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에 새로운 동행을 만나다.
2011-08-16   박규동

1996년 10월 21일(月)     야영. 쉼터(눌라보(Nullarbor) 37km후방)
                      야영 → 눌라보 → 야영(눌라보 36km후)
 
06:45 11℃ 맑음 북동풍중약 아침식사 우거지국,밥,짱아치,햄,야채,계란후라이
07:05 야영지에서 출발
08:10 휴식 23℃ 맑음 북동풍중
09:05 휴식 비스켓,치즈,콜라 28℃ 맑음 북동풍중강
10:05 휴식 30℃ 맑음 북동풍강
11:05-12:28 간식 도로옆 눌라보5km전 햄버거,콜라,녹차 33℃ 맑음 북동풍강
13:00-13:55 눌라보(Nullarbor) 점심식사 및 물품구입 구입품 스테이크샌드위치6개 커피우유2개$36.60 물3ℓ 커피우유2개 오렌지4개 사과2개 콜라1.25ℓ 환타1.25ℓ $17.40
14:45 휴식 콜라 34℃ 맑음 남동풍중강
15:40-15:55 휴식 오렌지 32℃ 맑음 남동풍중강
16:25 휴식 커피우유 31℃ 맑음 남동풍중
17:10 휴식 환타 29℃ 맑음 남동풍중강
18:00 휴식 29℃ 맑음 남동풍중약
18:55 쉼터에서 야영 눌라보 36km후 남위:31°21.9′동경:131°16.0′
저녁식사 미역국,밥,햄,짱아치,계란후라이,야채
 
최고속도 18.8
평균속도 9.7
운행시간 8.29.13
주행거리 83.15
누적거리 4450.1


아침부터 북풍이 불었다. 더운 바람을 몰고 오는 북쪽 바람!
어제는 추워서 자켓을 입었다가 벗었다가 했는데 오늘은 무척 덥다. 어제는 남극 오늘은 적도, 그런 셈이다.
 
점심 때 눌라보 서비스 스테이션을 지나왔다. 스낵 바에 들르자마자 차가운 커피우유 600ml짜리 하나와 스테이크 샌드위치를 하나씩 먹었다. 한 시간가량 휴식을 취한 후 냉방시설이 된 식당에서 밖으로 나오니 눌라보 평원 한가운데의 더위가 와락 느껴진다.
마실 물과 음료수, 쥬스, 내일 먹을 샌드위치를 사서 눌라보를 14시에 출발 37km를 더 와서 쉼터에서 야영하다.

지구에서 눌라보처럼 나무 한 그루없이 평평한 땅은 더 찾을 수 없다. 이 곳에서는 누구나 지구인이 된다. 우주인들과 만날 수 있는 곳도, 시인이 되거나 탐험가가 되거나 하는 곳도 이곳 눌라보 뿐이다.

낙타, 웜뱃, 캥거루를 주의하라는 표지판


지구인이 화성에 패스파인더를 굴리며 탐사를 했듯이 어느 우주인이 UFO를 타고 와서 육상이동용으로 사용했을지 모르는 오래된 수레가 눌라보 한 가운데 버려져 있다.

눌라보 파리 떼들이 극성스럽게 덤벼들어 얼굴에 모기장을 쓰고 운행하였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인지 몰라도 흡혈 파리 떼가 나타나서 온 몸에 침을 쏜다. 침이 어찌나 강한지 얇은 옷은 뚫고 들어온다. 어두워질 때까지 파리와의 전쟁이었다.
어두워지면서 다시 모기와의 전쟁, 그래서 더위를 무릅쓰고 모깃불을 피웠다.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나서 탁자에 밥상을 차리는데 그 사이에 벌써 독거미 한 마리가 나타나서 자전거와 자전거 사이에 거미줄을 쳐 놓은 것이 아닌가. 호주에서 야생동물에 희생되는 사망사고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 독거미에 의한 것이라고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참으로 조심스럽다.
흡혈파리의 공격성 또한 대단하여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스트레스를 받게 한다. 숫자가 많다면 아마 사람도 당할지 모르겠다. 파리 떼의 공격에 쫓기면서, 한편 해질 무렵의 약간 시원한 틈을 이용하느라 저녁 18시 까지 운행하였다.

야영지를 모처럼 탁자가 있는 쉼터에 잡았다.
낮에는 더위 때문에 장시간 쉬느라고 운행이 늦었다. 18시경에 야영을 하고 어두워져서 저녁식사를 준비하였다. 그러다 보니 달빛 아래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일부러 조명등도 켜지 않았다. 모깃불이 연기를 사르며 추억을 태운다. 달빛이 썩 괜찮은 밤이다. 이런 때가 언제 있었던가? 얼마 만이란 말인가! 
주변에는 풀벌레들의 합창이 들려 온다. 우리나라의 어느 산 자락에서 느끼는 밤 경치와 흡사하다. 바람도 잠들고 눌라보의 밤은 고향처럼 잦아든다. 창민이 대장이 녹차를 한잔 끓여 준다. 맑은 가슴으로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이곳 눌라보에 동화되어 간다.
눌라보의 달밤이다!


