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땅, 중국으로
에디터 : 이호선

"你 好(니하오), 中國!"
인천항에서 25시간의 긴 항해 끝에 중국대륙의 시작, 천진항에 도착한다.
드디어 자전거세계일주의 대장정이 시작된다. 자, 이제부터 내가 가지고 있는 세계지도위에 비록 가늘지만, 아주 선명한 선을 긋기 시작한다.


25시간의 항해 끝에 천진 항에 도착한 후 나는 곧바로 북경(北京)을 향한다.
달려도, 달려도 변화 없이 평평한 넓은 도로, 역시, 중국은 넓다! 이곳의 넓은 자전거도로는 자전거여행자인 나에겐 최고의 기쁨이다. 이곳의 주요 교통수단은 자전거, 혹은 엔진이 달린 자전거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교통통제시스템이 단순 모호해서 파란불 하나에 직진해 들어오는 차와 좌, 우회전 차량이 엉킨다. 그리고 사람, 자전거, 오토바이가 시도 때도 없이 차선으로 끼어든다.
무엇보다 나를 고통스럽게 만든 것은 무차별로 울려대는 경적소리다. 한국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 울분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게 했던  그 경적소리가 여기에 와서 보니, 완전 자장가 수준이다. 게다가 지나가는 자동차의 창밖으로 튀어나오는, 마시고 난 음료수의 빈 통들과 비닐봉지들로 정말 어지러운 곳이다. 지금 이곳의 사람들이 그 짓을 당연히, 그리고 태연하게 하고 있듯이, 우리도 한 때 (60, 70년대)그렇게 했었다.
이곳에 하늘은 없다. 수많은 공장의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연기와 무차별로 토해내는 삼륜트럭의 시커먼 배기가스, 그리고 메마른 황토에서 피어오르는 뽀얀 노란 먼지. 분명 건물들마다 칠해진 고유한 색깔이 있고, 나무들도 고유의 초록색을 가지고 있으나, 나의 눈과 뇌에 각인 된 색이란 '죽음의 색', 잿빛 하나이다.
이곳은 평지라서 그런지 기어 달린 자전거가 단 한 대도 없다. 내 눈에 보이는 자전거는 거의 모두가 10년 이상은 됨직한 무쇠자전거이다. 녹이 슬대로 슬었고 바퀴는 휘어져 정확히 굴러가고 있는 자전거를 찾아보기란 거의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 수준이지만, 그래도 모든 자전거에는 아주 크고, 묵직해 보이는 쇠사슬과 쇠 자물쇠가 걸려 있다.
북경시의 초현대식 빌딩들 사이의 어두운 골목길에는 아직도 1900년대 초를 연상시키는, 이미 무너져버린 벽돌집에서 사는 많은 도시의 노동자들이 있다. 비록 그곳은 어둡고, 그들의 땀 냄새로 퀴퀴하지만, 힘겨운 노동 후에 그들에겐 정말 맛있는 맥주, 칭타오(靑島)가 기다리고 있다. 웃통을 벋고 셔츠를 어깨에 건채로 그들은 거리의 곳곳에 되는대로 앉아서 칭타오를 마시고 노래를 부른다. 그들에게 칭타오가 있는 한 그들의 삶은 계속 될 것이다.

승천하는 용(龍), 승천하는 대국, 중국이지만 아주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그야말로 치열한 삶의 현장이 계속된다. 비록 무너져가는 집에서 살지언정, 중국인들은 잘 먹는다. 도로변을 따라 시장과 노천식당들이 줄을 이으며, 먹 거리가 풍부하다. 무엇보다, 중국인들은 아주 부지런하고 억척스럽다. 움직이면 절대 굶지 않는다.


