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자전거 챔피언 안드레아
에디터 : 이호선

과테말라 국경

과테말라의 수도인 '과테말라'까지 이정표 위의 280km가 선명하다. 멕시코의 후반부에서 시작되던 유사 아열대성 기후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도로를 따라 질서정연하게 도열한 장대 키의 바나나 나무들이 그것들의 잎들을 부채처럼 넓게 펼쳐 은근하게 흔들어 대며 나를 환영하고 들과 산은 숲과 나무들로 빽빽하다. 습하고 푹푹 찌는 날씨에 비 오듯 쏟아져 내리고 있는 땀방울은 그대로 나의 옷을 흠뻑 적신 채 고여있다. 나만 더운가 했더니 이곳 사람들의 얼굴에도 땀이 흥건하다.

과테말라는 역시 작은 나라여서 그런지 도로변으로 마을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으며 숲 속의 어느 곳에서도 사람들이 빈번하게 출몰한다. 내가 예전에 여행했던 네팔과 인디아의 풍경과 완벽한 복사판으로 이들의 삶 또한 그들의 것과 변함없이 숲 속에서 확보한 나무들로 취사를 하고 이곳의 강이나 개울은 이미 남녀와 노소를 불문한 주민들의 대중목욕탕과 대중세탁장이 되어 목욕과 빨래가 대대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과테말라를 달리다가 만난 도로변의 파인애플노점상 사장님(?)인 아브네르(Abner).
그는 학교의 방학을 틈타 하루 종일 홀로 가게를 지키고 있다.
9살의 그는 총 8명의 남자만의 형제 중, 맏으로 나이에 걸맞지 않게 의젓하고 사려가 깊은 소년이었다.
도로를 따라 이런 파인애플 노점상이 줄을 이었는데 가게를 지키고 있는 사장님(?)들은 한결같이 아브네르와 같은 또래의 소년들이었다.


도로에서 아주 쉽게 접하는 이들의 삶의 모습은 내가 네팔과 인디아를 지났을 때 경험했던 것과 전혀 다름이 없다.
숲 속에서 수집한 나무들을 차곡차곡 쌓고 그것을 끈으로 묶어 지게가 아닌 앞 이마에 띠로 걸어 목과 머리의 힘으로 지고 간다. 그들의 취사는 모두 이 나무들로 이루어진다.


과테말라의 수도, 과테말라를 향해

며칠 전, 멕시코의 타파출라(Tapachula)의 길거리에서 먹은 음식이 상했는가 어떤가 알 수 없지만 왼손 5손가락 모두와 왼쪽 팔에 정체불명의 것들이 돋고 온 몸이 가려워 어제 한 잠도 못 잔 상태에서 심각한 양의 땀을 하루 종일 쏟아대니 온 몸이 기진맥진으로 페달을 밟고 있는 발에 쥐가 날 지경에 이르렀다.
멕시코시티에서부터 줄곳 동진(東進)을 계속해 오는 사이 어느덧, 시계의 시각이 한 시간 틀린다. 아직 서쪽으론 해가 상당히 남아 있건만, 내가 향하고 있는 동쪽하늘은 시커먼 구름과 함께 아주 심상치 않은 바람이 술렁댄다. 하늘은 명백하게 '비'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타파출라에 있었던 4일간, 하루에 한 두 차례씩 어김없이 비가 내렸지 않은가. 아열대성 스콜임에 틀림이 없다.

