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량초등학교에서의 하루밤
에디터 : 박규동

우리는 가슴에 하나씩 만을 품고 산다.
바다와 육지가 살뜰하게 만나는 곳이 만이다. 때로는 육지가 바다로 흐르고, 때로는 바다가 육지로 흐르는 곳이다. 입맞춤처럼 은밀하기도 하거니와 속살을 부비듯이 다정하기도 한 곳이다. 밀물과 썰물이 시간을 철저히 소모시키는 뻘마당이요, 저녁이면 사치스런 노을이 그려지는 곳이기도 하다.
내 가슴에 품었던 만 하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땅끝마을에 여객선이 입항하고 있다.

다정한 윤구와 아내 불근늑대

8월 4일, 세 째 날이다.
땅끝마을을 떠나며 "땅끝전복마을" 가족들에게 고마운 인사를 남겼다.
남해로부터 강진만을 애워싸고 있는 완도와 고금도를 오른 쪽으로 보면서 우리는 북동쪽으로 나아갔다. 남창까지 77번 도로를 타다가 그 곳에서 점심을 먹고 55번 도로를 바꿔 탔다. 왼편으로 두륜산이 톱날처럼 나타났다. 해남의 명산이다. 도암면에서 사잇길로 우회전하여 우리가 찾아간 곳은 정약용의 유배지였던 다산초당이다.

다산 정약용이 귀양살이를 하면서 열여덟 해나 바라보던 바다가 강진만이다.
그의 만이다.
가족을 생이별하고 지낸 18년이 외롭거나 서럽거나 목메이거나 하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보다 나는 그의 천진함이 늘 부러웠었다. 그러나, 다산초당에 천진함은 없었다. 강진군이 초당을 군의 관광사업으로 개조하면서 초당은 없어지고 와당이 들어 서 있었다. 그의 천진함마저 상업화 되고만 것이다. 강진에 이렇듯 사람이 없단 말인가!

다산초당



10인치 작은 바퀴를 가진 나그네님이 투덜되는 길에서 뒤로 처졌다.

아낙들의 까르르하는 웃음이 바람을 타고 만을 채운다.

다산초당에서 나와 강진만 제2제방을 따라 투덜되는 길을 지났다.
물이 빠진 만에는 아낙들이 맛조개를 잡고 있었다. 물질이 조개질이 된 것이다. 아낙들의 까르르하는 웃음이 바람을 타고 만을 채운다. 자전거여행으로만 감당할 수 있는 풍경이다.

투덜되는 길에서 나그네님이 뒤로 처졌다.
그의 트레일러는 바퀴가 10인치 밖에 안된다. 작은 바퀴가 굴곡도로에는 취약한 것이다. 내가 쓰는 Kool Stop은 바퀴의 지름이 20인치이고 윤구가 끄는 Burley는 16인치인데 비해 나그네님의 트레일러의 바퀴가 작은 것이다. 포장도로에서는 별 문제가 없으나 비포장도로에서는 속도내기가 어려웠다. 나그네님의 무던함이 그런 불편을 여유롭게 안고가는 것 같아 고마웠다.

강진만의 북단을 2번도로로 건너고 건너자마자 23번을 타고 남으로 칠량을 향했다.
만 건너 편에 우리가 지나왔던 해남반도에 해가 지고 있었다. 두륜산을 넘어가는 노을을 흘낏흘낏 보면서 자전거는 또 다른 반도의 남쪽을 깊숙히 내려갔다. 칠량에서는 학교에서 야영을 하자고 생각하고 윤구를 앞 세우고 칠량초등학교로 들어갔다.


윤구가 야영허락을 받으로 교무실로 찾아갔다.
그 동안에 나는 학교 초입에 있는 관사를 찾아갔다가 우연히 관사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교장선생님을 만났다. 자전거여행자인데 운동장에서 하룻밤 야영을 하고자 하니 허락을 해 달라고 정중히 부탁을 했다. 교장선생님은 대뜸 좋다고 하였는데 교무실에서 당직을 섰던 여교사는 윤구에게 거절을 한 모양이다. 교장선생님은 직접 운동장까지 와서 가로등이 켜지고 수돗물이 나오는 가까운 곳에 텐트를 칠 수 있도록 자세하게 협조를 해 주었다.

