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2, 20년만에 친구와의 재회
에디터 : 이호선

'바다'급 초대형 호수, 수 천 개의 중, 소급호수, 개울, 강, 하늘을 찌르는 소나무 밭이 계속되던 퀘벡주와 온타리오주를 넘자마자, 시작되는 매니토바(Manitoba)주부터, 귀신이 곡할 정도로 완벽하게 다른 풍경이 시작된다.
숲이라곤 전혀 없는, 끝없이 평평한 목초지와 가축 떼들, 그리고 밀밭이 계속된다. 위니펙(Winnipec)을 지나, 그동안 달렸던 '캐나다 횡단 하이웨이'를 벗어나 시골길, 국도2번을 타고 달리던 중 만난 조그만 마을의 마을 선전인형.


눈과 얼음이 덮인 소나무 숲, 호수, 그리고 강이 이어지는 퀘벡주(州)와 온타리오(Ontario)주(州)를 지나, 나무라곤 하나 없고 끝없이 펼쳐지는 목초지와 밀밭뿐인 매니토바(Manitoba)주(州)와 사스카추원(Saskachewan)주(州)를 달린다.
이미 지나온 퀘벡주와 온타리오주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전개된다. 소나무 숲, 개울, 강, 호수의 풍경이 아닌, 끝없이 펼쳐진 목초지와 흑 토양지대의 그것이다. 이 곳은 전형적인 낙농업지대로, 목초지 위에 방목되고 있는 소, 젖소, 그리고 말들이 보일 뿐이고 중간 중간 드넓은 밀밭이 전개된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벌판에 그대로 자유 방목되고 있는 이곳의 가축들은 그야말로 야생이다. 이곳의 소들은 완전 근육질로 비계가 안 보인다. 그들은 거의 말 수준으로 들판을 누비며 달린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넓은 들판의 군데군데, 파놓은 지하수 웅덩이에서 물을 먹고 초원의 풀을 뜯으며,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도 아들답게 자연의 모든 것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아주 당연하고 의연하게 그들의 삶을 계속한다.(단지, 들판이 완전히 눈으로 덮이는 철에만, 주인집 근처의 좁은 공간에서 주인에게 얻어먹고 산다.)

앨버타(Alberta)주를 지나 로키산맥에 가까워오면서 바람은 더욱 거세지며 거의 걷다시피 한다. 웅장한 로키산맥을 바로 앞에 두고 캐나다 횡단 '최후의 폭풍우'에 걸려, 조그만 마을 카울리(Cowley)의 한 폐차장에서 나를 구한 버려진 캠핑카.
이 안에서 나흘을 갇혀있었으나 캠핑카의 내부는 호텔 급이었다.


차갑고 강한 서풍과 변화무쌍한 대륙의 날씨를 상대하기위해 나는 필사적으로 '출입금지(No Trespassing)'의 경고푯말이 걸려있는 바리케이드를 뛰어넘어 빈집과 창고, 그리고 폐차 속에서 정적을 응시하며 들쥐들의 야단법석을 자장가로 간주하며 밤을 보낸다.
캐나다에서는 특히 폐차가 제일 좋은 야영지다. 캐나다는 엄청난 석유 보유국답게 대형차가 대세(大勢)이다. 캐나다인들은 대형 미국차를 아주 좋아한다. 특히 시보레, 지엠씨(GMC), 포드의 대형픽업트럭을 선호한다. 그들 자신조차 "저 차들은 기름 먹는 괴물이야!"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이 픽업트럭이 달려가는 것을 보면 완전 탱크가 달리는 듯하다. 버려진 큰 차는 나에게 여유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그리고 캐나다의 거의 모든 가정에는 한대 이상의 캠핑카가 있기에, 버려진 많은 캠핑카는 나에게 호텔 급의 야영장이다.

