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0~08/21
영하 20도의 구룡령을 넘어 집으로
2011-04-21   쇠말패

2011년 01월 19일  水  맑음  양양- 구룡령-명개리  48km
 
자전거에 트레일러를 끌고 구룡령을 오른다.
오르막하면서 내가 나에게 헌정할 수 있는 건 오직 고통과 성실 뿐이다. 이 고통과 성실한 페달링으로 나는 내 영혼에게 자유를 안겨줄 수 있을 것이다.

양양에서 아침을 맛있게 먹은 식당

인디고뱅크님 첫 펑크

멀리 올려다 보이는 구룡령

아침 9시에 시작한 오르막이 저녁 5시에 끝났다.
해발 1013m인 구룡령을 여덟 시간만에 올랐다. 장기간의 여행으로 모두 체력이 떨어진 데다 네 번의 자전거 고장이 있었다.
양양을 출발하여 3km 쯤 왔을 때에 인디고뱅크님의 뒷 타이어가 펑크가 났다. 펑크를 수리하려고 타이어를 살펴보니 어느 틈엔가 스포크도 한 개가 절단되어 있었다. 추위 탓이다. 추워진 공기가 쇠를 수축하게 하고 수축의 한계를 이기지 못한 스포크가 끊어진 것이다.
내가 예비 스포크를 준비하긴 하였지만 부러진 스포크가 뒤 카세트기어 쪽이라 공구가 없어 스포크 교환을 할 수 없었다. 임시변통으로 부러진 스포크를 흔들리지 않게 옆 스포크에 테입으로 감았다. 휠은 부러진 부분에서 약간 휘어져 있었지만 휠세팅으로 조정을 하여 운행을 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도록 하였다. 구멍난 튜브를 다른 것으로 교체하고 출발하였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그 타이어가 다시 펑크가 났다. 튜브를 새 것으로 갈고 타이어를 뒤집어 속속들이 살핀 다음 조립을 하였다.
한계령과 갈라지는 곳에서 좌회전하여 우리는 남쪽으로 달렸다. 오르막 몇 구비를 돌아가는데 오이쨈님의 체인이 끊어졌다. 펑크 두 번에 스포크와 체인이 절단 되는 고장이 연달아 일어났다. 연이은 고장으로 시간은 지체되고 불안한 기운이 있었지만 우리는 구룡령을 넘는다는 설렘에 빠져 다른 일은 생각지도 못 했다.


구룡령 꼭대기에서

뒤로 멀리 설악산이 보인다

미천골 입구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 56번국도는 차량통행이 워낙 뜸한 곳인데다 지금은 한파로 차량통행이 더 한가로웠다. 1시간에 한두 대의 차량을 볼 수 있었다.
양양에서 구룡령 꼭대기까지는 32km, 전 구간이 오르막이다. 구룡령은 한계령보다 고도가 100m 더 높다.
갈천리에서부터 길은 경사가 급해졌다. 단체일렬 운행을 풀었다. 꼭대기까지 개인의 스타일에 따라 오르기로 한다. 개인마다 신체리듬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정한 속도로 꾸준히 오르는 사람이 있고 빠르게 오른 다음 쉬는 사람이 있다. 긴 언덕은 개인의 취향대로 타는 게 좋다. 나는 느리지만 꾸준히 오르는 체질이다. 내가 뒤로 처졌다. 앞으로 산장지기님과 인디고뱅크님이 내뺀다. 막내 자작나무님이 나를 지키느라 후미에 남는다. 앞 사람이 보였다 말았다 하는 구비 길을 하염없이 오른다.

꼭대기에서 약 30분간 체류하였다.
사진을 찍고 우리가 올라온 먼 길을 내려다 보았다. 멀리 설악산이 아직도 눈에서 떠나지 않고 바라 보였다. 내린 눈은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날씨도 맑았다. 구룡령에서 최악의 상황을 맞으리라 기대 반 걱정 반을 했었으나 모든 게 기우였다. 그저 페달을 성실하게 밟으면 갈 수 있는 길이었다. 약간의 바람과 추위 그리고 지루한 오르막이 있을 뿐이었다. 등산용 아이젠도 준비했었는데......
발목까지 빠지는 눈도 없었고, 몰아치는 눈보라도 없었다. 어쩜 그렇게도 싱거운 길이었다.
 