먼지와 스모그로 휩싸여 더 이상 하늘이 존재하지 않는 북경을 미련 없이 뒤로하고 작열하는 태양 아래 대륙의 도로를 달린다. 북경에서 오로지, 국도107번을 타고 종단을 계속한다. 도로변에는 시장과 식당들이 많이 있어 배를 곯는 일은 없으나 물이 없다. 겨우 마실 수 있는 물이란 한 여름에, 펄펄 끓인 물뿐이다.(수질이 안 좋아 반드시 끊인다.) 하는 수 없이 물을 사 먹는다.
큰 도시임에도 공중화장실에는 수도꼭지조차 없다. 그저 군대 야전변소처럼 구멍만 뚫려있을 뿐 칸막이도 없이, 모두들 사이좋게 나란히 앉아 큰 일을 보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 손으로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나간다. 그래도 21세기 현대인답게 용변보고 세수라도 할 수 있는 곳은 간간이 나타나는 Sinopec(중국석유)주유소.
호북성(省)의 성도(省都), 우한(武漢)근처에서 길이 갈래갈래 터진 내리막길에서 한 번의 '풍덩'으로 바퀴살 5대가 부러지는 절대 절명의 위기에, 눈앞의 온 세상이 노랗게 변하고 식은 땀이 쏟아진다. 우째, 이런 일이?!?! (이 사건 후 곧바로, 자전거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내가 가진 짐의 무게 줄이기에 돌입해서 심지어 헬멧까지 집어버린다.)
동네 자전거 수리점에서 내 것보다 굵고 긴 바퀴살을 막무가내로, 벤치로 끊고 망치로 두드려 구부려 얼기설기 얽어맨 후 홍콩까지 1500km를 완벽하게 주파를 하고 만다. 인간만세! 자전거 만만세!!
건조한 황토의 하북성, 하남성을 지나고 호북성의 남부에서부터 호남성에 이르러 드디어 우리나라의 시골풍경이 재현된다. 짙푸른 계곡에 물이 흐르고, 들엔 벼가 익어가고 파란하늘에 공기 또한 맑다. 푸른 자연이 그 동안 혼돈 속에 겉돌던 내 생체리듬을 정상으로 돌려준다. 불타는 8월, 그리고 9월 초순의 태양아래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 보면, 배낭조차 없이 큰 비닐주머니나, 긴 자루를 주렁주렁 어깨에 메고 그저 비닐슬리퍼 하나 신고 떡이 되어 덩어리진 긴 머리를 하고 도로를 따라 끝없이 대륙을 횡단하고 있는 대륙의 무숙자들과 조우하게 된다.
그들은 정확히 나처럼, 혼자 다니며 도로 바로 옆 갓길에서 그대로 쓰러져 자는데, 어둠 속에서 질주하다가, 나는 몇 번이나 길가에서 자고 있는 그들의 손과 발, 그리고 얼굴을 수cm차로 스쳐 지나가곤 한다. 어둠 속에 누워있는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온몸에 소름이 쭈-악 끼치고, 나의 머리카락이 꼿꼿하게 곤두서는 경험을 하곤 한다.
홍콩은 자전거로는 공략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자전거로는 달릴 수 없는 고속도로와 자전거를 위한 공간이 전혀 없는 국도가 계속된다. 홍콩영화에서 본 그대로, 중심가에는 이층버스와 이층전차, 그리고 많은 택시들이 도로를 메우며 달린다. 차로(車路) 이외에는 한 치의 여유도 없는 좁은 길을 나는 약 30여 분간, 차와 전차, 그리고 이층버스 사이를 곡예를 부리듯 달렸다. 이제껏 결코 보지 못했던 '자전거를 탄 무법자'의 질주에 지나가던 수많은 행인들의 시선이 멈춘다.

해발 4000m의 고지를 향해 오르던 중 만난 자전거여행자, 팀(Tim)과 스테피(Stepie). 그들은 호주의 브리즈번(Brisbane)출신으로 동남아시아를 투어 중이라고 한다.
그들은 내가 이 여행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만난 '국제 자전거 여행자'들이다. 팀은 "나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 커피 없는 인생은 죽음이다."를 부르짖었다. 뒤돌아서는 나에게 팀은 어디서 배웠는지 "一 路 平 安(yi lu ping an)"를 외친다. 우리는 한참동안 얼굴이 찢어지고, 배가 아프도록 웃었다.