이 여행을 시작한 중국에서부터, 수많은 나라를 지나며 숲 속과 빈집에서 야영을 하면서 항상, 단 한 개의 원칙을 '절대고수'하며 수많은 밤을 보냈다.
"어둠 속에서 어둠과 함께 어둠 속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기어들어가 밤을 보내고 또 쥐도 새도 모르게 흔적도 없이 그곳을 사라진다." 이것은 동물의 최소한의 생존 본능이다.
특히, 사람 많고, 많은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도 도보와 자전거로 이동하며 숲 속에서 시도 때도 없이 사람이 나타나는 중국, 네팔, 인디아, 파키스탄지역을 지날 때는 플래시도 안 켜고 어둠 속에서 움직였다.
"생존은 나의 모든 것이다." (99번 완벽한 안전운행을 하다가도, 단 한번의 방심은 사망으로 끝날 수 있다. 100번 안전운행을 해야 한다.)

무서운 아줌마, 베스(Bess Schurrman). 그녀는 결국 4개월 만에 단독 캐나다횡단[6,000여km: 넬슨(Nelson) -세인트 존스 뉴펀들랜드(St. John's NFD)]을 마치고 세인트 존스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으며, 내년 4월 중순경 다시 6, 000여km를 횡단해서 그녀의 집, 넬슨(Nelson)에 돌아올 것이라 함.)
달리는 동안 철길을 건너던 중, 자전거와 트레일러와 함께 전복되어 온몸에 타박상을 입고 일주일을 쉬면서도 끝내 '임무 완수'를 했다고 한다. 브라보!


서쪽으로 달려갈 수록 바람은 더욱 거세지며 평지임에도 자전거를 타고 전진할 수가 없을 정도다. 처음 몇 시간은 하늘이 나의 다리근육을 단련시키라고 내려주신 선물로 생각하며 달리지만 시간의 경과와 함께 나의 입에서는 끝없는 욕설이 꿰져 나온다.
"하늘이시여! 제발, 그만 좀 하시지요!" ........."어이, 하늘! 그만 좀 하자, 제발 그만 하자구!"
하루 종일 쉬지 않고 한 방향에서만 불어오는 이 서풍은 로키산맥이 시작되는 앨버타(Alberta)주(州)의 남쪽지역까지 계속된다. 로키산맥이 가까워 오면서 바람은 더욱 거세진다. 마치 일렬횡대로 초대형 선풍기가 늘어서서 바람을 뿜어내고 있는 듯하다. 그 바람의 세기를 증명이나 하듯 로키산맥을 따라 정말, 일렬횡대로 무수한 풍력발전기가 설치되어있다.

사스카추원(Saskachewon)주(州)의 끝자락인 이스트엔드(East-end)라는 쬐그만 마을은 사랑스럽고 예쁘다. '예술인 마을'로 도자기공예가, 화가들을 비롯, 많은 예술인들이 산다고 한다. 고맙게도 샤워장이 있는 캠프장이 나를 반긴다. 뜻밖에, 나는 캐나다횡단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캠프장에서 자전거 여행자를 만난다.
헬멧을 쓰고 노란 재킷을 입고 있는 그의 뒷모습은 키가 180cm가 더 되어 보이는 체격에 몸이 쭉 빠진 친구다. 그는 자전거 뒤에 트레일러를 연결해 그것을 끌며 여행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가 돌아보는 순간, 그는 놀랍게도 그녀가 아닌가?!
그녀의 이름은 '베스'(Bess)로 올해 63세. 그녀는 내가 곧 지나갈 앨버타(Alberta)주를 넘어 브리티시컬럼비아(British Columbia)주로 들어가자마자 만나게 될 도시, 넬슨(Nelson)에 살고 있고, 네덜란드의 후예라 한다. 그녀는 넬슨에서 시작해 캐나다 동부의 끝인 세인트존스(St. John's)까지 거의6,000여km를 혼자 캠핑을 하면서 자전거로 단독횡단 한다고 한다.
이른 아침, 나는 그녀와 동네카페에서 커피와 토스트를 먹으며 이별의 아쉬움을 달랜다.
그녀의 이메일주소는 (멈추지 않고, 항상 움직이는 '베스')movingbess@........!
그녀는 자신의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 끊임없이 움직이고, 액션을 취하며 살겠다고 한다.

