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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자전거 정비만 70만원~!
2010-07-29   안상은

역시 간단한 입국 절차를 마치고 싱가포르에 발을 딛는다.

우리를 처음 맞는 건 엄청나게 쏟아 붓는 폭우. 고가도로 아래서 비를 잠시 피하고 다시 시내로 들어간다.

잘 사는 나라라 그런지 고급차는 많이 보이는데 양보의 미덕은 보이지 않는다. 21세기형 선진국이니 어쩌니 해서 깨끗하고 밝은 이미지가 그려지지만, 흐린 하늘에 여기저기 버려진 쓰레기하며 무단 횡단하는 사람도 많은 게 결국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싶다.


싱가포르에선 길거리에서 담배도 피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이유를 만 원돈 하는 담뱃값에서 밖에 찾을 수가 없다. 몇몇 엄격한 법이 과대 포장돼서 싱가포르의 이미지가 그렇게 그려지는 것 같다. 그럼 그렇지... 그런 강한 규제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즐겁게 살 수 있을 것이며, 그게 무슨 선진국이라 할 수 있나. 융통성이란 언제나 고려돼야 하는 가치다.

우리의 첫 목적지는 우리나라 모 선박운송업체 사무실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상선을 얻어 타고 바다를 건너볼 생각이었는데, 도착해보니 이거 원 많은 경비에, 카드출입시스템이 있는 고급스러워 뵈는 건물이라 들어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어설프게 말도 못 꺼내고 퇴짜를 맞느니 좀 더 계획을 세우기로 하고 일단 후퇴. 근처 은행에서 돈을 뽑고 밥을 먹는다.

싱가포르 물가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이라 하던데 과연 다른 물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밥값이 4~5천원 돈이다. 현재 환율로 말레이시아 1링깃은 370원 정도, 1싱가포르달러는 860원 정도다. 거의 두 배반의 차이가 나는데 내는 돈의 숫자는 말레이시아에서 내던 것과 같다. 웬만하면 먹을 땐 먹자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자제가 필요한 순간이다. 담뱃값은 너무 비싸서 당분간 어절 수 없이 금연을 해야 할 것 같다.

연락해둔 웜샤워 친구에게 전화를 해 보지만 어제 오기로 했던 우리의 일정이 바뀌어 자기는 다른 곳에 있다며 다른 숙소를 권한다. 기름때에 먼지에 비까지 맞은 몸에선 노숙자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데 잠자리를 구하기 위해 또 달린다. 어딘가에 도착해서 잠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무언가에 쫓기는 것 같아서 조바심이 나고 짜증이 난다.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어서 여행자를 위한 숙소도 별로 없어 더 그렇다. 물어 물어 도착한 작은 골목엔 클럽 두어개와 도미토리 하나가 있다. 이태원을 100분의 1이상으로 축소해 놓으면 이렇지 않을까 싶은 곳이다. 시간도 늦었고 몸도 피곤하고 선택의 여지도 없어 일인당 22싱가폴달러(약 19,000원)나 하는 16인실 도미토리의 침대를 잡는다.


대도시에선 숙소를 따로 잡은 적이 거의 없어서 더 비싸고 아깝게 느껴진다. 남의 집에 잘 얹혀 자다 보니 숙박비가 기본 경비가 아니어서 타격이 크다.

짐을 풀고 나와 맥주 한 잔. 맥주는 상대적으로 정상가다. 방도 구했겠다. 몸도 개운하겠다. 이럴 때 마시는 맥주는 정말 최고다. 여기선 언능 볼일보고 떠야겠다.

10시 30분까지 아침이 제공돼서 일어나 부리나케 나가 아침을 먹는다. 아침이어 봤자 토스트와 커피, 사과, 바나나가 전부지만 공짜로 제공되는 것이니 비싼 나라인 만큼 곡 챙겨 먹어야 한다.   

다시 짐을 챙겨 나와 자전거 수리를 위해 Kian Hong Cycle이라는 자전거 샵을 찾는다.
우리의 스폰서 업체인 제논스포츠를 통해 소개받은 협력업체다.

제논스포츠를 통해 소개 받은 협력 업체에서 정비를 받기로 했다.


수리나 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자전거가 엉망이다. 이곳에서 말끔히 정비를 해야 한다. 인도로 넘어가면 한 동안 제대로 된 자전거 수리점을 만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자전거 수리보다 내일로 예약돼 있는 비행기 티켓 변경이 먼저이기 때문에 양해를 구해 짐을 맡겨놓고 에어아시아를 찾아간다. 빌어먹을 쿠알라룸푸르 사무실에서 죽어도 안 된다던 크레딧(포인트 개념)으로의 변경이 쉽게 처리된다. 하지만 프로세싱피라고 90링깃을 띵가먹고 결국 우리에게 남은 크레딧은 670링깃이 된다. 이래저래 500링깃(약 185,000원) 넘는 돈이 날아갔다.

