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5~09/16
48도 더위와 싸운 후 맞은 마지막 날
2011-08-22   박규동

1996년 10월 23일(水)     페농(Penong) 호텔 #5
                     눈두루 → 페농

아침식사 스테이크샌드위치,스프
06:50 눈두루에서 출발 16℃ 맑음 바람없음
08:00 휴식 26℃ 맑음 북풍중
08:50 휴식 비스켓,치즈 30℃ 맑음 북풍강
09:45 휴식 33℃ 맑음 북풍강
10:40 휴식 36℃ 맑음 북풍강
11:45-12:10 식사 도로옆 페농 32km전 스테이크샌드위치,녹차
12:52 휴식 39℃ 맑음 북풍강
13:52 휴식 40℃ 맑음 북풍강
14:35-15:25 식사 쉼터 페농 15km전 스테이크샌드위치,녹차 42℃ 맑음 북풍강
15:55 휴식 48℃ 맑음 북풍강
16:50 페농(Penong)도착 간식 테이크어웨이 식당 (24시간 영업) 커피우유, 셀러드샌드위치 간식비$8.50
호텔 남위:31°55.8′ 동경:133°00.7′
숙박비 $35.00 물품구입 물6ℓ $12.00 저녁식사 티본스테이크,콜라 식사비 $25.50 

최고속도 31.9
평균속도 11.1
운행시간 7.25.02
주행거리 82.62
누적거리 4644.2


16시경에 48℃.
상상할 수 있는 더위를 모두 동원해도 오늘의 이 지경을 설명할 수 없겠다. 더위에 따라 더 기승을 부리는 파리 떼, 준비된 물과 음료수, 쥬스를 모두 다 마시고, 17시경에 페농에 도착하여 호텔에 들었다. 찬물로 샤워를 하고 몸을 식힌 다음 시원한 맥주도 한잔 했다. 에어컨이 있는 방에 누워 몸을 식히길 두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정신이 돌아온 것 같다.

눌라보 마지막 구간 내일 단 하루를 남겨 놓았다. 영국 친구 팀도 호텔에 함께 묵었다.
팀이 말하길 "오늘은 수통의 물로 커피도 만들 수 있겠다"고 한다.

오늘 저녁은 편안하고 넉넉하게 보내야 겠다.
더위로 머리가 열을 받아서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대장정의 끝이 내일인데도 별다른 느낌도 생기지 않고 멍하니 그런 날이다. 연일 사막더위에 지친 것이다.

아침에는 춥지만 낮에는 48도까지 오르는 더위와 싸워야 했다.

전체 주행거리 약 4,800km. 운행일수 58일.
숱한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고 나눈 악수. 손짓으로 주고 받는 보디 랭기지. 유클라에서 목격한 UFO의 잔영, 물과 바람, 더위와 파리 떼, 자전거 타이어 때문에 애태웠던 일, 로드트레인이 옆을 스칠 때마다 창민이 대장에 대한 걱정. 야영지를 찾아 해메야 했던 숱한 저녁.
폭풍우 속에 지낸 뉴사우스웨일즈에서의 고약했던 밤, 정말 잊지 못할 쿠남블 사람들의 인심. 페달을 몇 바퀴나 돌렸을까? 길에서 매일 보았던 캥거루와 야생동물들의 시체, 200km가 넘게 마을이 없는 구간을 통과하면서 배우게 된 자연의 섭리에 대한 지혜, 추워서 잠 못 이루던 밤, 왜 그리 달은 밝은지!
그러나 언제나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정석대로 할 수 있기를 바랬고, 그렇게 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우정을 다했고 쓰레기 하나 버리지 않고 풀 한 포기 다치지 않았다. 그 오천 킬로미터가 이제 막을 내리기 시작 한 것이다. 

도로의 표면은 직경 1cm 즘 되는 작은 돌멩이로 덮혀 있다. 태양열로 인해 녹아 내리는 아스콘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 자전거 타기에는 우툴두툴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기분이다 .