5월 25일, 로키산맥을 넘어 캐나다의 대륙횡단용사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대학교 2년생인 밴쿠버에 사는 리사(Lisa)는 혼자서 밴쿠버에서 캘거리(Calgary)까지 1,000여km를 자전거여행 중이다.(얼마나 귀엽던지!)


앨버타(Alberta)州를 지나 로키산맥으로 진입하는 지역에 오니, 비로소 반대편에서 넘어오는 대(大)캐나다의 바이커 용사들이 하나둘 모습을 나타낸다. 이곳에서 로키산맥을 넘어 밴쿠버까지 1,000km정도 되니 이들 모두는 5월 15일 전후에 밴쿠버를 떠났다는 얘기가 된다. 대륙횡단의 계절이 드디어 온 것이다. 캐나다의 모든 대륙횡단 바이커들은 반드시 서쪽의 밴쿠버에서 동쪽의 몬트리올, 헬리팩스, 세인트 존스로 향한다. 날씨가 서쪽에서부터 따뜻해지고, 바람은 항상 서풍이기에 바람을 등에 지고 달릴 수 있다. 불행하게도, 나는 정반대로 달려 추위와 맞바람과 끝없이 맞짱을 뜨며 달려 왔던 것이다.

로키산맥영역(領域)안으로 들어가 로키산맥을 횡단하는 도로를 달리면서부터 비로소 나는 바람의 저주로부터 방출된다. 마치 '태풍의 눈'이 고요한 것처럼,......

이제부터는 로키산맥의 풍광을 느긋한 마음으로 음미하기만 하면 된다.
이제 더 이상 상대의 펀치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고 비명도 지를 필요 없이 그저 가벼운 스텝을 밟고, 경쾌한 잽을 날리고, 주먹에서 팔을 타고 가슴까지 전해오는 짜릿한 타격 감을 만끽하며 상대를 즐기기만 하면 된다.

캐나다의 마지막 주인 브리티시컬럼비아(British Columbia)주를 넘자, 이젠 완전한 로키산맥의 영역으로 장대한 로키의 산과 자연이 나를 압도한다. 아름다운 경관만큼이나, 많은 그림같이 예쁜 관광마을이 계속된다.


너무 아름다워 그 동안의 힘들고 고단했던 길고도 길었던 날들은 순간이 된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미국의 컨트리 싱어인 '존 댄버(John Denver)'-그는 수 년전 비행기사고로 고인이 되었다-가 만들어 부른 "로키 마운틴즈 하이(Rocky mountains High)!"의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달린다.
보너스로 나는 곰을 네 번씩이나 만나는 행운(?!)을 갖는다. 도로를 달리다가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나면, 나는 자전거를 세우고 소리 난 방향을 숨죽이고 주시한다. 역시 곰이다!(대부분이 흑곰) 그가 나뭇가지에 매달렸다가 그의 무게를 못 이긴 나뭇가지가 부러진 것이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들이 배고픔을 못 이기고 도로와 민가 근처로 내려온 것이다.
나는 내가 만난 캐나다인들로부터 숲 속에서 캠핑할 때의 주의사항을 듣는다.
"결코 텐트주변에 먹을 것을 놓지 말고, 최소4~50m 떨어진 곳의 나뭇가지 위에 그것을 매달아 놓을 것!"

