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으로 찾아 온 처제와 최서방을 만나다.
에디터 : 박규동

부산 시외버스터미널의 인파는 엄청났다.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훔쳐보면서 나도 나그네가 되었다. 애인을 만나서 기뻐하는 군인들, 어른을 마중 나온 젊은이들, 옷을 짧게 입은 피서객들, 그 많은 인파 속에서 자전거를 끌고 오던 어떤 젊은이가 우리를 아는 채 한다.
 "제주도에서 멀리 가시는 걸 보았는데요, 벌써 끝내려고요?"
 "아직 아니예요, 우리는 동해안으로 7번을 타고 갈 건데 동서 내외가 응원을 온다기에 만나서 함께 가려고 기다리는 중이예요. 어디로 가는 길이예요?"
 "저는 내륙으로 해서 서울로 갈 거예요. 즐거운 여행 되세요!"

자전거를 타고 사람을 만나면 인격이 평등해 진다.
만나는 사람의 눈 높이가 낮으면 낮은데로 나도 같은 수준의 눈으로 그를 만날 수 있다. 그 가 학생이면 나도 학생이 된다. 그가 귀족이면 나도 귀족이 되고, 그가 남루한 사람이면 나도 그를 따라 남루해 질 수 있다. 돈이나, 학식이나, 명예나, 권력같은 관념은 자전거 앞에서 쪽을 쓰지 못한다.
왜 그렇게 되는지 나도 모르겠다.

아내와 처제는 손을 잡고 지난 이야기에 정신이 없고.. 왼쪽부터 최서방, 처제, 아내, 나

고속도로의 차량정체로 처제는 두 시간이나 늦게 도착하였다.
여행에서 가족을 만나는 게 이렇게 좋은가? 아내와 처제는 손을 잡고 지난 이야기에 정신이 없고 수염이 탑수룩해 진 최서방과 나도 반갑게 손을 맞잡았다. 터미널 부근 공원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네 명으로 늘어 난 우리 팀은 주승이 내외를 만나기 위해 해운대를 향해 달렸다. 내가 앞장을 서고 아내, 처제, 최서방 순으로 행대를 갖추고 우리는 동래에서 좌회전 하여 해운대로 갔다. 지하철 공사로 복잡한 구간이 많았다.

대한민국에서 소문 난 해운대 해수욕장은 500m 전방부터 차량이 쌓이고 밀려 옴싹달싹 못하고 있었다. 우리도 자전거에서 내려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얼마 전에 기네스에 오른 사건 중에 하나가 해변에 비치파라솔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펼쳐진 곳으로 해운대가 인증된 것이 기억 났다. 볼만 하였다.
잠깐 기념촬영을 하고는 주승이와 만나기로 한 횟집으로 갔다. 부산의 명소인 "달맞이 길"을 굽이 굽이 넘고 나서 우리는 만났다.

기네스에 오른 사건 중에 하나로 세계에서 해변에 비치파라솔이 가장 많이 펼져진 곳...

"해운마루"라는 횟집은 해운대와 누리마루 그리고 광안대교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곳에 있었다. 주승이와 그의 처가 마음을 쓴 것이다. 사촌짜리 친척이 모이면 말이 편하다. 같은 항렬의 형제 간에 나누는 대화는 격식이 없어서 좋다. 배불리 회를 먹고 소주도 마셨다. 50~60대의 사촌들이 나눌 수 있는 모든 회포를 다 풀었다.

"해운마루"라는 횟집은 해운대와 누리마루, 광안대교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곳에 있었다.

밤 아홉 시에 술이 얼콰한 채로 횟집을 나와 다시 자전거를 타고 넘다만 달맞이 길 고개를 몇 개 더 넘었다. 달맞이 길 고개가 장난이 아니었다. 아내와 처제가 걱정이 되어 뒤를 힐끔거리면서 고개 꼭대기에 오르니 아내가 끄덕없이 올라오고 있다. 기장 방향으로 길을 잡고나서 주승이와 작별하였다.

