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막을 벗어나다.
에디터 : 박규동

2011년 07월 30일   土   맑음
39.3km운행.    마을에서 야영 41도53'08.64+113도07'00.53

어제 저녁부터 비가 그치고 날이 개였다.
아침이 상쾌했다. 남은 물과 쌀을 털다시피해서 밥을 해 먹었다. 네 식구라 먹는 것도 만만찮다. 짐을 꾸리는 동그람이는 어떻게 하면 짐을 조금이라도 더 줄일 수 있을까 고민이 많다. 또, 여행전문 자전거 셜리의 드롭형 핸들바가 아무래도 사막지형을 가기에는 힘이들 것 같아 고민을 한다. 우리도 트레일러에 짐을 싣는다. 나처럼 트레일러에 길들인 자전거여행가는 뭐니뭐니해도 트레일러만한 게 없다고 우긴다. 60대 부부 둘이서 두 바퀴 트레일러를 끌고 고비사막을 넘었으니 왜 아니겠는가!


북쪽으로 먼길을 가는 동그람이 부부의 행운을 빈다.

가는만큼 집이 가까워지는 우리는 남쪽으로, 가는만큼 집에서 멀어지는 동그람이네는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우리는 헤어졌다.
부디 건강하게 잘 다녀오기를 기원하면서 뒤를 수 없이 돌아다 보았다. 2km까지 뻔히 보이는 직선도로에서 그들이 사라지는 걸 보면서 우리도 우리의 길을 달렸다.

아내의 기지로 지나가는 식품트럭을 세웠다.
식품을 도매로 공급하는 차량인 모양이다. 아쉬운대로 물과 빵, 쥬스 등을 구입하였다. 식중독이 남아있는 나로서는 음식에 마음이 없지만 아내는 나를 위해 탈이 없을 것 같은 재료를 구하느라 혈안이다.

무슨 식물인 꼭 양떼를 닮았다.

그럭저럭 점심 때에 주유소와 식당이 마주보고 있는 작은 마을 신민시앙에 닿았다.
주유소 한켠에서 물을 팔고 있었다. 주유소에서 물을 사고나서 음식점에 들었다. 밥을 주문하였으나 만두 종류밖에 없다고 하여 그거라도 시켜서 먹었다. 식사를 하고나서 돈을 지불하려고 하는데 여자주인이 식대를 받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자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고맙다고 몇 번이나 손을 모아 인사를 했다.

음식값을 받지 않아 우리를 놀라게 했던 식당

조그마한 고개를 넘고 대형 간판으로 된 문을 통과하고나니 갑자기 녹색초원이 펼처졌다.
유채밭이 끝도 한도 없이 펼쳐져 있고 나무의 군락이 틈틈이 서있는 풍광은 분명 낙원의 입구였다. 사막이 끝난 것이다.
아! 나무가 있었다. 유채꽃에 꿀을 구하러 날아온 벌떼들이 무슨 구름같다. 벌통에서 꿀을 걸러내는 양봉 부부를 만났다. 꿀을 샀다. 꿀을 사서 트레일러에 싣는데 부부가 우리를 자기들 집에 초대를 한다. 꿀차를 대접 받았다. 낙원에서 마시는 꿀차는 천국처럼 달았다.

지나가는 차량에서 내린 사람이 카메라를 들이대며 질문을 수 없이 한다.

평안을 기원하는 이 간판으로 된 문이 사막과 낙원을 가르는 경계인 듯하였다.

고개를 넘자 상그릴라처럼 펼쳐진 유채꽃 세상

양봉하는 부부에게서 대접 받은 꿀차는 천국의 맛이었다.


G208도로에 나타난 낙원, 사막을 벗어나 처음 맞은 마을의 정다운 풍경

중국 교통의 주류 3륜차량


마당에 텐트를 치도록 도와준 주인집 가족들

오후 3시가 조금 넘어 마을을 만났다.
기운이 달려서 나는 쉬어갔으면 했다.
길가에 식당처럼 생긴 집이 있어서 들어갔는데 남편이 다리를 다처서 식당을 접었다고 했다. 그럼 마당에 텐트를 치고 하룻밥 묵어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라고 했다. 마당 안쪽으로는 창고와 해바라기밭이 있었다. 가까운 곳에 화장실도 있었고. 텐트를 치고 느긋하게 쉬고 있는데 밥야크 트레일러를 달고 자전거여행을 하는 서양인 한 명이 우리가 있는 마당으로 들어왔다. 주인에게 텐트를 쳐도 좋으냐고 묻더니 바로 옆에 텐트를 첬다. 우리가 텐트를 치고 있는 걸 보고 들어온 것이다.

"I am Joe, from Australia!(저는 호주에서 온 '죠'입니다)"하며 인사를 건넨다.

울란바타르에서 우리의 뒤를 따라온 거란다. 피곤을 잊고 죠와 나는 오래만에 만난 자전거친구처럼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고비에서의 여정, 물, 바람에서부터 밥야크 외발 트레일러에 대한 이야기까지 30대인 그의 열정은 끝이 없었다.
나도 호주대륙 횡단을 했던 1996년도 이야기와 아내와 둘이서 고비에서 헤맨 이야기를 했다. 죠는 감탄을 하면서 엄지를 여러번 세워준다.