몬트리올에서 3,500여 km를 달린 지점에서, 나는 최고의 위기를 맞는다. 사스카추원주(州)의 경계선을 넘어 앨버타주(州)로 들어서자마자 시작되는 작은 자갈과 모래의 완벽한 비포장도로가 100여 km 계속되는데, 닳고 닳은 자전거의 뒤쪽 타이어가 뻥 뚫려 버리며 그 안의 튜브가 찢겨나간다. 더 이상의 스페어타이어가 없다. 어쨌거나 밴쿠버까지는 가야한다. 거의 한계이지만 아직 구멍은 안 나있는 앞 타이어를 빼내어 뒤의 타이어와 바꿔 끼고 이틀을 달리니 바꿔 낀 타이어도 또 다시 구멍이 난다. 마침, 티베트의 라싸의 철물점에서 싸게 산 많은 수의 튜브펑크용 패치가 많이 남아있어, 그것을 구멍 난 타이어의 바깥부분에 붙인다. 놀랍게도 , 패치는 잘 붙고 이 삼일을 버티었다.

내 앞에 선, 할리(Harley&Davidson)를 타고 가던 한 모터사이클리스트가 나의 타이어에 붙어 있는 튜브의 패치를 보고 기겁을 한다.
"이 지경으로 달리다니?!" 그도 치를 떨지만, 나 자신도 내리막길을 내려갈 땐 정말 식은땀이 났다. 구멍 난 타이어에 튜브는 순식간에 찢기며 바람이 빠져버려, 자전거는 순간에 무너지기 때문이다.


5월의 마지막 날이다. 밴쿠버를 목전에 둔 마을, 보스턴 바(Boston Bar)에 도착하니 마을 입구에 주유소 '허스키(Husky)'가 있고, 두 명의 동양인이 계산대 앞에 서있다. 말을 걸어 보니 한국 사람이다. 한 사람은 51살, 다른 한 사람은 53세로 이민 온지 8년 되었다고 한다. 손위의 분은 전직 삼성맨으로 동남아시아의 해외지사를 전전하다가 국내로 돌아왔지만 국내생활에 제대로 적응이 되지 않아 캐나다 이민을 결심했다고 한다. 손아래의 또 한 분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이곳에 왔다고 한다.
주유소는 상당히 크고 기름을 넣으려는 차가 줄을 잇는다. 이 분들의 집은 모두 밴쿠버로 일요일과 월요일에는 이곳을 다른 종업원에게 맡기고 밴쿠버에 있는 그들의 가족들에게 돌아간다고 한다.  우선 가게 뒤에 있는 그들의 집에 들어가 오랜만에 뜨거운 물을 전신에 만끽한다. 그들의 호의로 밥과 오이소박이를 먹는다. 정말 꿀맛 같은 밥맛이다. 나의 동족(同族)분들의 호의를 온몸으로 만끽한 후, 주유소 앞에 앉아 커피를 즐기고 있다. 도로는 좁으나 대륙횡단 1번국도이기에 정말 많은 차들이 지나간다.

오늘따라 오토바이가 수도 없이 지나간다. 십 중 열이 할리 데이비슨(Harley & Davidson)이다. 유럽에서는 보이는 오토바이의 대부분이 BMW였다.
갑자기 수많은 어지러운 총성과 함께 주유소를 뒤흔들고 주유소 주위를 새 까맣게 뒤덮는 검은 무법자들로 나는 잠시 얼이 빠진다.
20여명에 달하는 대륙의 무법자들은 하나같이 검은 바가지를 쓰고 있고 검은색 유니폼과 검은색 가죽장화를 신고 있다. 하지만 장화 옆에 박차는 달려 있지 않다. 그들이 타고 있는 말들은 하나같이 눈부시게 빛나는 은빛 몸체를 갖고 있다.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부족할 만큼 그 몸체가 정말 수려하다.
한결같이 '한 덩치'하는 무법자들은 거만하고 도도하게 상점 안에 들어와 상점 안을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모두가 미국의 자존심인 명마(名馬)'할리 데이비슨'을 탄 무법자들이다.
더럽고, 상처투성이인 나의 자전거는 앙상한 해골 같은 몸을 오들오들 떨면서 주유소구석에 애처롭게 서있다. 나는 아주 덩치가 크고 힘 꽤나 쓸 것같이 보이는 한 무법자에게 다가가 너희들은 오토바이로 캐나다를 횡단해 본 적이 있냐고 묻는다. 그는 깜짝 놀란 얼굴로 결코 없다며 온몸을 부르르 떤다. 나는 나의 어깨에서 뼈 소리가 날만큼 어깨를 활짝 펴고 위풍당당하게 나의 자전거 앞에 서서, 나는 자전거를 타고 한국을 출발해 세계를 돌아, 물론 캐나다를 동서로 횡단하며 여행을 하고 있다고 우렁차게 부르짖는다. 나의 강력한 메시지를 듣자마자, 그는 갑자기 아득히 작아진다.