팀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TV에서 한국 학생들 전투하듯이 데모하는 것 보았다기에 좋은 학생들이라고 응수했더니 영국 학생들은 맥주만 마신다고 한다. 데모하는 학생, 맥주 마시는 학생 그들 모두가 다 이 지구를 이끌고 갈 다음 세대들 아닌가!

튜브로 싸맨 트레일러 타이어는 아직도 쓸 만하고 오늘 더위로 또 하나의 타이어가 실밥이 나오도록 닳았기에 접착 테이프로 덧 씌었다. 내일 하루만 잘 견뎌 주면 좋겠다.

이렇게 더운 날인데도, 바에서 만난 이 곳 사람들은 오늘은 그저 따뜻한 날일 뿐 뜨거운 날은 아니라고 농담을 한다. 50℃가 넘는 날도 있다고 하니, 아웃백에 사는 주민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파리 떼를 어떻게 대하고 지내는지 모르겠다.

페농은 지난번에 세두나에서 오려다가 되 돌아간 곳이다. 그 후 무려 24일만에 도착하였으니 어찌보면 참으로 먼 곳이 된 셈이다. 퍼스에서 동쪽으로 세두나에 이르는 제2구간 계획은 참 잘 된 것 같다. 눌라보 횡단을 최종 목표로 잡았으며, 3주일이 지난 지금의 더운 날씨가 눌라보의 혹독함을 더 잘 보여 주는 것 같아서 말이다.

페농은 밀밭이 들어서 있다. 경작면적이 꽤나 넓게 분포되어 있고 농가가 자주 보인다. 누렇게 익어가는 밀밭 풍경이 풍차와 어울려 목가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사막이 끝난 것이다!

타이어 사정이 정말 어려웠다. 테이프로 이리저리 싸매고 왔지만 도착할 때에는 너덜너덜 한 것이 참담한 모습이다
 

1996년 10월 24일(木)  <운행 마지막 날>    세두나 카라반파크 캐빈 #10
                       페농 → 세두나

아침식사 테이크샌드위치,커피 식사비 $13.00
구입품 스테이크샌드위치4개 콜라1.25ℓ 리프트1.25ℓ 초코우유2개 $30.00
06:50 페농에서 출발
07:50 휴식 23℃ 구름 남동풍약
08:55 휴식 오렌지쥬스 21℃ 구름 남동풍중
09:45-10:00 식사 트럭쉼터 세두나 44km전 스테이크샌드위치,콜라
10:55 휴식 22.5℃ 구름 남풍약
13:30 휴식 초코우유 22.5℃ 비 남풍중
14:30-14:45 박창민 트레일러 타이어 펑크 수리 후 출발 17℃ 비 남풍중강
15:40 세두나(Ceduna)도착 카라반파크 캐빈

최고속도 21.9
평균속도 10.2
운행시간 7.36.25
주행거리 77.71
누적거리 4721.9


실밥이 다 닳고 튜브가 삐쳐 나온 또 다른 트레일러 타이어가 도중에 펑크 되었다. 타이어 안 쪽으로 우유팩 종이를 잘라 넣어 팻치로 보강하고 겉으로는 테이프로 붕대를 감았으나, 세두나 10km 전방에서 또 펑크 되었다. 비바람을 맞아 가며 수리하였으나 계속해서 실바람이 샌다. 1km마다 다시 바람을 펌프로 넣고 또 넣고 하면서 세두나까지 들어왔다. 타이어 3개는 반창고 투성이다.

남쪽에서 맞바람이 사람을 날려보낼 듯 불어오고, 또 다른 이 쪽에서는 타이어에 바람을 펌프질하느라 애를 태운다. 그래 오늘 하루의 모든 것이 바람인 게야. 바람!