도중에 하이웨이로부터 13km 가량 남쪽으로 들어가면, 해안절벽 아래에 고래를 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누군가 얘기를 해 주었는데 거리가 너무 멀어서 들르지 않았다. 어제와 그저께 이틀은 눌라보 국립공원 안에서 야영하였고 오늘은 얄라타 원주민 구역 안에서 야영하게 되었다.

더위와 맞바람 때문에 오늘은 약 70km 밖에 주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틀이 더 지연될 것 같다. 앞으로 4일에 나머지 260km, 넉넉하게 여유를 갖고 가야겠다.
 
눌라보를 자전거로 횡단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일 년에 일곱 여덟 명 가량은 퍼스에서 출발하여 눌라보를 거쳐 시드니나 멜번으로 이어지는 횡단을 하는 모양이다. 가이드 회사에서 차량지원을 받아 가며 하는 단거리 외에 지원없이 한 두 명이 따로 하는 경우도 가끔 있나 보다.
가장 많은 수가 일본인이라고 한다. 영국인, 독일인, 캐나다 사람, 그러나 한국 사람은 우리가 처음이란다. 한국의 축구는 꽤 알려져 있지만 탐험에 대한 소문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인지, 만나는 사람들이 퍽 흥미롭게 얘기를 건네 온다. 특히 트레일러를 이용한 장거리 원정 스타일은 이곳에서도 우리가 처음이라서 자전거에 관심있는 호주 인들의 질문을 많이 받았다.
아마 트레일러 운행 스타일이 유행하지 않을까 모르겠다. 우리나라에도 소개하고 유행을 시켜야겠다.

눌라보 진입 이래로 빨래를 하지 못해서 벗어 놓았던 헌 옷과 양말을 다시 입고 또 입고 한다. 그래도 빨래한 옷을 새로 입은 것처럼 그렇게 기분이 좋아진다.


40℃가 넘게 더운 날은 우선 머리가 멍해진다. 땀은 흘리자마자 말라 버리기 때문에 느끼지 못하지만 음료수를 마시고 마셔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발은 뜨거운 모래찜질 하듯이 덥고 갑갑하며 안장 엉덩이 부근은 불이 날 지경이다.
입을 벌리면 다소 시원하여지긴 하는데 바로 입 안이 건조해지며 목이 말라서 물을 찾게 되기 때문에 입을 꼭 다물고 코로만 숨을 쉰다.
코로만 숨을 쉬다 보면 콧구멍과 인중부근이 호흡하는 열기로 더 달아오르고 지나치면 열꽃 같은 부스럼이 생긴다. 30분 가고 30분 쉬어야 할 정도다. 체온을 식힌 다음에 출발해야 한다.
눌라보에서는 나무 그늘조차 찾기가 어려워 체온을 식히는 일 또한 쉽지 않다. 모든 걸 몸으로 부닥치며 해결해야 할 뿐이다.

오늘은 오후에 남풍이 바꿔 불어 주어서 다소 열기가 식긴 하였지만 해가 저물고 나서도 한참 동안 대지가 식지 않고 있다. 아마 밤 늦게 남풍이 더 몰려 올 것 같다.
나무 그늘 한 평이 얼마나 고마웠었는지!

눌라보 한복판 멀리 보이는 곳에 먼지를 일으키며 대형 덤프트럭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장면을 보았다. 지하의 광석을 실어 올리는 광산이란다. 그들은 지금 광산 구덩이에서 깊게 깊게 묻혀있던 지구의 추억을 캐내고 있다. 어쩌면 지구의 추억과 미래를 한꺼번에 파 내어서 현재를 다듬질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1996년 10월 22일(火)     눈드루(Nundroo) 모텔 #8
                     야영 - 얄라타 - 눈드루
 
아침식사 스테이크샌드위치,스프
06:30 캠프지에서 출발 14℃ 맑음 동풍중
07:25 휴식 환타 20℃ 맑음 북동풍중약
08:25 휴식 비스켓,치즈 24℃ 맑음 북동풍약
09:25 휴식 사과 27.5℃ 맑음 북동풍약
10:30 휴식 31℃ 맑음 북동풍중약
11:45-12:40 식사 트럭쉼터 얄라타 11km전 스테이크샌드위치,콜라 자전거여행을 하는 영국인 팀 베일리씨를 만남
13:00-14:05 얄라타(Yalata)식사 스테이크샌드위치,커피우유 물 3ℓ 콜라 1.25ℓ 커피우유 4개 오렌지 2개 스테이크샌드위치 4개 $35.90
14:55 휴식 38℃ 맑음 북풍중약
15:55 휴식 41℃ 맑음 북풍약
16:50-17:10 식사 도로옆 눈두루 17km전 스테이크샌드위치
17:55 휴식 콜라 35℃ 맑음 북풍약
18:55 눈두루(Nundroo)도착(영업시간 7:00-22:00) 모텔 남위:31°47.5′ 동경:132°13.6′
저녁식사 된장국,밥,햄,야채,짱아치 구입품 물1.5ℓ $4.00 파워에이드2개 $4.80 스테이크샌드위치2개 파워에이드3개 오렌지쥬스3개 $26.50