다음은 다른 모 상선 사무실을 찾아가지만 주소지에 사무실이 없다. 사람들도 모른다고 한다. 공짜 배 타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계획이 물거품이 되는 것인가. 그 사이 내 앞 바퀴가 펑크 난다.

오늘만 두 번째. 문제는 짐을 다 놓고 와서 펑크패치가 없다는 사실. 우선 근처에 있는 니콘 서비스센터를 찾아서 포커스 문제가 있는 효일이 렌즈를 점검한다.

견적을 보여주는데 공임만 100싱가포르달러(86,000원). 부품비 76싱가포르달러를 합치면 우리나라에서 새것 같은 중고렌즈를 살 수 있는 돈이다. 우선 수리를 유보하고 나온다. 캠코더도 포커스 문제가 있어 캐논 서비스 센터, 내 아이팟도 고장 나서 애플서비스 센터를 가야 하는데, 짐을 맡긴 자전거 샵 문이 닫기 전에 가야 하기 때문에 방향을 돌린다.


바퀴 펑크 때문에 난 걸어서 갈 수 밖에 없다. 앞선 효일이가 내 펑크를 고치기 위해 근처 자전거 샵을 찾아 동분서주하지만 찾기가 힘들다. 그렇게 서로 떨어져 가다가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효일이를 기다린다. 30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고 또 30분이 지나도 효일이가 오지 않는다. 효일이는 GPS가 없어 방향을 모르고, 난 돈이 없어 어디로 갈 수도 없다. 하필 아직 이곳 심카드도 없어서 연락을 취할 수도 없다. 다행히 현금카드를 가지고 있어서 다시 한 시간을 걸어 시티은행을 찾아 돈을 뽑고, 심카드를 사고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효일이 블로그에 전화번호를 남기고, 그 사이 카우치서핑을 통해 한 친구에게 연락을 취해놓는다.

니콘 서비스센터를 찾아가 포커스 문제가 있는 효일이 렌즈를 점검한다.

밥을 먹고 다시 하염없이 걷는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전화벨이 울린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효일이는 자동차전용도로를 달리다 경찰한테 잡혀서 조서 같은 걸 썼나보다. 그리고 물어 물어 어제 잤던 호스텔에 갔다고 한다. 이미 11시 반. 여기서 연락해 둔 카우치서핑 친구 집까지는 아직 7km가 남았다. 하필 그곳이 내일 가야 할 자전거 샵과 반대방향이다. 그럼 난 내일 4시간을 자전거를 끌고 걸어야 한다. 발이 너무 아파서 그냥 가장 가까이에 있는 여행자 숙소를 찾는다.

1시. 잠자릴 잡는다. 자전거 타는 것과 걷는 것이 다르고, 샌들을 신고 있어서 너무 힘들다. 싱가포르에 있는 동안 금연을 하려 했지만 제일 싼 3.5싱가포르달러짜리 말아 피는 담배를 산다. 모든 피로가 저 연기처럼 사라져주면 얼마나 좋을꼬...


자전거를 고치러 샵에 간다.
고쳐야 할 목록과 받아야 할 부품을 체크하고 장인의 포스가 느껴지는 아저씨의 작업이 시작된다.
자전거를 모조리 분해하고, 부품을 하나하나 세척하면서 상태를 점검한다. 정말 꼼꼼히 정성스레 봐주시는 것 같아 흐뭇하다.
한쪽에서는 그렇게 자전거 점검을 하고 한 쪽에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부품을 챙겨준다.



지금 내 자전거는 앞 거치대가 부러져서 바꿔야 하는데 싱가포르에서도 앞 거치대는 구하기 힘든 물건인 듯싶다. 골치 아픈 일이 또 생겼다.
멍하니 작업구경을 하고 있으니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면서 기다리지 말고 내일 오라 한다.

