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정식 후 브리즈번에서 출발
에디터 : 박규동

1996년 8월 21일(水)     브리즈번
                        YHA → 입수윗치 고속도로 → YHA

입수위치(Ipswich) 고속도로를 따라 15번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다시 서쪽으로...
지도에 선을 긋고, 브리즈번 도시를 벗어나기 위한 도상 연습을 한 다음 오후에는 현장 답사를 했다. 대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은 서울이나 여기나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우리 나라와 다른 것이 있었다. 고속도로로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것이다.
이곳 시민 중에서 자전거 동호인들이 자전거 교통전용시설이 부족하다고 데모를 했다는데, 그 덕으로 얼마 전부터 15번 고속도로는 갓길로 자전거 주행이 가능해졌단다.
시내에서도 인도와 차도를 넘는 교차점에는 턱을 경사지게 만들었고, 사람과 자전거가 복합된 지역에는 자전거를 위해 잔딧길 가운데에 포장도로를 따로 설치해 놓았고...
세계 대도시 중에서 자전거 교통시설이 가장 낙후한 서울시내 생각이 절로 났다.

왼쪽은 보행자길, 오른쪽은 자전거길

서점에 들려 지도를 구입했다. 지도를 선택하는데도 만만찮은 시간을 허비했다. 간단하고 일목요연하게 한 두 장으로 만들어진 게 없었다. 있다고 해도 우리의 여행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호주는 우리 나라 남한의 약 80배 쯤 넓다. 동 서의 길이가 약 5,000km인데 우리는 하루에 고작 100km 정도 이동할 수 있다. 백만분의 일 지도에서 1cm는 실제 거리가 10km이다. 10km의 정보를 1cm 안에 저장하려다 보니 표현할 수 있는 량이 얼마되지 않기 때문이다.
용케도 리더스다이제스트 사에서 발간한 백만분의 일 지도를 80$에 구입할 수 있었다. 백만분의 일이라고는 해도 무려 300페이지가 넘고 무게가 약 3kg, 가로 세로 28X40cm의 대형 책이다. 자료로는 너무 좋지만 그것을 다 갖고 갈 엄두를 못내고 우리가 통과하는 구역의 해당 쪽을 책에서 오려내기로 하였다.

윌리암 졸리(William Jolly) 다리로 브리즈번강을 건넜다. 한남대교로 한강을 건너는 것과는 다르다. 한강은 기적이지만 브리즈번강은 다만 도시 가운데로 흐르는 강에 불과하였다. 한강도 바다로 흘러들고, 브리즈번강도 바다로 흘러든다. 태평양, 그러고 보니 여기는 남태평양이다.
저녁에는 YHA 호스텔에서 만난 우리 나라 여행자들과 남태평양 얘기를 하면서 우리 말을 싫컷 하였다. 그 사이사이에도 브리즈번강은 흘러흘러 남태평양이 되는 것이다. 바다로 물이 되는 것이다. 모든 게 물이 되듯이.

 
1996년 8월 22일(木)     브리즈번
                        YHA → 넛지비치 → YHA유스호스텔

10:00 한국학생 2명(김혜란,이은미)과 YHA에서 자전거로 출발
10:20 자전거 2대를 더 빌림(학생용) 자전거 하루 빌리는값 $20×2
11:40 식사 테이크어웨이(takeaway)식당 식사비 $18.40
12:30 넛지비치(Nudgee Beach)도착. 남위:27°20.6′ 동경:153°06.0′.
한국학생 2명과 함께 태평양의 넛지해변(Nudgee beach)에서 출정식을 함
13:00 넛지비치에서 출발
15:00 YHA에 도착.

속도계를 다시 셋팅 바퀴둘레 2055mm . 누적거리 0km.
태평양 넛지비치(Nudgee Beach)에서 출정식을 하였다. 호주 동해안 넛지비치까지는 나와 창민이, 그리고 여행 온 여대생 두 명 김혜란, 이은미양이 함께 동행해 주었다.