나는 도로변에 있는 간이 음식점 여주인에게 싼 여관이 근처에 있는가를 물었더니 뜬금 없이 한국인이 하는 여관(이름이 Lee's Hotel)이 내가 방금 지나쳐 온 마을에 있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꿈 속에서조차 상상할 수 없었던 빅뉴스에 전신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다.
자전거를 뱅그르르 180도 턴 시켜 단 숨에 마을 언덕바지를 치고 올라가 도착한 Lee's Hotel은 불행하게도 중국인이 경영하는 호텔이다. 멕시코 인들을 비롯한 모든 중남미 인들에게는 중국인도 중국인이고 한국인도 중국인이고 모든 동양인들 또한 중국인이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그들에게 동양인은 그저 "치노(Chino)-중국인" 한 단어로 일괄 요약 정리된다. 그들에게 동양제국(東洋濟國)은 그들의 이해한계를 훌쩍 넘는 곳에 있다.
전신을 흥분시켰던 기대감은 순식간에 깊은 실망의 바다 속으로 침몰해 버렸다. 이 곳에서 태어난 중국인으로 중국어를 전혀 모르고 스페인어만을 구사하고 있는 이 집 딸에게 숙박비를 물으니 60퀘찰(Quezal)(한국 돈으로 만원)이라고 한다. 나는 6,7천원 하는 여관이 있다는 정보를 이미 도로변 간이식당의 여인들로부터 입수한 터라 그녀를 미련 없이 뒤로하고 싼 여관을 묻고 물어 골목 골목을 뒤진 끝에 30퀘찰(5,000원)의 여관을 찾아낸다.
여관 방의 풍경은 간단 명료하게 말해 독방감옥!
하늘의 경고는 결코 허풍이 아니었다. 내가 자전거를 비좁은 여관방 안으로 가까스로 집어 쳐 넣을 새 없이 하늘은 요란한 굉음과 함께 졸지에 무너져 내린다.
"휴우, I'm safe!(난 안전해!)"
거센 비는 하루 종일 뜨겁게 달구던 대지를 흠뻑 적시고, 나는 완벽한 방수의 콘크리트 지붕을 두드리는 "Rythmn of rain(리듬 오브 레인)"에 흠뻑 젖는다. 비는 밤새도록 줄기차게 내렸다. 

과테말라에서의 첫날 밤은 5,000원짜리 독실감방.

변함없는 온도의 찜통 속을 헐떡거리며 달려간다. 과테말라의 도로 역시 멕시코의 그것과 호각지세로 4,5도의 경사를 유지하며 한결같이 올라간다. 숨이 콱콱 막히는 가운데 힘겹게 하루를 달려 저녁 5시경 이름도 알 수 없는 작은 마을에 당도한다. 어제와 정확하게 같은 시각이다.
또 다시 동쪽하늘에는 순식간에 몰려 든 검은 구름들이 팔짱을 낀 채 버티고 있고 결코 유쾌하지 않은 바람이 산만하게 사방으로 흩어진다.
서둘러 여관을 찾으나 모두 비싸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 동안 비의 그물망에 제대로 걸려 버렸다. 비가 아스팔트 길에 구멍을 내 버릴 기세로 무지막지하게 퍼붓는다. 지붕이 결코 넉넉하지 않은 간이 버스정류장의 구조물에 실낱 같은 희망을 걸고 필사적으로 매달려 보지만 역시 역부족으로 죽음처럼 서 있는 나와 '엘파마'는 결국 비가 되고 빗물이 되어 흐른다.

한 시간 넘게 세차게 퍼부었던 비가 잠시 어물정대고 있는 틈을 타 싸구려 여관을 찾아 헤맨 끝에 50퀘찰(8,000원 상당)의 여관을 발견하고 길었던 하루를 종료한다. 여관의 주인아저씨는 이미 술에 절어 눈과 혀가 한참 돌아가 버린 상태이나 여관비만큼은 확실하게 못을 박는다. 사시사철 변함없이 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는 중미의 나라이지만 저녁만 되면 제정신으로 걸어 다니고 말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보인다. 추운 나라 사람들은 추위를 이기려 마시고 더운 나라 사람들은 하루 종일 열을 받아서 술을 마신다.
어쨌거나 마셔도 돌아 버리고 안 마셔도 돌아 버리는 것이 우리 인생이니 차라리 마시자, 마셔 버리자!
비는 또 다시 얇은 생철로 된 여관방 지붕을 찢어 버릴 듯이 맹렬하게 쏟아진다.