수리하는 걸 봐두려고 했는데 진행이 너무 느려서 알았다 하고 돌아온다. 자전거를 맡겨두고 가니 하는 수 없이 걸어야 한다. 그늘은 시원한데 햇볕은 굉장히 뜨겁다. 그렇게 45분 정도를 걸어 집 근처에 온다. 밥 해먹기가 귀찮아서 그냥 밖에서 사 먹고 들어온다.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우리나라 상선 회사 본사로 전화를 걸어본다. 그쪽에서는 '국제법상 힘들다. 회사 방침상 안 된다' 그런 얘기들이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내가 얻은 결론은 '컨테이너선은 여객선이 아니기에 선원이 아닌 사람을 태우기 위해선 서류도 필요하고 절차가 복잡하다. 그런 일에 신경 쓰기 싫으니 다른데 알아봐라..' 그 정도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바우처를 통해 돈을 내고 컨테이너선을 타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근데 그건 하나의 특별한 여행 방법으로 소개돼 있어 가격이 하루에 80~120달러로 비행기로 이동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비싸다. 이동하는 시간의 숙박과 음식이 포함된 가격이지만 그리 매력적이지 못하다. 어쨌든 컨테이너선 타기는 포기다. 결국 우린 다시 쿠알라룸푸르로 가 비행기를 타야 한다. 두 번 입국만 가능한 인도비자 때문에 방글라데시 행을 포기하려 했는데, 이렇게 되면 말레이시아에서 방글라데시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겠다. 딱딱 순조롭게 되는 일이 없구나...

자전거 샵으로 간다. 자전거가 깨끗이 정비돼있고 필요한 부품들도 한 바구니에 잘 담겨져 있다.
자전거를 손봐준 빈센트 아저씨와 농담 따먹기 좀 하고 사진 한 방.



꼼꼼히 자전거를 정비해 주셔서 너무 고맙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자잘한 부품들도 따로 챙겨 주신다.

이제 중요한 게 남았다. 제논스포츠 쪽에서 이곳을 소개하면서 정비니 간단한 부품 교체가 가능할거라 했는데, 우리 자전거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았고, 앞으로 유럽에 도착하기 전까지 다시 지원 받기가 힘들 것 같아 이것저것 요구를 많이 했더니 공임 빼고 반 값 정도 할인된 금액이 거의 60~70만원 돈이다.


만약 우리가 이 돈을 내야 한다면 부품을 하나하나 뺄 생각이었는데 한 시간 가량 담당자 분끼리 연락을 주거니 받거니 하더니 제논스포츠 쪽에서 모두 부담하기로 결정이 났다. 제논스포츠도 좀 난감했을 거라 생각한다. 생각보다 금액이 컸고, 우리가 지불하게 놔두기도 그렇고...
어쨌든 제논스포츠에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교차한다. 자전거가 쌩쌩 잡음이 없어 좋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 고장 난 아이팟을 고치기 위해 애플 서비스센터를 찾는다. 빌어먹을 애플의 서비스 정책은 세계 어디 가나 똑같아서 무슨 문젠지 확인하는 데에만 40싱가포르달러(약 34,500원)을 내야 한다고 한다. 문제점을 알아내고 고치려면 훨씬 더 큰돈이 들어갈 게 분명하다. 이렇게 나와 수년을 동거 동락한 아이팟과 이별의 인사를 나눈다. 언제나 곁에 있었기에 아쉬움이 크다. 주검이 된 몸이지만 내 너를 버리지 않겠다.

집으로 돌아와 밥을 해 먹고 내일 떠날 준비를 한다. 특별한 기억을 남기진 않았지만 싱가포르에도 발도장 하나 꾹 찍고 간다.

짐을 챙겨 나온다. 집 주인인 해놀드 아저씨는 어제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책상 위에 기념품 하나와 감사의 쪽지를 남기고 나온다. 밥을 먹고 가는 길에 우리 자전거를 손봐준 자전거 샵에 들려 기념품을 주고 인사를 나눈다. 오늘 온다고 해서 그런지 빈센트 아저씨가 핸들바를 잘라 반지를 만들어 우리에게 하나씩 준다. 손가락에 딱 맞는다. 그렇잖아도 게이로 오해 받는데 이제 똑같은 커플링까지 끼게 됐다.

그렇잖아도 게이로 오해 받는데 이제 똑같은 커플링까지 끼게 됐다.

다시 출발하려는데 얼마 안 가서 또 폭우가 쏟아진다.

30분 가량 비를 피한 후 국경으로 달린다. 이걸로 짧은 싱가포르 여행을 마친다. 애초에 자전거 수리를 위해 찾은 곳이라 유명하다는 곳엔 가지 않았지만 이런 저런 사건 때문에 이곳 저곳 많이 돌아다녔다. 여행으로 왔어도 물가 부담 때문에 크게 즐기진 못했을 것이다. 동남아 여행에서 싱가포르는 그리 매력적이지 못하다. 어쩌면 이런 기회로 와서 한 번 둘러본 게 나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굿바이 싱가포르.



** 더 많은 이야기는 리얼로드무비 블로그를 통해 볼 수 있다.
- 리얼로드무비 블로그 : http://realroadmovie.tistory.com/ 
- 안상은 블로그 : http://rrmbyinwho.tistory.com/
- 안효일 블로그 : http://rrmbytransplant.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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