태평양을 볼 수 있는 넛지비치에서 출정식을 하기로 했다.

넛지비치로 가는 길

넛지비치에서 출정식을 했다.



남위 27°20.6′, 동경 153°06.1′ 해발 0m.
GPS(지구위치확인장치)에 나타난 출발점이다.

나는 그 곳에서 나름대로 특별히 다짐을 하나 하였다. "끝 까지 내 영혼을 놓치지 말자"고. 언제 어느 경우에나 몸과 영혼이 나란히 가자는 것이다.

돌아 오면서 한국 마켓에 들려 식량을 구입했다. 쌀, 된장, 고추장, 배추, 소금 등 그리고 스테이크를 샀다. 식량에 관한 구입 권한이 창민이 대장에게 있고 그는 이것 저것 계산을 한 다음 식단을 결정하였다. 우리는 매일 스테이크용으로 1kg가 넘는 쇠고기를 먹었다.

남겨둘 짐을 모아서 창민이 친구의 하숙집에 보관시켰다.
YHA 호스텔에 모인 한국인 젊은이들과 저녁을 함께 먹었다. 내일 아침 출발 때에 환송을 해 주겠다고 한다. 김혜란, 이은미 학생이 닭죽을 끓여주었다. 고마운 사람들!

위치확인장치로 가민 GPS38을 쓰고, 자전거에는 거리와 속도를 통계관리하는 컴퓨터가 있고, 실바 타잎2 나침판, 캠프(CAMP)사의 고도계, 브리코(BRIKO) 온도계 등이 기록장비로 준비되었다.

선샤인스테이트(Sunshine State)라고 자랑하는 퀸슬랜드(Queensland)에 태양이 비치고, 봄이 완연하다. 아침 저녁으로 다소 추위를 느끼기는 하나 낮에 자전거 타기에는 좋은 날씨이다. 서울에 있는 내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주고 건강하게 돌아가야겠다.
운반해 가는 짐이 엄청나서 그게 조금 걱정이다. 내일부터 낑낑대고 그레이트 디바이딩 산맥(Great Dividing Range)을 넘을 생각을 하니, 또 트레일러에 익숙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이 며칠과 눌라보(Nullarbor) 구간을 통과할 때가 가장 어려운 때가 아닐까.


1996년 8월 23일(금)     야영. 와릴뷰 공원
                        YHA → 입스위치 → 와릴뷰

09:00 브리즈번 YHA 호스텔에서 출발
16:30 와릴뷰(Warrill View)도착 라이온즈클럽 공원에서 야영
남위:27°49.5′동경 :152°36.9

최고속도 42.9
평균속도 14.8
운행시간 5.16.35
주행거리 78.80
누적거리 78.80

드디어 출발!

09시에 YHA호스텔을 떠났다. 출발할 때에는 민족 여섯 명이 박수를 쳐 주었다. 김혜란, 이은미, 권준익, 김희선, 김현정, 윤성진. 그렇게 뿌듯한 가슴으로 출발한 것이다. 윌리암졸리 교량을 통과하여 브리즈번강을 건너, 10번 고속도로 서쪽으로 가다가 다시 15번 고속도로 남쪽을 타고, 한참 후 커닝햄 하이웨이를 따라 남으로 남으로 78km를 달려 왔다.

조그만 마을, 와릴뷰(Warrill View)에 있는 라이온즈클럽공원(Lionsclub Park)에서 16시 45분에 텐트를 쳤다. 첫 야영이다. 창민이와 저녁을 지어 먹고 텐트 속으로, 19시에 취침준비. 트레일러를 끌고 오느라 힘에 겨워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고 캠프한 것이다. 트레일러를 끌고 하루에 100km씩 가기로 한 것은 아무래도 무리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 했다.

출발할 때 같은 YHA에 숙박했던 분들이 박수를 쳐 주었다.