내리막은 지옥보다 더 추웠다.
두툼하게 입은 고산용 다운파카로 몸은 바람을 피했지만 손과 발은 동상 초기 상태가 되었다. 날은 어두워졌고 구비 구비에는 얼음판이 있었다. 손끝 발끝이 마비되기 시작한다. 영하 20도에 내리막으로 맞는 바람까지 합하면 체감온도는 30~40도는 될 것이다.
내가 앞장을 서서 달리며 휴게소를 찾는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얼음판을 피해가며 30~40분을 내리막하였다. 멀리 불빛이 보인다.
어두워진 겨울 저녁 여섯 시. 삼봉휴게서로 다짜고짜 처 들어가 난로를 에워 쌓다. 주인 아주머니가 놀란다. 따뜻한 쌍화차를 한 잔씩 하고나서야 손끝에 감각이 살아나는 것 같다. 영동에 비하면 영서는 배나 더 추웠다.

영혼은 차가워진 육체를 남겨두고 어디론지 사라졌다.
영혼이 자유로워진 것이다. 아니면 영혼이 내리막하는 육체를 따라오지 못 한 것일까? 아니면 구룡령 정상에서 친구를 만난 것일까?
몸이 난로불에 녹아서 풀리고 배가 고플 즈음에 영혼이 다시 내 몸에 찾아 들었다. 얼이 든 것이다.
 
얼이 빠졌을 때에 우리는 꾀가 났다.
오늘은 텐트를 치지말고 민박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다들 그러자고 했다. 삼봉휴게서에서 1km도 가지 않아 민박집을 만났다. 산장지기님과 자작나무님이 찾아가 큰방을 하나 구했다. 그 와중에 자작나무님은 처형내외를 민박집에서 겸하고 있는 식당에서 우연히 만났다. 자작나무님의 사촌처형 내외는 반갑다면서 우리의 저녁까지 사 주었다. 저녁을 먹고나서 주인의 허락을 얻어 마당 한쪽에 모닥불을 피웠다.
 
마침 오늘이 오이쨈님의 생일이란다. 부인 당근쨈님이 은밀하게 부탁하여 김PD가 축하케익을 준비해 왔다.
구룡령을 넘어선 안도감과 생일 분위로 얼큰해진 모닥불 담론은 오감만족이었다.

명개리 민박집에서

2011년 01월 20일  木  맑음   명개리-창촌-율전-서석-홍천
 
구름에게 길을 묻는다.
집으로 가란다.
세상 모든 나그네가 가는 길, 그 끝이 집이란다.
영혼에게 길을 맡기면 그 길은 끝이 없을 것 같다.
마음에 길을 맡기면 마음은 집을 찾는다.
마음에 몸을 맡기고, 그 몸에 자전거를 맡기면 그 길을 따라서 자전거는 집으로 간다.

은행나무 숲길

상뱃재 오르는 길

겨울자전거여행은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더 무서웠다.
오르막에서는 몸이 더웠다. 그 더위로 추위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내리막에서는 추위를 감출 데가 없었다. 손끝, 발끝에서 스며든 추위는 온 몸으로 파고들어 한기를 뼛속까지 채웠다. 진저리가 날만큼 끔찍한 기억이다. 내리막의 추위는 모든 걸 얼어붙게 하였다. 여행의 낭만도, 겨울바다의 설렘도, 함께 가는 친구들의 우정조차도 때때로는 얼어 붙었다.
내리막의 겨울상처, 그 동상에서 나를 따뜻하게 해 줄 안식처는 어디일까?  그래서 오르막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한파가 보름이 넘도록 이어지며 추위는 한반도의 유행이 되었다.
홍천의 추위는 더 깊고 아렸다. 아릴만큼 투명한 추위는 아침을 더 맑게 만들어 주었다.
명개리에서 창촌까지는  긴 내리막이다. 창촌에서 간식을 하고 율전으로 가는 도중에 800m가 넘는 고개를 하나 더 넘는다. 상뱃재 886m. 상뱃재를 넘느라 추위가 풀린다. 율전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하뱃재를 내리막한다. 헤어핀 코너를 너댓 개 만끽할 수 있는 내리가즘이 있는 길이다. 차가운 바람보다 내리가즘이 더 좋았던 꼬불길이다.
56번국도를 타고 서석을 지나 구성포에서 44국도를 갈아 탄다. 이 길은 수도 없이 드나들었던 길이다. 집으로 가는 낯익은 길이다.