나는 10여 년 전, 자전거 메신저를 하며 뉴욕의 맨해튼을 누볐듯이 코우룽(九龍)의 한 복판을 한줄기의 바람이 되어 달린다. 수많은 인파가 보도를 완벽하게 덮고 있으며 도로를 따라 빌딩들이 빽빽하게 늘어서있다. 끝이 없이 뻗어 올라간 많은 고층빌딩으로 인해서 이곳에도 하늘은 더 이상 없다. 한 마디로 콩나물시루 같은 도시다. 묘하게, 이 콩나물시루 같은 도시가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왜?! 그것은 아마도, 진한 사람냄새 때문이리라.
홍콩에 도착해서 정말 오랜 만(30년)에 나의 외사촌 형들과의 재회를 한 후 다시 광동성으로 나와 동완(東莞,Dongguan)시에 있는 '후지 바이크' 공장에 가서 뒷바퀴를 통째로 교체(A/S)한다.(내 자전거는 투어용 '후지 바이크'이다.)
다시 광동성의 광조우로, 그리고 이제부터는 서쪽으로 중국횡단을 한다.(국도 324) 비를 피해 급히 들어간 도로변의 버려진 듯한 농가창고건물에서 자다가 꿈속에서 당한 연달은 직경 15cm에 달하는 바위덩어리 세례에서, 나는 무사했고, 내 자신이 행운의 사나이임을 다시 한 번 확인을 하게 된다.(분명 진흙 바닥에 통나무만이 어지럽게 굴러다니는 조그만 창고였으나 그곳은 두 모녀의 보금자리였다.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나에게 두 개의 대형 '바위(!) 폭탄'을 발사했으나, 운 좋게 나를 빗겨갔다.)
도로에서 일어난 삼륜트럭 전복사고현장에서 피를 흘리며 의식이 없는 서너 살 박이 아들을 잡고, 역시 피를 흘리며 통곡을 하고 있는 아낙네가 나의 심장을 멎게 한다. 물론 운전석에는 생사조차 알 수 없는 그녀의 남편이 있다. 출동한 경찰은 사고 피해자들의 상태엔 전혀 개의치 않고 멀리 떨어져 전화만 하고 있다. 나는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를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듣지를 못했다. 
5개성(省)-하북, 하남, 호북, 호남, 그리고 광동-을 지나 홍콩까지 종단 후, 다시 서쪽으로 5개 성(省)-광동, 광시, 운남, 귀주, 그리고 서장(티베트)-을 뚫는다. 광동, 광시, 운남, 귀주지방은 장대한 자연이 끝없이 펼쳐지며 나를 감동시킨다.
운남성(云南省)의 북쪽지방(티베트와의 접경지대)인 샹그릴라(香格里拉)와 떠친(德欽)사이에 있는 백망설산(白芒雪山,頂上;해발5,030m)을 통과하는 해발4,000m의 높은 도로-'하늘로 통하는 길'(자칭, 천상로(天上路,the Road to Heaven)-를 3일 동안 자전거를 밀고 올라 넘을 때는 정말 힘겨웠지만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고산(高山)들과  낱개가 아닌, 별 덩어리(星群)의 진하디 진한 별빛이 흘러내리는 하늘아래에서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백망설산(白芒雪山: 정상:5030m)을 통과하는 도로의 최고점인 해발 4,000m의 자칭,'‘천국으로 가는 길(天上路)'은 고행(苦行)의 길이었다. 하지만, 숨 막히는 내리막길에서 나는 한 마리의 독수리가 되어 태고의 신비 속에 비행을 계속한다. 해발 4,000m까지 이어진 오르막길(좌)과 해발4,000m를 알리는 표지판(우)