최고속도 36.4
평균속도 12.8
운행시간 8.40.46
주행거리 111.45
누적거리 4561.6


북풍의 더위에 쫓기고, 흡혈파리에 쫓겨 얄라타를 지나서 눈드루까지 110km나 도망치듯이 달려왔다. 
그곳을 피해 달아나면 더위도 파리도 피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몹시 더운 날씨인데도 흡혈파리의 침에 찔리지 않으려고 두꺼운 파일바지, 파일 셔츠를 입었다. 41도까지 올라 가는 더위와의 싸움은 그렇다 치고 어쩌다 파리한테 쫓기는 신세까지 되었는가?
실소라고 했는가, 헛 웃음이 절로 나올 따름이다.

얄라타는 원주민 보호구역이라 원주민들이 로드하우스도 경영하고 고래 구경하는 곳에 입장료도 받고 한다. 자치가 되고 자립과 자각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로드하우스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에 원주민 네 명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우리 일정에 대해서 묻고, 원주민들을 다른 지역에서 만난 적이 있느냐고 묻고, 대답하고 그랬다. 사진을 함께 찍고 싶었는데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릴까 봐 부탁하지 않았다.

새롭게 만난 영국인 자전거 여행가 팀 베일리


11시,도로변 쉼터에서 휴식을 하고 있는데 영국 젊은이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우릴 보고 찾아와서 반가운 인사를 했다. 진정한 자전거 꾼을 만난 것이다. 자전거 얘기가 한참 오갔다. 신나는 자전거 얘기. 제일 많은 얘기는 물론 더위와 바람이다. 그도 눈드루까지 와서 카라반파크에서 함께 야영했다. 그는 에들레이드를 거쳐 시드니로 간다고 했다. 며칠 간이긴 해도 동행이 생긴 셈이다.

또 10시경에는 일본 젊은 친구,남녀가 차를 타고 가다가 우리가 일본사람인 줄 알았다면서, 멈추고는 쥬스를 한 캔 씩 주고 갔다. 서양 사회에 오면 백인들 보다 일본인들이 더 반가운 것은 왜일까? 눌라보에서는 국제 우정이 건강하고 밝게 자연 발생적으로 생기는 모양이다.
창민이 대장이 그들과 쥬스를 건네 받고 나서 일본어로 젊은 세대들의 새로운 얘기를 많이도 나눈다.

자동차로 여행하며 우리에게 차가운 주스 하나를 건네려고 기다려준 일본 친구들.
둘은 여행을 하기 위해 함께 만나서 자동차를 빌려 호주 횡단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눌라보 대평원은 이제 모두 지나온 것 같다. 오늘부터는 구릉을 넘고 넘는다. 주변에 가득가득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눈드루에는 밀밭도 있고 농가에는 사람 사는 모습이 나타난다. 정말 반갑다. 150km 남았다. 내일 페농에서 자고 모래는 세두나로 들어간다.
넓은 호주대륙!

석양이 아름답게 비치는 눌라보 평원을 뒤로 바라보면서 우리 부자는 열심히 페달을 밟아 눈두르 로드하우스로 들어섰다. 그림자는 길게 드리워져서 우리보다 앞에 가고 있었고 누렇게 익은 밀밭은 금빛 물결이 바람 따라 일렁이고 있었다. 참 좋은 기분이었다. 언제 또 다시 이런 행운을 만들 수 있을까? 아들 셋을 나란히 하고 이렇게 멋진 여행을 할 수 있다니!
창민이 대장이 대견스럽고 아들들이 자랑스럽다!


이제부터는 더 이상 인연을 짓지 말고 살아야겠다.
어차피 지었던 인연도 서서히 헐어가야겠다. 전생에 연이 닿아 이승에서 만났으나 내생에 다시 인연을 이을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지구별을 떠나면 어느 별에서 기다리고 있을 나의 이미지들과의 연은 어떻게 되어갈까?
윤회의 바퀴는 끝이 없다.
자전거 바퀴도 끝없이 굴러가고 있다.
앞바퀴, 뒷바퀴, 윤회의 바퀴, 그 운명의 바퀴는 누가 굴리고 있을까?
 
빗물 탱크도 없는 눈드루. 몇 조각 남은 고추짱아치와 깻잎,

구름아!
끝나는 날까지 함께 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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