매니토바주를 들어서자마자, 아주 고요한 44번 국도선상에 있는 마을, 웨스트 호크 레이크(West Hawk Lake)에 있는 유일한 식당,'나이트 호크 식당(Nite Hawk Restaurant)'
식당 안에 들어서자, 나는 포근한 진노랑의 소나무 천장, 붉은 장미꽃과 따스한 샹들리에의 불빛에 포근함을 느낀다. 순식간에 예쁘고, 젊은 웨이트리스들에게 둘러싸여 나는, 이미 내 정신이 아니다.[사장인 샤론(Sharon)이 웨이트리스 ‘총 집합 령’을 내렸다.]


패치를 갈아대며 역주를 거듭한 끝에, 밴쿠버는 어느새 내 앞에 나타나고 이미 초여름의 날씨가 되어있다. 뉴욕시(市)의 입지조건과 아주 흡사한 밴쿠버시(市)이다. 도로도 뉴욕시의 그것처럼 바둑판식으로 되어있고, 건물이나 교회건물도 뉴욕시의 그것과 거의 흡사하다. 하지만 몬트리올에서도 그랬듯이 이 곳은 뉴욕시에 비해 너무 조용한 것 같다. 도시의 상징인 소음이 적으니 어째 이상하다.
뉴욕시티는 정말 시끄럽다. 많은 공사장에서 들리는 대형 해머소리, 앰뷸런스, 경찰사이렌, 소름이 끼칠 정도로 요란한 소방차의 사이렌 등등. 이런 끔찍한 소음과 더불어 빽빽이 들어 서있는 고층빌딩의 행렬 속에서 하루하루의 일과는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간다. 그 숨 막히는 인간과 빌딩의 철조망 속을 잠시 뛰어넘어 마음을 진정시키고 심호흡을 할 수 있는 곳이 정확히, 뉴욕시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센트럴 파크(Central Park)인 것이다.
밴쿠버시의 서북쪽으로 돌출한 곳에 위치한 스탠리공원(Stanley Park)은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정확하게 연상시킨다. 센트럴파크는 지극히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공원이지만, 이곳은 더욱 크고 자연 그대로의 숲이며 숲 자체도 수많은 고목과 함께 나무들로 빽빽하다. 캐나다의 모든 것은 자연 그 자체인 것 같다. 자전거를 탄 많은 사람들, 많은 산책객, 그리고 많은 관광객으로 공원은 생기와 여유가 넘치는 삶의 현장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서 도시에서 자라고 도시만 돌아다니며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도시의 빌딩도 좋고 도시의 소음도 좋다. 자연은 자연 그 자체로 좋다. 도시에는 인간이 있고 인간의 치열한 삶이 있으며 인간의 냄새가 절어 있어 좋다. 나는 자연의 소리도 사랑하지만 도시의 소리 또한 사랑한다. 뉴욕, 브루클린 출신의 닐 다이아몬드(Neil Diamond)의 노래, '아름다운 소음(Beautiful Noise)'의 경쾌한 리듬의 해머가 나의 온몸을 두드린다.