이곳의 산은 그 어떤 수식어가 전혀 필요 없는, 그저 '산(山)' 하나로 너무도 완벽하고 충분하다. 티베트 입구에서부터 착검한 소총을 들고 경계근무에 임하고 있는 중국군 병사들, 곳곳에서 목격되는 중국군 병사들과 티베트의 민가에조차 강제적으로 꽂아놓은 오성기의 행렬을 보며 그곳의 긴장감을 감지하기 시작한다. 순수하고 해맑은 티베트인들이지만 그들은 너무 가난하고 무력하다.
티베트인들의 대 중국감정은 상상이상이다. 그들의 어느 누구도 중국 글자를 공부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대가로 그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집주소조차 모르고 산다. 그들에게 유일한 라이프라인(Life Line: 생명줄)은 휴대폰이다.
그들의 주식으로는 우리의 미숫가루와 비슷한 곡식가루를 그저 물과 함께 손으로 뭉쳐서 먹고, 건조된 치즈를 손으로 뜯어먹는다. 또한 카레비(Karebi)라는 음식이 있는데, 카레국물이 들어간 밥, 감자와 야크고기를 같이 볶은 것과 무채가 전부이다. 손님인 나를 위해 그들은 우동을 끓였는데 그것에는 로메인 배추 몇 이파리하고 뭔지 모를 덩어리 4개가 꼭대기에 올려져 있었는데, 씹어보니 명백히 살점이 전혀 붙어있지 않은 돼지비계다. 하지만 아주 아삭아삭하다. 아마도 장기간 건조시켰던 것 같다.
전력이 충분치 않은 듯 백열전구 한 개가 겨우 실내를 밝히고 있고 흑백 TV 한대가 가까스로 나온다. 태양열을 이용해 자가발전으로 만든 전력으로 살고 있는 듯하다.
방구석에 설치된 '달라이라마'의 제단에는 매일 차(茶)를 새로 갈아 올린다. '달라이라마'는 그들의 아버지이며 신이며 그들의 모든 것이다. 그들은 틈나는 대로 무언가 중얼거리며 108염주와 함께 경전을 외운다. 내가 '달라이라마'를 옹호하고 중국을 비판하자 그들은 아주 기뻐한다. 불행한 일은 30대로 보이는 이 젊은 부부뿐 아니라 아이들까지 모두가 중국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그래도 한국을 알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들의 사진을 찍고 나중에 보내준다고 주소를 물으니 그 누구도 주소조차 한자로 쓰지를 못한다. 숨이 막힌다. 나는 마루바닥에 카펫을 깔고 덮고 잔다. 아주 따뜻하다.

라싸(Lhasa)의 네팔영사관 창문이 열린 시간은 10시 15분이다. 정확히 12시가 되자 영사관의 문은 닫힌다.(10시부터 오직 2시간) 바로 내 앞에서 줄이 끊겨 버린다. 중국군 경비병은 무자비하게 사람들은 밀어낸다. 내 앞에서 간청을 하던 한 젊은 티베트인이 비자신청서를 문안에 떨어뜨렸다. 중국경비병은 얻기 어렵고 작성하기 어려운 그 '비자신청서'를 손으로 줍지 않고 구두 발로 찍찍 밀며 그 티베트인에게 건넨다. 티베트인에게는 손을 사용할 가치조차도 없다는 얘기인 듯한데,......

라싸는 달라이 라마의 궁전인 '포탈라궁(宮)'을 중심으로 아기자기하고도 재미있는 관광도시이다. '포탈라 궁'의 앞엔 광장과 공원이 있고 많은 라마 순례 객과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포탈라궁'을 향해 수없이 절을 하고 있는 라마순례 객들이 자주 눈에 띈다. 아주 평화스러운 풍경이지만 궁 주위를 온통 뒤덮고 있는 붉은 오성기(五星旗)의 물결은 싸늘한 저녁바람이 되어 온 몸을 움츠리게 한다.
라싸의 '북경동로(北京東路)'에 있는 티베트마을은 아주 이국적인 거리다. 이제껏 보지 못한 티베트인들의 음식이 즐비하고 전통적인 복장의 티베트인들의 리얼한 삶의 모습이 그대로 보여 진다. 라마교의 순례 객들과 많은 외국 관광객들로 하루가 짧아 보일 만큼 재미있는 곳으로 보이지만 시내는 무장군인들과 전투경찰들로 철통같이 봉쇄되어 있다.