캠프지에서 바라보니 멀리 그레이트디바이딩 산맥이 보인다. 내일은 저 산맥을 넘어 서쪽으로 간다. 태양도 서쪽으로 가고 우리도 서쪽으로 간다. 서쪽에는 또 다른 서쪽이 있고 서쪽은 어느 쪽에서 보아도 서쪽이다. 나침판을 돌려놓으면 동쪽이 되었다가도 다시 서쪽이된다. 서쪽을 향해 시간이 가고 나도 따라 간다. 그리고 서쪽의 저녘에는 날마다 지는 노을이 있다. 붉은 노을에 잠기면 집에 가고 싶어진다. 집, 고향, 아내, 사랑하는 사람.
달마는 사랑하는 사람이 기다려서 동쪽으로 갔을까?

고속도로에서 자동차와 함께 달리는 느낌은 '교통의 평등'이었다.

창민이가 대견스럽다. 영어공부도 열심히 해서 언어소통에 문제가 없고, 앞에서 열심히 달려준다.
내 아들인가! 사랑하는 아들들아!

도중에 소를 파는 장터가 있어 구경했다. 주변 목장에서 실려온 소들이 여러 우리에 나누어 넣어지고 경매인은 우스꽝스런 몸짓과 목소리로 경낙을 이끌어 간다. 전형적인 호주의 모습을 본 것이다. 건장하고 거친 근육에 호주모자를 쓰고 호주언어로 그들의 계산과 인생을 얘기하고 있었다.
우리도 소를 운반하는 대형 트럭들 옆에 자전거 두대를 나란히 세우고 나무벤치에 걸터 앉아 주문한 커피를 마셨다.


이번 원정에는 나의 영혼도 함께 출발하고 함께 다니기로 하였다. 빠른 속도의 지구별 탈 것에 적응하지 못하여 제 때에 내 몸을 따라오지 못하는 나의 영혼을 위해서는 자전거 속도가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살아온 지난 날을 도리켜 보면, 어처구니 없게도 내 영혼이 내 몸의 움직임 보다 뒤떨어지거나 훨씬 지칠 때가 많이 있었다. 내 영혼을 지치게 하는 첫 번째 원인은 빠른 속도 때문이었다. 영혼이 미처 따라 오지 못하는 속도가 있다는 사실이다. 자동차나, 비행기나, 버스 같은 것을 타고 여행을 해 보면 알 수 있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는 영혼이 저만치 바람에 날려갔다가 되돌아 올 때도 있었고, 해발 4천이 넘는 고산에서는 허파보다 영혼이 더 힘들어하는 바람에, 한 발짝 올라 갈 때마다 영혼이 한 발짝 뒤 떨어 졌다가 다시 머리에 와 닿는 소리가 텅 텅하고 난 적도 있었다.
못난 트럭의 경적에 놀라서 달아난 내 영혼 때문에 심장이 멎은 것은 한 두 번이 아니었고, 래프팅을 할 때에 급류에 휘말린 내 몸과 소용돌이에 휩쓸려간 내 영혼이 서로 헤어졌던 기억도 수 없이 갖고 있다.
아주 빠른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와 보면 더 잘 알수 있는 것이, 내 몸이 도착하고 난 후 사나흘 쯤 지나서야 비로소 내 영혼이 따라 온다는 사실이다.
예쁜 여자를 만나면 어쩔꺼나 내 영혼이 그녀를 따라 바람 난 듯이 쫓아가 버리고 만다. 그 때마다 나는 정신이 혼미한 체로 영혼이 되돌아 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었다. 기다리며 쉬는 것이다. 영혼이 나를 따라 올 때까지 쉬었다가 떠나고, 다시 기다렸다가 떠나고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의 노릇이라 생각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내 생각이 많이 달라 졌다. 지구별 방식으로 지구에서 사는 것이 오십 년이 넘고보니 어쩜 내 영혼을 위해서는 그동안 아무련 배려 없이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걷거나 자전거를 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자전거를 탈 때에 나는 행복하다.
마음과 몸과 영혼이 잠시도 헤어지지 않고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속도이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탈 때에는 마음과 영혼도 몸의 기쁨을 함께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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