하얗게 바랜 트레일러의 캔바스 천, 초록색에서 누런 색으로 탈색되어진 파일셔츠, 하늘도 바래고, 바람도 바래고, 마음도 이렇게 바래지 않았을까?
속이 들여다 보이도록 바래고, 그렇게 맑게 바래져서 서울에 돌아갔으면 좋겠다. 바래진 마음을 다시 채우는 것이다. 사랑을 채우고 겸허를 채우고 꿈을 채웠으면 좋겠다. 나비 꿈.

15시 30분,
세두나 도착. 남동풍이 강하게 불고 있다. 세두나를 7km 남겨 두고는 1시간이나 걸려 도착되었다. 다 끝났다는 즐겁고, 흥겨운 마음을 비바람과 타이어 펑크가 다 앗아 가 버린 것 같다.

세두나=바람×(일기불순)2+타이어 펑크

세두나 바닷가로 가는 길
너덜해진 트레일러 타이어를 끌고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이미 완성된 것이다.
지난 8월 22일에 호주의 동쪽 끝 남태평양의 넛지비치에서 자전거로 대륙횡단을 해야겠다고 창민이 대장과 제 1구간 출정식을 갖은 다음, 37일이 걸려서 9월 27일에 세두나 도착하였었다. 다시 제 2구간을 서쪽 끝, 인도양의 퍼스 시티비치에서 출발. 10월 2일부터 오늘까지 23일 만에 세두나에 도착한 것이다.
운행일수 총 64일 운행거리 4,722km를 자전거로 달린 것이다. 뒤에는 꼬리짐차 트레일러를 달고서.

캐빈을 빌려 여장을 풀고는 남대양으로 벼락처럼 달려가서 바닷물에 얼굴을 씻었다. 얼굴에 묻은 바닷물을 바람이 다시 씻어 낸다. 정신이 번쩍 맑아진다. 씻을 수록 더 각인되어 파고 드는 눌라보의 추억, 더 생생하게 기억되는 고마운 사람들의 우정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파도를 타고 출렁인다.

저녁에 인사차 들린 팀에게 내가 사용하던 모기장을 선물로 주었다. 값 나가는 물건은 아니지만 도중에 구할 수 없기 때문에 그에게는 꼭 필요한 물건이 되었을 것이다. 팀이 계획한 구간을 완주하기 바란다.

해변에서 돌아오는 길에 여행자 센타와 백패커 숙소에 들렸다. 내일 브리즈번으로 떠나는 버스편을 예약하고 그 동안 다녀간 눌라보 대평원 자전거 도전자들의 메모를 읽어보았다.
모두 한결같이 "I never do again Nullarbor!"라고 써 놓았다.
그렇다. 나도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36시간 버스를 타고 다시 찾은 브리즈번

여행 후기

10월27일(일) 브리즈번 YHA유스호스텔.
25일에 세두나를 출발하여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3일 밤낮을 달려서 다시 브리즈번으로 돌아 왔다.

세두나를 출발 포트오거스타를 거쳐 에들레이드에서 버스를 바꿔타고, 얀타 (얀타에서는 지난번에 고맙게 해 준 주유소에 들려 인사를 했다) 브로큰힐, 윌카니아, 코바, 두보(Dubbo), 탬워스(Tamworth), 글랜인스(Glen innes), 와윅(Warwick), 그리고 그레이트디바이딩산맥을 넘어 브리즈번에 도착하였다.
고향처럼 다시 찾아 간 곳은 전에 묵었던 YHA 유스호스텔. 그 곳에 여장을 풀고서 귀국 준비를 하였다.

"대장! 힘 들었지?" 아버지가 할 수있는 마지막 칭찬이다.
"아버지가 더 힘드셨지요"
"고맙다!"
"아버지 정말 대단하세요!"
유스호스텔 식당에서 아들과 칭찬을 주고 받으며 된장배추국을 끓인다.

