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바람, 폭풍 속에 갇히다.
에디터 : 박규동

1996년 8월 29일(木)     야영. 도로변(콜로레너브라이 55km전)
                        모리 → 야영(콜로레너브라이 55km전)


아침식사 스테이크,오렌지쥬스,식빵
08:00 14℃
08:15박창민 트레일러의 오른쪽 튜브 펑크
08:30모리에서 출발 식품점에서 계란 구입 계란12개 $3.00
09:55 휴식 콜라
10:55휴식 파워바,오렌지
12:00-13:00 점심식사 도로옆 콜로레너브라이90km전방 스테이크,빵,커피,계란후라이
14:00휴식 점심식사후 비
15:00휴식 오렌지쥬스 계속 비
16:20도로옆에서 야영 콜로레너브라이55km전방 폭우로 인해 GPS와 거리계산을 하지 못함.
지도상의 대략 위치 남위:29°27′동경:149°10
저녁식사 육개장, 스테이크, 밥, 짱아치,야채.

모리를 떠나 38번 하이웨이로 접어들었다. 하이웨이라고 하지만 그냥 왕복 2차선의 평범한 시골 도로이다. 오후부터 비가 쏟아져서 콜로레너브라이(Collarenebri) 전방 55km 길 가에서 좀 떨어진 나무 밑에 텐트를 쳤다. 차량도 한 시간에 한 두 대 정도 밖에 다니지 않는 길이다. 풍경은 어제와 같다. 그러나 억수 같이 비가 내렸다. 호주가 물에 잠긴다더니 꼭 그럴 것 같다.

캠프하기 3km 전방에서 외따로 떨어져 있는 이 지역 초등학교를 들렸다. 길 가에 있는 이런 건물은 자주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토요일이라 당직 선생님만 있었다. 학교 선생님을 만나서 비가 오기 때문에 캠프할 곳을 찾는다고 부탁 했다. 혹시 교실이나 창고에서라도 머물 수 있을까 하고 부탁을 했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 교무실로 들어 간 선생님, 남자가 한참 후에 나오더니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거절한다. 그 거절의 예의가 하도 곧아서 더 이상 부탁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도로에는 가끔씩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수위를 나타내는 막대 표지가 서 있다.
아래 사진처럼 갑자기 불어난 홍수를 표시하기 위해서이다.
도로가 이렇게 물에 잠기면 자전거는 어디로 다니란 말인지??


15시 30분에 길 가 커다란 나무아래에 바람을 피해 텐트를 쳤다. 비를 맞아 가며 저녁을 만들어 먹고 텐트에 누웠으나 빗줄기는 점점 거세어지고 잠이 제대로 오지 않는다. 우리가 사용하고있는 2인용 고아텍스로 만들어진 이 텐트는 고산 등반용이라 비가 오는 데는 부적합한 것 같다.
문 앞부분에 캐노피같은 다소의 공간이 있어서 조리할 때에 비를 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커다란 나무 옆에 텐트를 치고는, 자전거를 나무에 기대어 양 편으로 세우고 자전거를 덮으려고 준비해온 방수포를 그 위에 걸쳐서 양쪽을 끈으로 잡아 메고 나니 훌륭하게 비를 피할 수있는 조리실이 되었다.

요리도 몇 가지 기술이 늘었다. 대체로 저녁에는 야채를 약간 넣어 된장국을 끓이고, 흰밥과 서울에서 준비해준 짱아치며 밑반찬에 스테이크를 한 장씩 구워 먹는다. 아침에는 토스트에 계란 후라이와 스테이크를, 낮에는 아침과 같거나 현지에서 사서 먹는다.
스토브(콜맨 피크원)를 피우고 후라이팬을 올려 놓은 다음 바닥이 열을 받으면 버터를 살짝 둘러서 기름칠을 하고 스테이크를 올려 놓는다. 한쪽이 익으면 그것을 반대편으로 돌려 놓으면서 소스를 치고 적당히 구워 내면 스테이크 구이가 된다.
토스트와 계란도 후라이팬에서 바로 구워 낸다. 밥을 짓기가 가장 어렵다. 물이 귀하기 때문에 물을 아끼느라 쌀을 씻지도 않고 바로 냄비에 넣은 체 물을 맞추고 끓인다. 그러다 보면 넘치거나 타거나 해서 2인용 밥 하기가 정말 어려운 걸 안다.

그래도 된장국에 쌀밥을 매일 저녁마다 먹고 나면 소화도 잘 되고 기분이 개운하다. 된장국의 효과를 이해할 것 같다. 된장국을 약 1.5리터 끓여서 나누어 마시면 그 국물이 온 몸으로 스며드는 것이 느껴진다. 문경 댁이 함께 가고 있는 것이다.