미국의 대표적인 노란색 스쿨버스가 운행정지 된 후, 중남미에서 시ㆍ내외 버스로 다시 태어난다.
무차별로 뿜어대는 시커먼 매연이 중국대륙을 달리고 있는 또 다른 괴물인 세 발 트럭을 무색하게 한다. 이 버스들은 과테말라 인들의 발을 책임지는 대가로 그들의 폐를 담보로 잡고 있으며 무분별한 질주와 경적을 일삼는 도로의 무법자들이다.


하루 100km 달리기도 힘겨운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과테말라의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주행 중에 고약하기 짝이 없는 괴물을 빈번히 만나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니고 도시의 수 많은 서민들과 농촌사람들의 발을 책임지고 있는 시내ㆍ외 버스다.
원래 노랑색으로 상징되는 이 버스들은 미국 전역에서 운행되고 있는 스쿨버스로 미국에서 이미 운행 정지된 중고차들을 들여와 과테말라 전역에서 시내ㆍ외 버스로 사용되고 있는데 무차별로 뿜어대는 시커먼 매연이 아주 심각하다.
중국대륙을 달리고 있는 또 다른 괴물인 세 발 트럭과 용호상박이다. 이 버스들은 과테말라 인들의 발을 책임지는 대가로 그들의 폐를 담보로 잡고 있으며 무분별한 질주와 경적을 일삼는 도로의 무법자들이다.
이곳의 자연 또한 멕시코처럼 자연 그 자체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는 도시나 마을 주변에 오염이 눈에 잡힐 만큼 심각해 보인다. 도로 주행 중 지나치는 많은 개울과 강물의 거의 대부분이 희뿌옇다. 주민들 모두가 그곳에서 대대적으로 목욕과 세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테말라의 수도인 과테말라를 30km 남긴 지점인 아마티트란(Amatitlan)시(市)에서 어둠 속에 숨어 있는 8,000원의 또 다른 감방을 발견하자 또 하루가 끝난다. 이제는 어두운 골목 속에 꼭꼭 숨어 있는 싸구려 여관을 찾아내는 일이 나의 중대과업이 되어 버렸다.

내가 줄창 드나 들었던 싸구려여관의 모습은 그 입구부터 감방의 그것이다.

심야근무를 끝내고 차가운 새벽공기에 떨며 노점상에서 허기를 때우고 있는
아마티틀란(Amatitlan)시(市)의 경찰들과 함께 한 출발 전의 식사.

수도인 과테말라에 이르는 20여km의 오르막길이 또 다시 나의 인내력을 테스트한다. 대책 없이 올라간다.
"높은 곳을 임하소서!" 이 곳에선 높은 곳이 도시이고 문명이다.
기를 쓰고 기어올라 시내로 진입해 로드 맵(Road Map)을 구하려 하나 구할 길이 없다. 시내를 돌고 돌며 책방과 여행사에 탐문을 해보지만 그저 한결같이 없단다. 자신의 나라의 지도가 어디에도 없다니 정말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 결국 한 행인의 권유로 시내에서 수km 떨어져 있는(왕복 10km) 과테말라 국제공항으로 달려가 여행자정보카운터에서 힘겹게 관광객용 지도를 집어 든다.
지도 한 장을 구하기 위해 수 시간을 뺑뺑이 치고 나니 정말 맥이 빠진다. 멕시코에선 주유소나 편의점에서 도로 맵을 손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과테말라의 수도, 과테말라.

