자 안으로 들어 갔다. 한눈에 이 정자는 마을 노인들의 소일하는 장소라는 걸 알았다. 목침에 담요와 화투까지 있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고스톱 한번 하자라는 말이 났다. 화투판을 벌리고 있는데 마을 노인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화투판에 훈수를 드는 분에 자전거여행에 관해 궁금한 걸 물어오는 노인들과 천진난만하게 어울렸다. 신선도에서나 볼 그런 경지가 이런 것일 거다. 한참이 태평이었다. 즐거웠다. 나는 잃고 아내는 조금 땄다.

77번과 15번 도로가 겹쳐지면서 고흥으로 가는 길이 편해졌다.
오늘은 고흥까지 가기로 한 날이었지만 윤구가 아는 집이 있다고 하여 거기까지 가기로 하였다. 윤구가 인천에서 사귄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의 고향에 어머님이 홀로 사신다고 하여 그 곳에서 하룻밤 묵기로 한 것이다. 고흥을 통과하고 포두를 지나면서 저녁 때가 되었다. 15번도로를 남으로 곧장가면 외나로도 우주센타에 닿는다. 포두를 지나 고개가 나타났다. 고개 꼭대기에서 우회전하여 855번도로를 접어들어 3km가량을 더 가니 도화면 황산마을이 있었다. 오늘 우리가 머물 곳이다.


"우째, 차가 읎~오?"

"우째, 차가 읎~오?"
자전거를 타고 들어 선 윤구를 보더니 할머니가 하도 안쓰러워 내민 첫 마디였다. 차가 없어서 자전거를 타고 인천애서 그 먼길을 왔느냐고 하는 말이었다.
남도 말에는 정이 묻어났다. 말의 억양을 타고 사람의 정감이 건너지는 것이다. 사투리 중에서도 전라도 말에는 정감을 담는 그릇이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억양에 따라 같은 말이라도 수만 가지 정표가 오가는 것이다.
할머니는 고흥식 전라도 음식을 저녁으로 만들어 주셨다. 집에서 가족들과 늘 해 먹던 그런 반찬에 밥이었다. 조미료 하나 없는 음식은 사투리처럼 착하고 맛있었다.
비를 피해 자전거는 마당 한 켠에 있는 비닐하우스에 넣었다. 샤워를 하고 밀린 빨래도 하였다. 포두에서 사 온 수박으로 후식을 하고 마당에 나오니 하늘에 달이 떴다. 달 아래로 구름이 흘렀다.

할머니는 우리를 남겨두고 이웃으로 잠마실을 갔다.
손자의 담임이었던 윤구에게 할머니는 "선생님"으로서의 예우를 다 하셨다. 호들갑스럽지 않게 그러면서도 부담을 주지도 않았다.

외나로도의 우주센타!
며칠 후면 우리의 첫 위성로켓을 발사하는 곳이 고흥반도의 남쪽 끝 외나로도에 있는 우주센타이다. 내 살아 생전에 우리의 기술과 힘으로 우리 땅에서 우주선을 쏘아 올릴 수 있다니 정말 가슴이 두근 거린다. 내일이면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외나로도에 갈 것이고 먼발치에서 로켓의 그림자라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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