공항을 향해 달린다. 빗방울은 쉼 없이 차창 위를 두드리고 우리의 머리 위를 두드린다. 창문에 스쳐지나가는 밴쿠버시내의 풍경들 위로, 가난과 좌절의 두 재수생이, 그리고 운명처럼 이어졌던 똑 같은 굴레의 연속되는 회전 속에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며 종로의 골목을 헤매던 20대 후반의 사나이 둘이, 나타났다가 이내 빗물 속에 녹아 흘러내리며 사방에 흩어진다.
그리고 또 다시 20여년이란 긴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그리고, 오늘 우리의 만남은 곧 우리의 또 하나의 과거가 되어 미래의 창 위에 비추어지겠지.


2008년, 6월1일. 나는 드디어 20여년 만에 내 친구(서사택)를 만났다. 한 사나이는 자신의 홈그라운드도 아닌 고독한 외지(外地)에서 당당하게 입신(立身)한 성공한 사업가로서, 그리고 또 다른 한 사나이는 그와 똑같이 홈그라운드가 아닌 고독한 외지(外地)를 떠도는 '세계의 무숙자(無宿者)'가 되어 눈만 뜨면 운명처럼 페달 밟기를 계속하고 있는 자전거 여행자가 되어 이렇게 만났다.
그와 그의 모든 가족들의 뜨거운 환대에, 지난 2달간의 캐나다 횡단으로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이미 천국의 구덩이에 '텀벙' 빠져 해롱댄다. 나는 연일, 내 친구의 식당인 '왕가마'에서 그동안 '악전고투'해왔던 나의 뱃속에 질좋은 기름칠을 하고 있다. 태어나 처음으로 "무위호식(無爲好食)"을 하고 있다.

일주일은 짧은 한 여름 밤의 꿈처럼 지나가고, 나는 또 떠나야 한다. 한 평생, 내가 운명처럼 해왔던 것처럼,......
공항에서 내 친구와의 짧은 대화, 그리고 아쉽고 긴 이별. 말없이 바라보는 눈길 속에서, 서로의 진솔한 바램은 오직 서로의 건강뿐. 우리 건강한 모습으로 또 만나자!

나는 대(大)캐나다의 지도 위에 동에서 서로 아주 선명하고 확실한 선(線)을 그어버렸다. 지난 두 달간 내가 경험했던 길고도 고통스러웠던 시간은 이미 순간이 되어버렸다. 군(軍) 제대 후, 군 생활을 했던 '강화도(江華島)'를 향해 오줌도 누지 않겠다던 내가, 제대 후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이 바로 그곳. 이제 캐나다는 나에게 제2의 '강화도'가 되었다.

내가 결코 잊을 수 없는 땅, 자연 그 자체의 나라, 대(大)캐나다를 뒤로 하고, 나는 제2의 고향과도 같은 일본을 향해 태평양을 힘차게 날아오른다.

온타리오주의 마지막 부분인 케노라(Kenora)를 약 40km남기고, 겨울이라 철벽으로 봉쇄되어있는 유적지사무실을 포기한 후, 사무실 건너편에 있는 나무장작보관소 아래에서 야영을 했다.
5월 3일이었지만, 호수 가엔 여전히 얼음과 눈이 그대로다. 내 짐이 하나 늘어났다. 그것은 바로, '모리스'로부터 받은 인조 솜 침낭(보라색)이다.


로키산맥에는 정말 곰이 많다. 특히 크레스톤(Creston)에서 나쿠숲(Nakusp), 쉘터베이(Shelter Bay)를 거쳐 레블스토크(Revelstoke)까지 가는 길은 인적이 별로 없는 고요한 숲 속의 길로, 외로운 방랑객인 나를 위해 곰들이 '깜짝 출현'을 계속했다.
도로주행 중, 목격되는 많은 사슴과 무스(Moose), 여우와 들개, 곰들은 카메라를 꺼낼 때까지만 해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서 있다가도, 카메라를 눈에 들이대는 순간에 바람처럼 날라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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