설거지물은 0.5리터 가량을 쓴다. 그 물로 우선 야채를 씻고, 다음에 그릇 설거지를 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발을 씻고 버린다. 설거지 통으로는 피크원 스토브의 케이스 뚜껑을 이용하였다.

1996년 8월 30일(金)     콜로레너브라이(Collarenebri) 투헤이모텔(Twohey Hotel & Motel)
                        야영 → 콜로레너브라이


밤새 비,천둥,바람
06:30여전히 비. 신발 안에서 전갈 발견.
아침식사 식빵,계란후라이,육개장 박창민 트레일러 오른쪽 튜브 펑크.
펌프 하나를 분실 비로 인한 혼란으로 중간 내용을 적지 못함.
간식 파워바 3개씩
13:50콜로레너브라이(Collarenebri)도착
투헤이(Twohey)모텔 남위:29°32.7′동경:148°34.7′ 숙박비$55.00
점심식사 끓인밥,짱아치,야채 물품구입 호박 바나나 고기1kg $16.65
저녁식사 스테이크,밥,된장찌개,야채,짱아치

* 이틀간의 내용을 비로 인해 하루에 적음
최고속도24.7
평균속도14.4
운행시간9.59.57
주행거리144.97
누적거리662.

고약하고 끔찍한 밤이었다.
밤새 한 잠도 자지 못하고 꼬박 새웠다. 비, 바람, 천둥, 번개, 지나가는 차량들의 관심과 구경 때문에 비추이는 전조등 불빛, 완전히 습격을 당한 기분이다. 어제 만난 학교 선생님의 말처럼 "아주 예기치 않은 큰 비"가 밤새 내리고 조금 전(17시30분)까지 내렸었다.
밤 두시가 넘어서는 번개와 천둥 소리가 2-3분 간격으로 이어졌었다. 걱정이 되는 게 평원인데다가 우리 텐트는 커다란 나무 밑에 설치했기 때문에 낙뢰의 위험도 컸었다. 그리고 돌풍과 또 비, 그 와중에 구경하는 차량들의 불빛. 그러면서 밤을 새운 것이다.

낙뢰의 근심이 가장 컸었다. 평원인데다 하나 밖에 없는 나무 아래에 캠프를 한 것이라 나무가 피뢰침처럼 번개를 끌어 당기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게 더 걱정 되었다. 창민이는 잠을 자고 있는지 기척이 없었지만 나는 저절로 기도가 되었다. "신께 바랍니다. 만약 낙뢰를 내려야 할 사정이라면 내가 대표로 감당할 터이니 우리 아들 창민이 만은 살려 주세요" 기도 하고 기도 했다. 기도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침이 되었으나 비가 내린 후라서 주변의 모든 흙들은 진창이 되어 논바닥처럼 변해 있었다. 텐트를 철수하고 자전거를 끌고 도로까지 나오는데 진창이 발목까지 빠진다. 도로까지의 거리가 가까워서 다행이지 거리가 멀었다면 한참 고생을 할 뻔하였다. 아웃백에서는 4륜구동 차량도 꼼짝 못하고 진창에 갇힌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침에 신발을 신을 때에는 독충이 들어있을까 봐 늘 조심을 해 왔는데 오늘 아침에는 창민이 대장의 신발 안에 전갈이 숨어 있었다. 비를 피하려고 전갈이 신발 안으로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조심성 없이 그냥 신었더라면 사고가 날 뻔한 것이다.
 
비 내리는 날의 빗길 운행은 위험하다. 과속차량에게 우리가 식별되지 않을 확률이 높고 대형차량이 물보라를 튀기고 지나가면 순식간에 시야가 마비되고 균형이 깨어진다. 다행이 비가 와서인지 차량은 한 시간에 한 대가량 지나간다. 우리가 도로를 전세내고 가는 느낌이었다.


캥가루가 빗속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초원. 소떼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어떨 땐 우리와 함께 같은 속도와 같은 방향으로 수 백 마리가 함께 뛴다. 그러면 소들의 발자국 소리가 지축을 흔들기도 한다. 캥가루와 소 때들 사이에 섞여 함께 자전거를 타는 것이다. 비는 옷을 스며들어 살을 적시고 추웠지만 기분은 많이 좋아졌다. 간밤의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 때문 일거다.

그러나, 심기일전하여 쏟아지는 빗속을 달려 원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마을, 이 곳 콜로레너브라이에 14시 경에 도착하였다. 모텔 방을 빌려 들어 히터를 있는 데로 틀어 놓고 옷을 말리거나 긴장을 풀며 지난 밤의 끔찍했던 장면들을 씻어 낸다. 악몽같은 추억이다.

"끔찍했던 지난 밤에 우리 두 부자를 지켜 주신 여러 신께 감사 드립니다."