아내 불근늑대와 아낙네들의 공용어 수다

호주의 젊은이 죠와 나눈 자전거 수다

이번 여행에서 얻은 가장 값진 일은 "공용어"에 대한 교훈일 것이다.
"공용어" 란 언어소통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 몸짓, 손짓, 표정, 짧은 단어 등으로 소통하는 원초적인 대화방법을 내나름으로 "공용어"라 한 것이다.
영어와 한문, 몽골어를 조금씩 배우기는 하였지만 영어말고는 극히 초보수준의 몽골어 실력에, 더구나 한문은 중국식 발음으로 배우지 못 했기 때문에 현지에서는 언어로 전혀 사용할 수가 없었다. 중국이나 몽골은 냉전시대에 공산국가에 속해 있었기에 영어는 보급되지 않았다. 따라서 여행지에서 만나는 현지인들과 영어로 소통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나그네와 현지인 간에 나눌 수 있는 대화의 방법은 내가 현지어를 잘하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바로 공용어를 구사할 수밖에 없다.
공용어에는 진정이 담긴다.

현지어를 잘 한다고 하여도 말을 나누다보면 말잔치가 될 수도 있고, 더러는 그 말로 사람을 속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공용어로는 솔직하고 성실하지 않으면 대화가 되지 않는다. 말이 통하다보면 말 속에 뼈있는 부정의 의미까지 전달되는 수도 있지만, 공용어를 나누다보면 표정과 몸짓을 해석하는 여과 과정을 통해 서로간에 부정적인 의미는 소멸되고 오직 긍정적인 의미만 전달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공용어가 갖는 긍정의 힘에 놀라곤 하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절실한 진실이 교통되는 것이다.

동네 아줌마 둘이 아내를 만나러 우리 텐트를 찾아왔다. 나는 자리를 피하여 멀찌감치에서 수다를 치는 아낙네들을 바라본다. 중국어를 한 마디도 모르는 아내가 펼치는 공용어 수다는 어디서 온 것일까?
아내 불근늑대는 공용어의 달인이 되었다. 아마도 아내의 착하고 순수한 영혼 때문일 것이다.



2011년 07월 31일   日   맑음
54.6km 운행.   집마당에서 야영 41도24'32,20+113도10'37,19

여행을 떠나지 꼭 한 달만이다.
걱정을 했던 사막 구간을 큰 탈 없이 통과하였다. 이제부터는 습한 더위와 음식과의 싸움이 될 것이다. 내일이면 울란차부를 통과하게 된다.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던 G208도로에서 서에서 동쪽으로해서 베이징까지 가는 G110도로를 갈아타면 중국의 하북성을 관통하는 것이다. 이 길 G110번도로에서 자운 팀도 만나게 될 것이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다. 자운님과 트리스탄님.

지난 밤을 지낸 마당 옆. 길성고조(吉星高照), 그 아래 쌓인 술병......

길가에 나무가 심어져있는 게 좋다.
나무가 나그네 자전거여행자에게 주는 위안이 작지 않다. 점심 때에는 자작나무 그늘 아래서 밥을 먹고 낮잠도 잤다.
고비사막에서처럼 긴장감이 없다보니 길이 하염없다. 따라서 길(道)이 주는 공부가 많다. 오체투지하는 순례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명 길에서 배우는 게 있다. 나를 찾아가는 도리(道理)가 곧 길인 걸 배우는 것이다.

계획적으로 심은 나무가 모조리 죽어있는 모습



마을을 지나면서 먹거리를 장보았다. 쌀, 물, 절인 오리알...... 배탈이 나고나서 아내는 나에게 소금에 절인 오리알을 반찬용으로 먹게 해 주었다. 짜고 담백한 것이 밥을 물에 말아서 먹을 때에 딱이다. 가격도 싸고 보관도 수월하여 애용품이 되었다.

낮잠을 자고 한참 오다니 왼쪽으로 예사롭지 않은 산이 나타났다.
휴화산이다. 오래 전에 화산이 폭발하여 그 흔적이 뚜렸하다. 검게 탄 화산암이 파편으로 주변에 널려있다. 서쪽 사면에는 대각선으로 길이 나 있다. 관광객이 하나 둘이 아닌 모양이다. 옆 마을에는 숙박용 게르가 즐비하고 먼 곳에 호텔로 보이는 건물도 있다.


화산 꼭대기를 오르기 위한 층계 길이 대각선으로 놓여 있다.

호수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멀리 도시 요이호우치가가 나타났다.
화력발전소가 눈에 띈다. 석탄을 연료로 쓰는 화력발전소는 매연이 심해 보인다. 하늘의 색을 바꿔놓을 만큼이다.


화산 부근에 있는 숙소용 게르

몽골을 상징하는 게르형 지붕으로 새 집을 짓고 있었다.

교통경찰서

마을의 뒷산에는 말 탄 용사들을 그림으로 크게 그려놓았다.

이 도시에서 하룻밤을 묵어야겠는데 하면서 길을 달리며 숙소를 찾았다. 숙소는 보이지 않았고 도시의 중심가를 지나쳤다. 도심을 벗어난 곳에서 담을 크게 친 마당 넓은 집을 찾아들었다. 어제처럼 마당에서 야영을 할 생각에서다.

40대의 남자 주인은 인상만큼이나 착하게 우리의 청을 들어주었다. 청을 들어주었을뿐 아니라 20리터들이 물통에 물도 한가득 채워다주었다. 저녁을 먹고나서 그와 나는 마당에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공용어에 오늘은 한자를 보태어 쓰는 필담까지 등장하였다.
그는 오랜 군대생활을 하였고 여기다 상가를 지어서 세를 놓을 생각이라고 했다. 그도 나처럼 이런 여행을 꼭 해보고 싶다고 몇번이고 다짐을 했다. 한국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명함을 건넸다.

집의 마당에 텐트를 치면 좋은 게 많다. 사람을 사귈 수 있고,
나쁜 사람들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담 가까이 텐트를 지었다.
좋은 잠을 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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