과테말라의 다음 나라인 엘 살바도르(El Salvador)에 이르는 가장 가까운 길인 CA1 국도를 타기 위해 또 시작 된 오르막길을 씩씩거리며 오르고 있는데 도로변에 정차된 혼다 승용차에 기댄 채 서 있던 아주 길고 긴 사나이가 나의 발걸음을 세운다.
그는 바로 안드레아 두라르테(Andrea Duarte)로 현역 과테말라 산악자전거 챔피언이고 작년 전미대회(북미, 중미, 남미를 통틀 음)의 준 우승자로서 동시에 철인3종 경기 선수이고 그의 아름다운 아내인 필리(Pily)역시 철인3종 경기 선수이다.
그는 경기를 위해 수 많은 나라를 여행했고 영어도 완벽하게 이해하고 말하고 있어 우리의 대화는 거침없는 주행을 계속한다. 그는 7세부터 레이스에 참가하며 순간의 승부에 모든 것을 걸고 또 그것을 즐기는 삶을 일관 해 왔다고 하는데 1년에 10차례의 산악자전거대회와 매년 1번씩 거행되는 Pan American Race(북미, 중미, 남미 전체)에 정기적으로 출전할 뿐 아니라 매주 거행되는 크고 작은 레이스까지 빠짐없이 출전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경기의 승부를 넘어 그 경기 자체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즐기고 있는 것 같다.

과테말라 시(市)에서 만난, 과테말라의 히로(Hero)인 안드레아 두아르테(Andrea Duarte). 현 MTB 과테말라 챔피온, 그리고 작년도 Pan American Race[전 미주(북미, 중미, 남미)]준 우승자.
첫 눈에 나를 질리게 한 것은 그가 '인간장대', '인간 전봇대'라는 것.


20대 후반인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Academia Duarte"-Academia Duarte.com-라는 산악 자전거 스쿨을 자신의 집 근처에서 운영하며 후배양성과 승부사의 인생을 살고 있다. 나는 결국 그곳에서 불과 수 백m 떨어져 있는 그의 집에 초대되어 그의 삶의 모든 것을 보고 듣는다.
창고에는 많은 산악용, 로드용 자전거가 줄을 서 있는데 그의 스폰서가 스캇(Scott)인 관계로 모든 자전거가 스캇(Scott)이다.
그의 아름다운 아내인 필리는 기상관측장비를 취급하고 있는 스페인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영어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회사에서 일은 더욱 많아지고 긴 휴가를 내기는 더욱 어려워져 강도 높은 훈련과 준비를 요하는 철인3종 경기 출전이 어렵기만 하다고 한다.
지금 나의 삶 또한 그들처럼 페달질의 그것이지만 그들의 삶은 내가 결코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이름의 세계이기에 그들에게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대단한 흥미를 가지고 있음엔 틀림없으나 정작 나의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어 대고 있는 것은 남을 배려하는 그들의 따스한 마음이다.

내일 아침 7시부터 시작되는 단축마라톤을 바로 코 앞에 두고도 늦은 시간까지 동서지간의 아름다운 사람들-안드레아(Andrea), 그의 아름다운 아내인 필리(Pily), 필리의 여동생인 사랑스런 베렌(Belen), 그리고 베렌의 남편인 미구엘(Miguel)-이 나를 위해 즐겁고 흐뭇한 시간을 만들었다.


그들은 나를 위해 필리(Pily)의 여동생인 베렌(Belen)과 그녀의 남편인 미구엘(Miguel)부부를 불러 시내의 한 멕시칸 식당에서 결코 짧지 않은 즐거운 시간을 만들었는데 안드레아는 내일 아침 7시부터 시작되는 단축마라톤에 출전한다고 한다. 즐거운 모임이 끝나 서로와 헤어져 집에 돌아온 후, 안드레아는 늦은 시각까지 나의 자전거를 체크하고 나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주며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아침이 되어 바로 턱 밑에 경기 출전을 앞둔 그이지만 반복해서 나의 모든 것을 체크한다.
동네어귀까지 함께 달리다가 손을 흔들며 경기장으로 서둘러 달려가는 안드레아와 필리의 승용차가 나의 시야에서 완전히 잊혀지자 비로소 나는 따스하고 아늑하기만 했던 꿈속을 박차고 튀어 나와 나의 처절한 현실인 핸들을 움켜쥐고 페달에 힘을 주며 텅 비고 메마른 도로 위에 홀로 선다.

안드레아와 그의 아내, 필리의 화려한 이력서.

안드레아가 국가대표로 출전했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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