콜맨 스토브를 켜고 압력밥솥에 밥을 짓는다.
4인용 냄비에 오늘은 찌개를 끓이기로 하였다. 김치찌개를 먹자고 만장일치로 가결, 나그네님이 마을에 장을 보러 갔다. 잠시 후에 나그네님이 봐 온 보따리에는 돼지고기와 묵은김치가 가득하였다. 그런데, 식당에서 사 왔다는 그 김치 맛이 굉장하였다. 양도 넉넉하여 며칠은 먹을 것 같았다. 저녁을 모처럼 푸짐하게 먹었다.

텐트 세 동을 ㄷ자형으로 쳤다.
자전거는 ㄷ자의 안쪽에 세워두었다. 자전거를 그렇게 세워두는 것은 각자 짐을 꺼내기 쉽게 하기 위함도 있지만, 혹시 야간에 있을지도 모를 사건에 대비하기 위함도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 새벽 2시에 사건 비슷한 게 생기고 말았다. 늦게까지 학교 느티나무 아래에서 모여 놀던 중학생들이 너댓 명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들을 무시해 버리고 잠이들었었다. 그 학생들이 살금살금 텐트로 다가와서는 돌멩이를 텐트에 던졌던 것이다. 잠이 깨어있던 윤구가 "누구얏!"하고 고함을 쳤고 나는 P4 라이트를 비추었다. 학생들은 줄행랑을 쳤고 피해는 없었다. 다시 3시 즈음에 나그네님이 큰소리를 지르며 비상을 걸었다. 모두 정신을 차리고 나니 나그네님이 꿈을 꾼 것이라 하였다. 한바탕 웃었다. 그렇게 밤을 지새우고 아침을 맞았다. 뭔가 개운하지가 않았다.


칠량초등학교 캠핑, 학생들이 텐트로 다가와서는 돌멩이를 던졌다.

다음날, 아침밥을 해 먹고 있는데 교장선생님이 찾아왔다.
식사 후에 교장실에서 차를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 교장실로 찾아 간 우리를 보고 교장선생님은 자전거에 관한 질문을 펴기 시작했다. 자기 아들이 30만 원짜리 자전거를 사 갖고 왔길레 "니가 정신이 있는 놈이냐?" 하고 나무란 적이 있단다. 우리는 웃었다. 그러면서 교장선생님은 우리가 먼길을 이렇게 여행하는 걸 보니 마음이 끌린다는 것이다. 도대체 얼마짜리 자전거를 사야할까?에서 시작하여 언덕은 그냥 오르느냐, 기어는 몇 단이 좋으냐, 알미늄이 좋은냐 카본이 좋으냐 까지 질문이 한이 없었다. 50대 중반의 나이이지만 내가 보기에 70은 된 것 같은 정서를 갖고 있었다. 나그네님과 윤구가 성실하게 답변해 주었다.

아침 식사 후 교장실에서 차를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

교장선생님은 운동장으로 나오더니 내 자전거를 한번 타고 싶다고 하기에 그러라고 하였다.
어제 운동장을 오르면서 썼던 기어가 1-3단이었다. 시운전을 마친 교장선생님은 "이거 그냥 굴러갑니다 그려!"하면서 즐거워 했다.
내 자전거는 Elfama사 제품으로 작년에 아들이 선물해 준 "Fantasia"이다. 카본의 특성을 잘 살린 프레임에 샥과 핸들바까지 카본으로 만들어졌다. 가볍기도 하거니와 유연성이 뛰어나다. 자전거 조립의 대가인 큰 아들이 조립을 하였으니 신뢰도 가는 나의 애마이다. 교장선생님이 좋아할 만 하였다. 그러나 가격이 얼마라는 나그네님의 말에 눈이 둥구레졌다. 그런데도 적극적으로 변한 교장선샌님은 "그럼 중고는 얼마나 될까요? 어디 중고 하나 구할 수 없을까요?"한다. 나는 자전거 관련 웹싸이트의 주소를 몇 개 적어 주었다.

교장선생님이 원하는 자전거를 구입할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칠량초등학교를 빠져 나왔다.
오늘은 득량만까지 가기로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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