그런데 왜 자동차가 보고 싶을까?
자동차가 지나가면 왠지 매연 냄새가 정겨워진다. 휘발유 타는 냄새가 말이다. 한 시간에 수 백 대씩 자동차를 만날 수 있었던 서울에서는 그런 기억을 까맣게 잊어 버렸었는데 말이다.
그랬었다. 내가 어렸을 때이다. 일곱 여덟 살이던가 한국전쟁을 겪고 나서이니까, 전쟁을 치른 미군들이 쓰리쿼터 차량을 몰고 마을을 지나가곤 했는데, 뒷 칸에는 흑인 백인 등 코 큰 사병이 대여섯 명씩 타고 있었다. 나는 자동차가 만들어 내는 휘발유 타는 냄새가 좋아서 차 꽁무니를 쫓아 따라가곤 했었는데, 따라가다 보면 어떨 땐 미국 병사들이 던져 주는 초코렛이나 껌, 운이 좋은 날에는 레이션 박스를 얻곤 했었다. 다른 아이들이 레이션 박스를 줍겠다고 뛰어갈 때에도 나는 휘발유 타는 냄새가 좋아 차 꽁무니를 계속 쫓아가며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작은 마을 콜로레너브라이는 입구부터 다른 마을과는 조금 다른 게 있었다. 마을 입구의 도로 표지판에는 "트럭을 멈추고 더러운 걸 깨끗이 하고 마을로 들어오시오."라고 되어있다.
하나뿐인 모텔도 방으로 가기 위해서는 두 개의 열쇠가 필요하였다. 주차장 겸 마당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높이 2m나 되는 철망의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가야 하고, 다시 방 앞에 가서 방문을 열쇠로 열어야 한다. 길 건너 있는 주유소도 사방이 철망으로 갇혀 있고 차가 올 때마다 열쇠를 열고 차의 진입을 확인하고 문을 잠근 다음 주유를 하는 것이다.
왜일까? 원주민과의 마찰 때문일까? 꼭 서부 개척도시에 온 것 같다. 도로변의 주차 모습도 다르다. 다른 곳에서는 전면주차가 원칙이나 이 곳에서는 후면 주차를 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집들은 모두 20여 가구. 그러나  사방에 흩어져 있는 농장에서 쇼핑을 하러 오기 때문인지 농기구상점, 슈퍼마켓, 정육점, 중고차 판매점, 호텔모텔, 바, 미용실 등이 있다. 처음 마을에 들어설 때에 보았는데, 원주민 두 사람이 아무 표정없이 술병을 홀짝거리며 호텔 기둥에 기대 서 있었다. 원주민들의 삶, 꿈, 희망, 좌절, 문화충격같은 것이 일시에 읽혀지는 모습이었다.

콜로레너브라이 시내

비는 잠시 멈추었으나 아직도 구름이 하늘에 가득하다. 넓은 하늘에 구름의 끝이 보이지 않는 경우는 오늘이 처음이다. 일기예보도 넓은 지역을 상대로 예보를 하는 것이라 어느 쪽에 견주어야 할 지 모르겠다. 싸이클론(태풍)이 동부 내륙을 휩쓸고 있다는 방송의 일기 보도이다.
내일은 비가 오더라도 왈겟(Walgett)까지 강행하기로 계획하였다. 기온이 낮아진 건지 습도 탓인지 몹시 춥게 느껴진다. 방안의 히터 송풍기를 계속 틀어 놓고 텐트, 침낭, 옷가지 등 젖은 것들을 모두 말렸다. 말리다 보니 여권, 국제운전면허증도 젖어 있었다. 그러나 잘 말리기만 하면 사용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겠다.

트레일러 튜브가 네 번이나 펑크가 났다. 창민이가 두 번, 내가 두 번. 트레일러를 살 때 들어있던 인도네시아제 튜브는 재질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브리즈번에서 처음에 준비했던 예비 튜브 4개를 교환하였고 군디윈디에서 새로 구입한 튜브까지 모두 교환하였다. 자전거는 아직 탈이 없으나 뒷 타이어가 닳아 가는 것이 눈에 보일 만큼이나 엄청나다. 타이어를 몇 개 더 구입해야 할 것 같다.

저녁식사 후에는 튜브의 펑크를 땜질 수리하고 나서, 창민이와 둘만의 얘기를 오손 도손 나누며 커피를 한 잔씩 마셨다.
막내가 이렇게 컷다니!

밖에서는 도밸만과 불독이 원주민들을 향해 몹시 짖어 되고 있다. 훈련된 개들이 꼭 원주민에게만 적대감을 갖고 덤벼드는 것이다. 백인들과 원주민 간의 갈등이 매우 심한 것 같아 보였다.
대화를 나누면 될 텐데.