배불리 회를 먹고 소주도 마셨다. 50~60대의 사촌들이 나눌 수 있는 모든 회포를 풀었다.

어두워서 텐트 칠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다. 밤 열 시가 넘었다. 어디쯤인지 조차 가늠이 안된다. 날씨까지 먹구름이 잔뜩이라 어둠이 더 짙었다. 마침 길 가는 마을 사람을 만났다.
 "이 근처에 학교나 공원이 있습니까? 우리는 텐트를 치고 싶어서요."
 "이 근처에 텐트 칠 데가 마땅치 않아요. 그럼 우리 집 마당에 치세요. 식당을 하는데 마당이 넓어요. 나는 산책을 하고 갈테니가 가서 편히 쉬세요."
 500평도 더 되는 넓은 마당 한 구석에 텐트를 치고 수도물로 발을 씼었다.

이번에 쓰고 있는 텐트는 노스페이스사 제품으로 3~4인용 원정급이다. 세계 최고의 텐트 제조사답게 흠 잡을 데가 없다. 넷이서 그럭저럭 잠이 들었다.

2008년 8월 16일
새벽 두 시부터 비가 쏟아졌다. 호우 수준의 빗줄기이다. 텐트 야영 경험이 별로 없는 처제와 최서방이 잠을 설치는 것 같다. 아침 여섯 시가 다 되도록 비는 그치지 않았다. 눈을 뜬채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6시 반 경에 비가 소강 상태로 들었다. 후다닥 일어나 짐을 싸고 텐트를 접어서 트레일러에 실었다. 비에 젖어서 무게가 늘어 났다. 비 맞을 준비를 단단히 하고 출발이다. 아침은 해장국 집에서 사 먹기로 하고.


기장에서 14번 국도로 바꿔 타고 울산으로 달린다. 가랑비가 하루 종일 내렸다. 그래도 두 동서 부부가 함께 자전거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든든하고 즐겁다. 최서방이 아내의 트레일러를 대신 끌어 주었다. 사정이 허락한다면 이런 모습으로 1년 쯤 돌아 다니다 집에 갔으면 좋겠다.그런 날이 오려나!

부산에서 울산, 포항으로 이어지는 동해안은 우리나라 중공업의 메카이다. 길이 좁다하고 대형 트럭이 이어지고 뭔가 활력이 넘친다. 갓길에 버려진 쓰레기도 철강 부스러기가 많아 졌다. 하다못해 몽키스패너 부러진 것에서부터 대형 볼트와 체인, 판 스프링 조각 같은 것이 많다.


내 앞 타이어가 펑크 났다.
마침 부근에 원두막형 정자가 있었다. 원두막을 찾아가 펑크를 수리하고 잠시 쉬었다. 간식을 먹어서 에너지를 채우고 다시 출발이다. 가랑비는 체온을 빼앗고 지치게 하였다.

낮 두 시쯤에 울산 초입에 도착하였다.
배가 고팠다. 마침 근사한 식당이 있어서 쇠갈비를 구워 먹었다. 넉넉하게 먹고나니 비도 멈췄다. 처제가 내일 아침에 의정부행 첫 버스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기에 오늘은 울산에서 자기로 하였다. 울산 버스터미널 부근에 있는 커다란 여관 방 하나를 잡았다.
전화기 충전, 헤드라이트 리튬 바테리 충전, 카메라 리튬 바테리 충전을 걸어 놓고 비 맞은 옷 세탁에 샤워까지 모두 끝내고 저녁을 먹으로 나갔다. 아내와 처제가 좋아하는 해물탕을 맛있게 먹었다. 과일과 내일 먹을 반찬을 현대백화점에서 샀다.

자전거는 지하주차장 한쪽 구석에 묶어 놓았다.
여행 초기에는 자전거 도난에 대한 걱정이 많았었는데 여행이 경과 되면서 상당 부분 염려를 놓게 되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자라난 것이다.

내일 아침에 동서 내외를 떠나 보내고 다시 두 사람만의 여행이 될 것이다.
"처제! 최서방! 찾아와 줘서 고마워! 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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