서석에서, 지나던 여중생에게 키타를 빌려 연주하는 자작나무님, 뿅 가는 학생들


구성포에서

날이 저무는 홍천강

홍천에서 날이 저물었다.
모두 긴 여행에 지쳐 있었다. 몸이 지치면 마음도 지친다. 도시에서 텐트를 치자니 지친 마음에 선뜻 내키지 않는다. 자작나무님이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홍천이 고향인 대학선배란다. 대학선배의 주선으로 경로당에서 자게 되었다. 넓은 방은 따뜻하였으나 수도는 얼어서 물을 쓸 수가 없었다.
그래도 감지덕지!

 

2011년 01월 21일  金  맑음    홍천천-양덕원-청운-양평-양수리-팔당-광진교

홍천에서 서울까지는 100km이다.
서둘러야 오늘 중으로 서울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아침 7시에 홍천을 출발하였다. 평소보다 2시간을 앞서 출발한 것이다. 그러나 연이은 두 번의 펑크. 그것도 펑크가 난 데에 다시 펑크, 이럴 땐 타이어에 박힌 작은 가시를 찾느라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벌어 놓았던 시간을 축내고 마지막 날의 남은 길을 달린다.

지나는 길에 차를 대접하여 준 인디고뱅크님 친구

양수대교에서 북한강을 보다


집으로 가는 길

청운을 지나며 44번국도는 6번국도와 합류하여 서울까지 간다.
고속화 됀 도로이다. 평균속도가 오른다. 양수대교를 건너 다섯 개의 터널을 통과한다. 나타난 팔당대교를 보자 발이 따뜻해진다. 팔당대교를 건너 한강변 자전거도로를 탄다.
여기서 광진교까지는 보통 때처럼 달리면 트레일러를 달았다고 하더라도 한 시간이면 충분히 도달할 거리이다. 그러나 눈이 쌓여 있었다. 겨우내 자전거 통행은 없었고 간혹 산책 나온 사람들에 의해서 발자국이 얼어 있었다. 얼어서 투덜대는 눈길은 온몸을 흔들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이번 여행 730km 중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도로를 그냥 타는 건데 하는 후회도 들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길에서 잔꾀를 부리고 싶지도 않았다.
광진교에는 아내들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노을에 물든 아파트

체인을 수리 중

날이 어두워졌다.
앞 뒤로 불을 밝혔다. 엎친데 덥친 격으로 암사동 오르막에서 인디고님의 체인이 끊어졌다. 체인 수리를 하고 마지막 페달링이다. 가슴까지 뜨뜻해진다.
불을 켜고 광진교를 멀리 보고 가는데 아내들의 움직임이 언듯언듯 어둠 속에서 움직인다.

아내는 고향이다.
집이고 나의 신앙이다. 나는 그렇게 아내의 품에 안겼다.
자전거는 나를 실어 아내에게 날라다 준 것이다. 고마워! 나의 애마, 판타지아야!!
60대 만세다!!!

아내들과의 만남

뒤풀이로 광장동의 설농탕 식당에 들렸다. 아내 다섯에 남편 다섯이다.
이 아름다운 다섯 부부에게 사랑의 은총이 가득하길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대한과 소한 사이에서 뜨거운 여행을 함께 해 준 겨울남자 산장지기님, 오이째님, 인디고뱅크님, 자작나무님에게 내 우정을 전한다.
고마워!!!!
 
그리고,
양산-건우 외할머님, 포항-아이스짱님, 울진-공공칠님, 신남-인디고뱅크 후배님, 정동진-오이쨈 딸과 사위님, 명개리-바람개비님 언니 내외, 홍천-자작나무 대학선배님 가족 등이 겨울 나그네에게 배풀어 준 사랑은 영원히 잊지 못 할 것이다. 우리의 영웅들에게 특별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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