코닥크롬 슬라이드 필름 40통을 브리즈번의 어떤 쇼핑몰에 있는 코닥 대리점에 맡겼다. 5일 후에 찾으러 오라고 한다. 멜번에서 현상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비용은 약 40만원. 닷새 후가 되는 11월 1일에 필름을 찾기로 하였다. 코닥크롬 필름은 우리 나라에서 현상이 되지 않는다.
호스텔로 돌아 오는 길에 뉴질랜드항공에 들려서 3일 오전9시30분 서울행 NZ081편을 예약하였다.

호주 신문에 실린 여행 기사
창민이 친구의 집으로 신문을 보내달라고 기자에게 부탁했더니 브리즈번에 도착해 있었다.

11월 1일에 필름을 찾았다.
계산을 하려고 하니 여자 점원이 "이 코닥크롬 필름은 판매 시에 이미 현상료를 합산해서 받았기 때문에 추가비용은 필요 없다"고 하면서 돈을 돌려 주었다. 이 필름도 공항 면세점에서 40%나 싸게 구입한 것인데 말이다. 호주 인들의 정직성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필름 한 통이 분실되어서 수소문 해 보니 그 필름이 시드니로 잘못 배달되었다고 하였다.
코닥크롬의 현상은 호주에서도 멜번 한 군데에서만 한다고 한다.
그래서 서울 주소를 적어주고 왔더니 그 나머지 필름이 10일 후에 정확하게 서울 집에 도착한 것이 아닌가!

체중이 7Kg 줄어들었고, 허리띠도 한 마디 줄여 입어야 된다. 종아리가 날씬해 진 것 같고, 허벅지와 엉덩이근육이 많이 빠졌다. 순발력을 요하는 속근은 사라지고, 대신 장거리 주행을 위한 유산소운동 체계로 근육이 바꿔진 것 같다. 마지막 며칠간은 숟가락 움직일 힘도 부족했던 때가 있었는데, 그래도 아침에 자전거에 올라 앉으면 페달을 밟을 힘이 모아진 것은 어디서 생긴 힘 일까?

브리즈번 체류 며칠간은 자전거 점에 자전거 수선을 맡기기도 하고, 장비점을 찾아 다니기도 하였다. 아웃도아 전문점 K2 Base Camp에서 만난 K2의 여자 매니저 수잔 도나휴는 기념 티샤츠를 선물로 주었다. 자기도 암벽이랑 MTB를 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일인 냥 기뻐했다.
한국식품의 사장님과 직원들도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뿌듯해 하는걸 보았다. 산꾼들은 어디를 가나 가슴이 따뜻하다. 민족은 어딜 가나 민족이다.

브리즈번 공항을 떠나던 날, 엄청난 짐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자전거 2대, 트레일러 2대, 대형 더플백2개, 자료로 사 모은 서적 등, 그러나 자전거 수송을 무료로 해주는 뉴질랜드항공의 회사방침에 따라 추가비용 지불없이 탑승하게 되었다. 나중에 들은 소식인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서도 자전거 무료운송 방침을 세운 모양이다. 자전거타기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영혼도 불편이 없는 그런 원정이었다. 마음이 육신과 영혼을 오가며 기울인 노력 덕이다. 나를 지켜 주는 영혼은 절대불멸이다. 다만 육신의 거처만 옮겨 다닐 뿐, 무한한 우주 공간에 자유 자재할 것이다. 그 영혼을 위해 기울인 지구 땅 눌라보에서의 노력이 도리어 육신과 마음을 다 편하게 하였으니 존재의 오묘함에 감사 드린다.

11월 3일 저녁에 김포공항에 도착, 둘째 아들 영민이가 마중을 나왔다.
아내가 마중을 하고 싶었는데 자동차의 자리가 부족하여 아이들에게 양보하였다고 한다.
지금, 그 아내와 함께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는 게 있다. 아내와 둘이서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떠나는 것이다. 아들과 며느리의 걱정이 크겠지만 아내는 대 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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