싸이클론과 진흙탕을 견뎌야 하는 갑옷같은 비옷과 장화


8월 31일(土)      콜로레너브라이 투헤이모텔

콜로레너브라이에서 출발하였으나 비가 계속 내려서 도중에 되돌아 와서 호텔에서 휴식.
아침식사;스테이크,식빵,계란후라이
08:00콜로레너브라이에서 출발 강한 비와 바람으로 인해 콜로레너브라이로 되돌아 옴.
투헤이모텔에 다시 숙박
숙박비$55.00
물품구입 고기1.7kg $13.00 식빵2개 바베큐 소스 양파8개 양배추 계란 12개 요구르트 4개 $13.40
점심식사 스테이크,밥,된장국,야채,짱아치
저녁식사;스테이크,빵,야채,요구르트,야채,짱아치.

주행거리 9.3

08시 30분에 왈겟으로 향해 출발하였다. 그러나 비와 바람, 특히 맞바람이 너무 거세어서 시속 7km 밖에 주행할 수 없었다. 갈 길이 막막했던지 앞에 가던 창민이가 5km 지난 곳에서 되돌아 가자고 하기에 나도 잘 되었구나 하고 투헤이모텔로 다시 돌아왔다. 어제 사 두었던 티본 스테이크를 구워서 점심을 해 먹고 낮잠도 잤다.
원정을 떠난 후 처음 자는 낮잠의 푸근함. 꼭 횡재를 한 기분이다. 밖에서는 비바람이 대지를 쓸고 다닌다.

평원에서는 바람이 불면 그건 대단한 위력으로 발전한다. 바람이 바람을 낳고, 바람이 바람을 불어재키면 바람은 바람을 빨아들여서 스스로도 주체하지 못하는 거대한 에너지로 커 가는 것이다. 더구나 자전거는 바람과의 전쟁이 아니던가.
바람한테 지다니!

돌아오는 길에 우리를 구경 나온 원주민과 잠깐 얘기를 나누었다. 이 비는 며칠간 계속될 거라고 원주민이 말해주었다. 그들의 예보라면 믿어야지.

비가 내리면 평지에서는 빗물이 어디로든 흐르지 못하고 군데 군데 나름대로 고이거나 땅 속으로 스며든다. 이 지역의 땅, 흙은 논바닥 같은 고운 진흙이라 마른 때에는 단단하다가도 물을 머금고 나면 늪처럼 변한다.
그저께 우리 텐트 주변에도 자고 나니 비에 젖은 자리는 온통 진탕 늪처럼 변해서 발목까지 빠졌었다. 도로에서 바로 가까운 곳에 캠프를 하였기에 망정이지 며칠 전처럼 도로에서 1km쯤 떨어진 곳에 캠프를 하였더라면 빠져 나오는데 상당히 고생했으리라.

이 곳 도로를 가다가 보면 '물 고이는 도로'라는 도로표지판과 또 하나 흥미있는 것이 있다면, 홍수 때 한강교량에 수위표시를 하여 놓았듯이 2m 내외의 수위 눈금표시막대기가 길 옆에 자주 서 있는 것이다. 마을이 형성되지 아니한 낮은 지역에서 캠프를 하다가는 자는 사이에 물바다에 잠기는 경우가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캠프지 선택에서는 우선 나무를 잘 관찰하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물이 범람해서 나뭇가지에 쓰레기 등 물이 범람했던 표시가 될 만한 것들이 걸려 있는데 이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뱀이 많은 곳이기 때문에 풀 속이나 무성한 곳에 텐트 치는 일이 없어야겠다. 풀섶에서는 뱀이나 작은 독충들의 움직임을 쉽게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창민이는 나의 막내 아들이다. 막내답지 않게 언제나 의젓하고 집중력이 강하며 공부를 좋아했다. 이번 계획도 그가 원안을 세운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의 의견을 존중해 주고 있다. 나의 대장인 셈이다. 지금 그가 마음으로 지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이렇게 길고 어려운 여행은 그에게 처음이기 때문이다. 나를 스스로 끌고 가는 것보다 창민이가 이 팀을 훌륭하게 리드해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더 중한 것이리라. 아버지로서의 아들에게, 선배로서 후배에게, 사나이 대 사나이로 이번의 도전은 체험교육으로 세워져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인간의 꿈과 도전 그리고 성취와 좌절을 옳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가족, 특히 나는 꿈을 좋아한다. 꿈은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남보다도 더 깊은 갈등을 안으로 가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꿈을 꿈으로 그냥 놓아 둔다면 도전이 어떤 가치를 지닐 수 있겠는가?
창민이가 꿈 꾼 자전거호주횡단(across Australia on bike)을 원만이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래서, 또 다른 내 꿈 하나는, 현실적으로 아들들과 사고의 높이를 나란히 하며 그들이 바라는 세상이 무엇인가를 헤아리고 그들이 다음 세상에 필요한 꿈을 가꾸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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