티베트지역에서 비자문제가 발생하면 최악이다. 중국인관리들 그 누구도 외국인을 돕지 않는다. 또한 이곳 주민들과 함께 장거리버스조차 타기 어렵다. 외국인관광객과 티베트인들이 함께 섞이는 것을 철저히 방지한다.
나는 촉박한 비자일정에 쫓겨 비자기간연장을 위해 동분서주 했으나 "우리는 모른다!"라는 대답뿐이었다. 결국 나는 낮에도 그리고 밤에도 자지 않고 네팔로 가기 위한 마지막 길인 '프렌드쉽 하이웨이(Friendship Highway)'을 숨가쁘게 달리며 국경돌파를 시도했지만 히말라야의 국경을 넘는 동안 쏟아지는 비와 어둠의 산속에서 길(니알람(Nyalam)에서 장무(Zhangmu)까지 가는 길)을 잃고 비자만료일이 하루 경과되었다.


나는 하북성(河北省)의 북경(北京)을 시작으로 중국대륙을 종단과 횡단하면서 9개성(省)과 성도(省都)를 지났는데, 모든 성도(省都)의 한복판에는 '북경로'(Beijing Road)가 달리고 있다. "모든 길은 북경으로 통한다!"

나무로 지어진 횡 한 실내의 한복판에는 직경1.5m정도의 둥근 원통형의 기둥이 있다. 이들은 그것을 돌면서 무언가 염원할 것이다. 구석에는 달라이 라마의 초상이 걸려있는 제단이 있다.
매일 새로운 '차'-치즈덩어리를 으깨어 대나무 통에 넣고 뜨거운 물을 그 안에 부어 그 물을 '차'라고 마신다. 처음, 이것을 마시기위해선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 된다. 그들이 살고 있는, 태고의 신비로 가득한 자연만큼이나 순수하고 해맑은 티베트인들이지만 그들은 너무 가난하고 무력하다.


중국인들은 정말 끈질기고, 부지런하고, 억척스럽다.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조차 아주 많은 일들이 모터 달린 기계가 아닌, 인간 기계인 사람들의 피땀으로 이루어진다.
인구 대국답게 많은 사람의 손과 발들이 결국, 중국의 기계화를 상당히 지체시키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꽝조우(廣州)같은 대도시에서도 많은 이들이 무거운 무쇠자전거로 제일 큰 생수 통(10리터정도)를 10개 이상이나 싣고도 태연히, 그리고 묵묵히 땡볕 밑의 아스팔트를 기다시피 달려간다.


나는 진정 부자(富者)다. 도로를 달리다가 쓰러지는 이 지구 상의 모든 곳이 나의 집이고, 호텔이고, 그리고 나의 방이다. 이 대지(大地)는, 외로운 여행자가 되어 바람과 싸우며 바람과 함께 세상을 떠돌고 있는 나를 항상 부드럽고 따스하게 감싸준다.
풀과 나무들로 가득 찬 숲은 나에게 항상 포근한 안식처를 제공한다.


'리틀 라싸(Little Lhasa)'라고 불리는 윈난성(云南省)의 샹그릴라(香格里拉)에 있는 라마사원, 송찬림사(松贊林寺). 바깥은 아주 세밀하고 화려한 색채였으며 내부는 아주 웅장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절은 라싸에 있는 라마교 성지의 축소판이라며 그 아름다움에 놀란다. 생전처음으로 겪은 라마사원은 엄청난 충격으로 나를 감동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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